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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프론티어,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감독 홍경표 [2]

일관된 톤으로 정리하는 건 촬영감독의 임무

초반에는 내 촬영 스타일이 강제규 감독과 잘 안 맞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 않았나.

그랬다. 첫 촬영이 장동건과 김수로가 대사 주고받고 이은주가 죽는 장면이었는데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 보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클로즈업이 많이 쓰였는데 첫 촬영에 첫 테이크였다. 긴장이 되고 너무 멜로로 찍는 거 아닌가 걱정이 많이 됐다. 처음엔 나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핸드헬드로 찍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나로선 제일 힘들었던 장면이다. 너무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편집해서 붙여놓고 보니까 이 부분은 감독의 말대로 쉬어주는 느낌이 맞구나, 싶더라.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때깔 좋다’는 표현을 쓴다. 굉장히 여러 장소에서 찍었고 계절, 시간이 다른 장면이 많은데 일관된 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영화를 일관된 톤으로 정리하는 건 촬영감독으로서 내 임무다. 색과 콘트라스트로 영화에 리듬을 주는 건 <하우등>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다. 하지만 영상을 완전히 조절하게 된 것은 <챔피언>부터다. 조명부까지 내가 관리하는 체제가 됐으니까. 그 전엔 조명감독에게 맡긴 측면이 있었는데 <챔피언>부터는 내 눈에 맞게 모든 걸 조절했다. 늘 톤이 튀어서 아쉬운 장면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걸 많이 줄였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오지만 전투신이 전장의 여러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가파르게 정점을 향해서만 움직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적인 느낌이 별로 없고 전투신이 두 남자의 멜로드라마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느낌이라는 지적인데.

전쟁영화는 여러 가지다. 영화마다 보여주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게 ‘절대영화’는 아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첫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더 훌륭하다. 그렇다고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절대영화’인 것도 아니다. 어떤 영화도 절대영화는 될 수 없다. <풀 메탈 자켓>은 스타일이 또 다르다. 고요하고 느린데 <씬 레드 라인>은 그것보다 더 심하다. 정적인 전쟁영화를 기대하면 그런 영화를 보면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핸드헬드가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너무 흔들어서 어지럽다는 말도 나오고. (웃음)

일부러 흔들려고 한 게 아니라 정확히 잡으려고 하다보니까 흔들리는 거다. 사실 제일 고민한 부분이다. 카메라 3대를 쓰면서 제2,제3 카메라한테도 흔들지 말고 정확히 찍으라고 요구했다. 늘 강조했던 게 내가 못 보면 관객도 볼 수 없다는 거였다. 내가 어지러우면 관객도 어지럽다. 다만 장동건이 대대장 죽이려고 할 때 흔든 건 너무 과잉이었지 않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저절로 흔들게 된 데는 지형지물도 큰 역할을 했다. 평양 시가전은 같은 핸드헬드라도 흔들리는 느낌이 별로 없다. 그런데 가파른 언덕에서 싸우는 걸 찍을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인물이 수평으로 움직일 때는 흔들리는 게 별로 없는데 인물이 상하로 움직일 때는 굉징히 흔드는 걸로 보인다.

기술영화, 상업영화, 오락영화를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보완할 지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나 개인에게도 촬영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관객도 기술영화, 상업영화, 오락영화를 너무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챔피언>의 라스베이거스 권투장면은 한국 CG의 쾌거라고 보는데 영화가 흥행을 못하니까 한번도 언급이 안 되더라.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중국군이 밀려오는 장면은 <챔피언>에서 시도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챔피언>에는 링 줄 사이로 카메라가 뚫고 가는 장면도 나온다. 내가 만난 사람 중 단 한명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던데 그건 그만큼 완벽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CG의 효과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정해줄 건 인정해주면 좋겠다.

<지구를 지켜라!>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카메라가 건물 밖에서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장면인데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이다.

장준환 감독도 그런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이 안 되니까 그런 기술을 시도한 사람은 비참함을 느낀다. ‘저거 왜 했냐, 돈 들여가면서. 돈 되는 코미디나 찍지’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 비참하다. 지난해 내가 그랬다. <챔피언> <지구를 지켜라!> 다 안 되니까 비참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겠다고 결정할 때는 그런 심리가 작용했을 거 같다. 오기 같은 게 있었던 거 아닌가.

그렇다. 강 감독은 이런 기술적 면을 인정해주니까. <지구를 지켜라!> 안 되고 독기가 있었다. <지구를 지켜라!> 때 장준환 감독은 <패닉룸> 수준의 카메라워킹을 원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 카메라워킹을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만큼 투자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게 무지 하고 싶은데 제작여건상 안 되니까 내가 못해주는 것 같아서 감독한테 무척 미안했다.

어떤 촬영감독을 좋아하나.

멕시코 촬영감독 중에 로드리고 프리에토라는 사람이 있다. 찍고 <아모레스 페로스> 찍은 사람인데 핸드헬드를 정말 잘 찍는 사람이다. 굉장히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느낌이다. 조명 스타일도 할리우드랑 다르다. 멕시코 사람이라는 점이 왠지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준다. 중국의 구창웨이 감독도 좋아한다. 첸카이거 영화를 찍은 사람인데 <현위의 인생>의 첫 장면은 정말 놀랍다. 할아버지가 절벽에 앉아 있는데 카메라가 올라가면 구릉과 사막이 펼쳐진다. 그것으로 한 인간의 60년 인생을 보여준다. 장면 하나로 60년을 점프하는 거다. 세상에, 영화 하면서 그런 건 처음 봤다.

<태극기 휘날리며>만이 아니라 <지구를 지켜라!>도 굉장히 다양한 촬영기법이 동원된 작품이다. 회상장면도 여러 가지고 카메라워킹하며 개각도 촬영까지.

처음으로 코닥이 아닌 다른 필름을 써서 찍기도 했다. 피의 색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썼다. 과거 장면엔 필름에 은입자를 많이 남겨서 현상하는 방법(실버 리텐션)을 쓰기도 했고.

순이가 버스타고 떠나는 장면도 화질이 독특했다.

그 장면도 참, 시나리오 보면 뭐라고 써놨는지 아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처럼’. (웃음) 내가 장준환이 정말 웃기는 친구라고 생각한 게 뭐냐하면 시나리오 쓰면서 누가 그런 말을 쓰겠나. 그래서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를 봤더니 정말, 저렇게 찍어서 이 영화랑 맞나 싶더라. <지구를 지켜라!>는 좀 어두운 얘기잖나. 그런데 조성모 뮤직비디오처럼 예쁘게 찍어서 어떻게 연결하겠다는 건지, 고민하다가 실버 리텐션을 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카메라워킹도 엄청나게 많다.

정말 힘들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챔피언>, 이런 작품은 한 가지 톤을 가진 드라마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이렇게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갑자기 멜로가 됐다가. 시나리오에 보면 병구과 순이 장면은 ‘멜로처럼’ 이렇게 써 있다. 예쁘게 찍으라는 말일 텐데 예쁘지 않은 애들, 어떻게 예쁘게 찍나. (웃음) 새로운 시도가 많아서 매번 현장편집기로 보면서 이게 맞게 찍은 건지 확인하고 그랬다.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코미디인가 싶다가 비극을 갔다가 그러니까.

하나로 톤을 잡는 게 어려웠다. 마지막에 우주선도 나오고. (웃음) 시나리오 보면서 난 그 장면이 너무 좋았지만. 세련된 장면은 세련되게, 거친 건 아주 거칠게 가자고 했는데 거친 건 쉬워도 세련된 건 무지 어렵다. 나중에 프린트 나온 걸 봤을 때는 내 영화 중에 최고의 프린트가 아닌가 싶었다. 디지털 색보정을 안 한 걸로 말이다.

병구의 클로즈업도 재미있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눈썹 아래만 잡았는데 이런 클로즈업은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웃음)

사이코니까.(웃음) 병구의 입과 목, 그런 부분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위는 다 잘라버렸다. 매크로렌즈를 많이 써서 아주 가깝게 들어가서 찍었다. 일반 렌즈를 쓰면 포커스를 맞출 수 없었으니까.

<지구를 지켜라>

배우고 개척해야 할 먼 길

어쨌든 홍 감독이 찍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빛의 사용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빛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나.

베르톨루치 영화를 많이 찍은 비토리오 스트라로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빛을 조절해서 이야기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티스트 수준의 외국 촬영감독들 보면서 또 하나 느낀 건 그들이 자연을 정말 유심히 바라본다는 점이다. 작은 차이까지 섬세하게 관찰해서 표현한다.

빛의 사용과 함께 카메라워킹이 많은 영화를 주로 찍었다. 핸드헬드 촬영도 많고. 홍상수나 허진호 같은 감독과 찍으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다.

아마 그런 영화를 찍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거다. 움직임이 없고 흔히 리얼리즘영화라고 말하는 작품들, 나는 그런 영화들일수록 화질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면에 테크닉은 없지만 디테일은 잘 살아 있어야 한다. 나에게 리얼리즘은 그런 거다. 가 그런 작품이다.

그런 리얼리즘영화에 대한 욕심도 있나.

물론이다. 나이가 들면 할 거 같다. 솔직히 우리야 리얼리즘영화를 좋아하는 세대이지 않나. 지금 기술영화를 하는 건 내 일이고 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하는 거다. 나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낀다. 사실 카메라 한대 쓰고 움직임 없고 그러면 내가 할 일은 줄어든다. 지금은 좀더 움직이는 영화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허진호 감독은 같이 하자고 계속 그러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하고 있다.

여러 감독과 작업을 했는데 가장 자극이 됐던 감독은 누구인가.

장준환 감독이다. 이런 감독을 지원해주려면 내가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야 되는데 함께 모르는 걸 만들어가야 하니까 많이 미안했다. 기본적으로는 감독은 모두 존경한다. 영화는 결국 감독의 창의력에서 나오는 거다. 감독마다 배우는 게 많다. 전쟁영화를 찍지 않았으면 내가 전쟁을 어떻게 알았겠나. <태극기 휘날리며> 준비하면서 본 다큐멘터리 중에 사할린에 강제징집당해서 끌려갔다 돌아온 일흔 먹은 할아버지를 찍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 할아버지의 주름이 와, 정말, 그것만 봐도 눈물이 난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운 게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였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오락영화지만, 나도 오락영화라는 걸 알지만, 과장하지 않고 눌러서 갔던 건 그런 분들의 아픔을 담는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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