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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브래드 피트
박은영 2004-05-13

전사 ‘아킬레스’ 역의 브래드 피트

내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연기였다

브래드 피트는 동료들에 따르면, 아킬레스의 ‘현신’과도 같았다고 한다. 방대한 자료를 손수 검토하고, 즐기던 담배를 끊고, 10kg가량 근육을 늘리고, 8개월 이상 격투 기술을 익힌 끝에, 그는 아킬레스에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한다. 작가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촬영 당시의 브래드 피트를 “아킬레스의 영혼이 빙의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고, 대선배인 피터 오툴은 “촬영이 거듭될수록 쑥쑥 자라는 게 보여서 흐뭇했다”고 칭찬했다. 이쯤되면, 그가 촬영 중에 ‘아킬레스건’을 다쳤다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다. 4월30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물결치는 금발을 짧은 스포츠형으로 바꾸고 나타난 그에겐 육중해 보일 만큼 두툼한 근육이 ‘전리품’처럼 남아 있었다. 반복되는 인터뷰에 지친 듯 긴 한숨을 흘리며 나타난 브래드 피트는 멀리서 날아온 기자들의 피로를 먼저 위로했고, 인터뷰장엔 ‘감동의 물결’이 흘렀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시아의 다양한 매체를 대표하는 이 인터뷰 그룹은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경쟁적으로 중구난방의 질문을 퍼부었다. <무간도> 리메이크 계획부터, 안젤리나 졸리와의 염문설까지. 주어진 시간이 허무하게 흘러간 뒤, <트로이> 얘기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브래드 피트가 동료 배우들과의 파트너십이 좋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꺼내놓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고전물의 대사 스타일에 익숙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리서치도 많이 해야 했다. 사실 <일리아드>를 비롯해 아킬레스에 관한 자료는 무척 많았고, 그런 ‘발견’과 ‘탐험’의 과정은 오히려 즐거웠다. 하루의 절반을 이런저런 훈련에 투자해야 했고, 촬영 중에 큰 부상도 입었지만, 그것도 견딜 만했다. 무엇보다 지치고 힘들었던 일은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가뜩이나 스케일이 크고 물리적으로 힘든 영화인데다가, 날씨와 로케이션 문제로 촬영이 지연되는 일이 많았다.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작품의, 역할의 어떤 점에 끌렸나.

=아킬레스는 전사로서의 명성을 알리려는 욕망이 강한 인물이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에, 가족을 꾸리는 소박한 행복 대신 전장에서 이름을 드높이는 쪽을 선택한다. 그는 자기 자신 이외엔 누구도 믿지 않았고 어떤 도그마도 지키지 않았다. 전쟁과 살인 같은 끔찍한 실수를 거듭 저지르고 나서, 그는 휴머니즘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그런 고통스럽고 의미심장한 변화의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아킬레스와 프리아모스의 만남은 대단했다. 그 장면을 찍고 쇼크에 빠졌다던데.

=허리케인에다 폭우가 지난 뒤라 물리적인 어려움도 컸지만, 감정적으로 힘든 신이었다. 원작에서도 시나리오에서도 가장 좋아한 장면이고, 그래서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런 장면을 이 시대 가장 위대한 배우(피터 오툴)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늙고 무력한 적국의 왕 프리암이 부성애를 토로할 때 아킬레스는 완전히 무장해제당하고 만다. 손잡을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지만, 둘 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라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고 존중하게 된다. 이건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촬영이었다. 이제까지 내 작품 모두를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연기라고 자부한다. 촬영 뒤에 쇼크가 왔다기보다는 무아지경에 빠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그 촬영을 통해 체험한 ‘마법’을 관객에게도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역할 선택 기준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유별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수월해 보이거나 반복적인 듯한 역할을 피하는 것뿐이다. 과연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노력하는 편이 좋다. 아킬레스의 경우도 일종의 ‘아이콘’과도 같은 캐릭터이고, 역할을 위해 내가 특별히 준비하고 만들어가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한 2년간 조용히 지내서인지, 이런 큰 영화와 힘든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아킬레스는 고향에 남아 가족을 꾸리는 일과 전쟁을 통해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일, 양자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나.

=둘 중 하나만 고른다는 건, 맞지 않는 선택 같다.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모르겠다. 어떤 결단을 내렸을지, 정말 모르겠다.

-볼프강 페터슨은 <트로이>를 그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데이비드 베니오프가 방대한 원작의 본령을 잘 살려냈다면, 볼프강 페터슨은 그 엄청난 스케일을 제대로 살려냈다. 그는 영화의 드라마를 잘 짚어냈을 뿐 아니라 배우들간에 친밀감을 심어주려 노력했고, 또 해안에서 수천명이 뒤엉키는 거대한 신을 자신의 비전대로 잘 컨트롤해냈다. 뛰어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대의 섹시 스타다. 그런 당신에게도 누드신은 부담스러웠을 텐데.

=시나리오 속의 상황을 숙지하고 있었던 데다가, 흙먼지에 땀투성이 스탭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은 일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그리스인들은 거의 누드로 다녔다더라. 내가 알기로 그들은 누드족이었다. (웃음) 여기 미국에서나 누드가 금기시되는 것이지, 벗는 게 뭐 대순가.

-<올해 마흔살이 된다. 서글프지 않나.

=그렇다. 12월이면 마흔이 된다. 그런데 정말로 기분이 좋다. (기자들은 웃었지만, 그는 진지했다) 내가 무사히 마흔이 됐다는 게 자랑스럽다. 이제 연륜이나 삶의 지혜를 말할 때가 됐으니까.

-당신의 제작사 플랜 B가 <트로이>를 공동 제작했다.

=그렇다. 우린 곧 <무간도>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 나는 제작을 통해 연기와는 또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느낀다. 연기와 제작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힘들지만,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다. <무간도> 리메이크는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할 것이다. 아, 조니 뎁이 출연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공동 제작한다.

-당신의 미모는 당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됐나, 손해를 끼쳤나.

=손해를 봤다고 생각진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다른 능력도 필요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배우에게 외모는 카드와도 같다. 카드 게임을 할 때 우리는 주어진 패를 갖고 겨뤄야 한다. 내 경우는 좀더 좋은 패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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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