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목표는 마이너리그의 메이저”
2001-06-13

<친구> 투자 제작한 코리아픽쳐스 대표 김동주

● 일반 관객에게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김동주(37) 대표는 한국영화산업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파워맨이다. 무엇보다 <친구> 덕이다. 이 회사 저 회사로 전전하던 <친구> 프로젝트의 투자 제작을 결정함으로써

당사자도 믿기 힘든 아찔한 성공신화를 이끌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혜안’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같은 세대 감독이 만드는 좋은 영화라는

느낌 정도가 전부였다. 하긴 <쉬리>도 <공동경비구역 JSA>도 계산된 흥행이 아니었다. 결국엔 신의 점지가 작용한다

해도, 그런 천운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건 아닐 것이다. 세련된 논리보다는 강한 뚝심이, 치밀한 전략보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이 김 대표의

힘이다. 투자자라고 하지만 뒷짐지고 있기보다 직접 발로 뛰어야 직성이 풀린다. 캐스팅을 위해 배우를 직접 섭외하고 몇 차례 만나 담판을 짓는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계에 머무른 지 올해로 12년째. 90년 20세기폭스사가 첫 직장이며 이후 94년 피카디리극장과 익영영화사,

97년에는 일신창투 그리고 99년 미래에셋을 거쳤다. 지금은 미래에셋으로부터 분사한 코리아픽쳐스의 대표다.

<친구>를 두고 “행운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99년 미래에셋 영상사업팀장으로 있을 당시 그는

<춘향뎐> <세기말> 등에 투자했지만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고, <내 마음의 풍금> <거짓말> 등도

선전했지만 손해를 만회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는 요즘 “터뜨린 샴페인에 오래 취해 있어서는 곤란하다”며 스스로에게 경계의 고삐를 채우는 중이다.

<친구> 다음으로 코리아픽쳐스가 투자배급할 영화는 레니 할린의 <드리븐>. 투자할 한국영화로는 막동이시나리오 수상작 중

한편이 될 것 같다. 현재 한석규씨가 출연작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 <챔피?gt;도 곽경택 감독의 시나리오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돈 이야기부터 하긴 뭐하지만… <친구>로 얼마 벌었나.

아직 진행형인데… 대략 극장부금만 160억원 이상 될 것 같고. 해외 세일즈에다 기타 판권까지 합하면 약 200억원 정도 될까. 배급 등 부대

경비가 60억원 정도 들었으니, 제하고 나면 제작사와 투자사들의 몫은 대략 140억원쯤이다. 아마 7월 중순에 구체적인 수치가 나올 것 같다.

몇만까지 갈 것 같나.

어떤 사람은 900만명도 부르는데. 난 820만명 정도 본다. 앞으로는 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르겠지만 인구 5∼6만명의 소도시까지 직접 배급하는

형태로 파고들려 한다. 멀티플렉스에서 아직 반응이 좋은 걸 보면 한여름에도 어느 지역에서나 한관 정도는 계속 상영할 것 같다.

<친구>의 경우 각 지방까지 직접 포괄하는 직배를 택했는데.

모험이었다. 처음부터 이해관계 따지지 않고 모든 극장 다 받는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목포에 극장이 4개 있는데, 한 영화가 2개관 이상 들어간

건 개항 이후 <친구>가 처음이다.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왜 시장 룰을 깨느냐는 지방 배급업자들의 협박도 많이 받았다. 관객

수를 체크하는 입회원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금까지 1억원이 훨씬 넘는다. 대부분 지방은 어느 선에서 단매로 넘기는 것이 관례였고, 그래서

관객동원 집계시 서울 100만명이면 지방 100만명 정도라고 대략 추정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친구> 프린트에 일련번호까지

매기고, 입회원들이 재개봉관까지 추적게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노출되지 않았던 지방관객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도 <친구>처럼 직배를 했다면 좀더 큰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해외쪽 반응은 어떤가.

칸에서는 안 좋았다. 일본쪽 판권은 SBS프로덕션 방송예술센터와 아이젠텍이라는 두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210만달러에 판권을 구입했고,

아마 가가나 도호쪽이 배급을 맡아 11월 말쯤 개봉할 것 같다. 일본은 이야기나 정서가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다 한풍(韓風)이 불고 있는

터라 롱런할 거라고 말들 하더라.

<친구>의 흥행으로 투자배급사로서의 위상 또한 상승했을 텐데. 체감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3000마일>은 <친구>에 이어 개봉했지만, 1주일 정도 걸려 있다가 다 내렸다. 우리의 힘은

‘영화’의 힘에 달려 있다. 메이저 배급사나 외국 직배사라 해도 이제는 극장에 손님 안 들면 내리겠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다. 개봉하는 영화만

300편이고 배급사도 20개 가까이 된다. 공급이 많아진 것인데, 반대로 극장 파워는 예전과 달리 커졌다.

매번 메이저를 지향할 뜻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가.

남들이 자꾸 묻는다. <쉬리>로 강제규 필름이 사업을 확장하고, <공동경비구역 JSA>로 CJ엔터테인먼트가 메이저 배급사로

입성했는데, 결국 코리아픽쳐스도 그렇지 않냐고. 큰 그림 그려놓고 거기에 맞춰가긴 싫다. 우리보다 훨씬 큰 회사는 비전부터 제시하고 거기에

자금, 인력 등을 맞추어갈 만한 에너지가 있는데, 솔직히 그만한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그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박 터지고 나서

투자배급할 작품 수는 줄었다. 원래 한국영화 6편, 외화 8편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각각 4편, 6편 정도다. 투자자 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투자할 만한 영화가 많지도 않다. 이건 철저한 시장논리로 가야 하는 부분이다. 투자 유치하고 배급 물량

확보하느라 묻히는 영화까지 마구잡이로 하고 싶진 않다.

조건이 좀더 좋아지면 욕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안 그러려고 한다.(웃음) 우린 몇번 말하지만 목표가 마이너리그의 메이저다. 지금 있는 1, 2호 조합에 자체 운영기금 40억 정도 합해도

운용할 수 있는 돈이 130억원이다. 한국영화 3편 하면 끝나는 돈인데. 그걸로 어떻게 메이저가 되나. 400억원 이상씩 굴리는 메이저와는

노는 물이 다르다. 앞으로도 감당 못할 사업 벌이는 것은 피하려 한다. 대신 메이저가 있으면 그 아래 마이너도 있고, 마이너를 찾는 관객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할리우드의 미라맥스, 뉴라인 정도다.

특정 제작사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나.

어느 제작사에 미리 투자를 하는 건 싫다. 제작사나 투자사에게 모두 부담을 안겨줄 것 같다. 일신창투 시절 지금 싸이더스의

전신인 우노와 명필름, 미래에셋 시절 신씨네와 태흥영화사, 코리아픽쳐스 이름으로는 씨네월드와 씨네라인Ⅱ 등과 작업해봤는데 제작사마다 다들 장단점이

있다. 그런 만큼 매번 테이블에 시나리오 놓고 새로 시작하는 게 현명한 것 같다. 사실 <친구> 터지고 나서 곽경택 감독한테 많은

제의가 왔나 보더라. 어느날 곽 감독이 나한테 와서 그러던데, 왜 형은 다음 작품 나하고 같이하자고 안 하냐고. 그래서 그랬다. 넌 두 작품

실패하고 한 작품 성공했는데, 다음 영화가 <억수탕>일지 모르니까, 두 작품 실패하고 오라고 그랬다.(웃음) 곽 감독의 <챔피온>

역시 의향은 충분히 있지만, 시나리오 나온 뒤에 본격적으로 협의할 생각이다.

<친구>는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힘들었다고 들었다. 놓쳤다고 아쉬워할 이도 많을 것 같은데.

난 투자 안 한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때 자신들의 판단 근거와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일신창투 시절 <쉬리>도

그랬다. 확실한 답을 안 줘서 결국 삼성영상사업단이 하게 됐지만 일신창투가 실수한 것은 아니다. 사실 투자라는 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건 통계를 낼 수도 없는 것이고 100% 직감이다. 굳이 답한다면, 곽 감독이 서른 여섯, 나 서른 일곱.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게 우리 또래를 극장으로 불러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밖에는 못했다. 개봉 전 우리 맥시멈이 전국 150만이었던 것

보면 모르겠나. 사람들은 어떤 혜안이 있었느냐고 묻는데,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영화 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

90년 12월에 20세기폭스사에서 <다이하드2> 홍보 일을 시작할 때는 욕 많이 먹었다. 친구들은 80년 광주를 꺼내서, 어떻게

직배사에서 일하냐고 따져물었고, 충무로에 가도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잡지사 기자들과의 인연으로 ‘좋은 친구들’이라는 영화인

모임에 끼게 됐고, 사람들을 알게 됐다.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한국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익영영화사로

옮겼다. 이후 일신창투까지, 매번 잘 나갈 때 그만뒀는데, 옮길 때마다 뚜렷이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쉴 때도 많았고,

그러면서 하루에 수십통 오던 휴대폰이 직장 그만두고 나니까 뚝 끊기던 것도 경험했고, 그때의 참담함도 안다. 그래서 지금은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돌이켜보면,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을 텐데.

최종결정자로서의 책임은 <아나키스트> 다음으로 두 번째다. 인생에도 불혹의 시기가 있는 만큼, 한 50편 정도 해야 그런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는데, 행운이 너무 빨리 찾아와서 던진 질문이라고 받아들이겠다.

다른 투자자들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상대적으로 두루뭉술한 편이다. 투자사 대표이긴 하지만 충무로 현장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융권 출신도 아니고 그래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는 데는 그게 유리한 것 같다. 제작사와 투자사를 연결해주고, 관객과 영화를 만나게 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고.

투자할 때마다 어떤 ‘감’이 오나.

매번 아슬아슬하고 이번이 마지막 영화인 것 같다. 회사 직원들은 그런 날 보고 인터뷰할 때 좀더 강하게 나가야 배급할 때도 유리하다고 하지만.(웃음)

그렇다고 없는 파워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다보면 힘은 붙게 마련 아닌가. 오버하면 금방 들통난다.(웃음) 강한 놈이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놈이 강한 놈이라는 <세기말> 대사를 경구로 삼고 있다.

미래에셋 시절보다 조직이 커졌다. 가장 중요한 게 뭔가.

시스템, 시스템 하지만 그건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내부에 영화팀, 배급팀, 공연팀이 있는데 다들 인연이 끌어줘서 만난 사람들이다. 피카디리극장에서

있을 때 만났던 김길남 배급팀장이나 익영영화사에서 홍보할 때 만난 당시 SK의 김장욱 팀장이나 다 그렇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랑 수중분만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임영근 공연팀장, 삼성영상사업단에 근무하다 일신에서 만난 이정석 과장,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정헌조 이사까지 다들

그렇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내가 아니라 이들이 중심이 돼서 일하는 분위기로 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시스템에 대한 해답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꿈이 뭔가. 언젠가 영화가 전부는 아니라고 했는데.

우리 큰누나가 시집갈 때 군대에 있던 내게 그러더라. 넌 재밌게 살라고. 그게 꿈이 됐다. 누나는 전교 수석하던 수재였는데, 집이 가난해서

지방에 있는 교대에 장학생으로 갔거든. 어쨌든 직배사에서 마케팅 일 배우고, 배급사에서 영업업무 배우고, 투자사에서 투자실무 배우고 또 중간중간

배낭여행하면서 40개국 돌아다니고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다. 거기에다 흥행기록까지 냈으니, 지금 봐도 난 행운아고 또 만족한다. 씁쓸한 건

아버지가 간암으로 누워계신다는 것인데. 아들 신문에 났다고 들고 가도 못 알아보신다. 광산 김씨 가문 빛냈다고 해도 말이다.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