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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에 가린 순수의 그림자, 조시 하트넷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했던 죄이라서…. 전사한 줄만 알고 있던 친구의 연인과 사랑에 빠져버린 청년은 어느날 친구가 살아서 돌아오게 되자 마음으로 겪던 ‘죗값’을 진주만 폭격의 화염 속에 죽음으로 갚는다. 전쟁영화 삼각관계의 익숙한 재탕인 <진주만>의 애정 공식에 변수가 있다면 단연 이 청년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건강함과 영민함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 같은 아름다움을 결합한 조시 하트넷. <진주만>의 개봉 이후 대니 워커 역의 그에게 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느날 매니저가 전화해서 “조시, 네가 <진주만>에 캐스팅됐어”라고 말했어요. 기뻤지만 솔직히 블록버스터 전쟁영화에 출연하고 싶은지 확신이 안 섰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살고 계신 강 건너로 운전을 해서 갔죠. 그리고 아버지와 마당에서 세차를 하면서 그 소식을 알려드렸어요. 아버지는 그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조시, 네가 원한다면 넌 언제나 그만둘 수도 있어. 하지만 영원히 후회할 결정은 하지 마라.”

192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건장한 어깨와 각진 턱. 강한 남성성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요소들을 갖춘 조시 하트넷은 동시에 아직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동정을 잃기 전 소년처럼 순수한 베이비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묘한 부조화야말로 조시 하트넷이 디카프리오 이후 마음줄 곳 몰라 하던 십대소녀들의 애정의 융단폭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니 워커는 순수하고, 달콤하고, 친절하고, 창의적이죠.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여러 꽃잎 중 한잎일 뿐이죠. 아니 솔직히 말해 이번 영화를 통해 내게서 새로 자라난 부분이에요.” 물론 <진주만>의 강력한 배급력을 타고 조시 하트넷의 인기 역시 전세계로 투하되기도 했지만, 아이돌 스타로서의 인기는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들로 출연한 <할로윈 H20>(1998)를 통해 이미 예견된 바였다. <피플> 역시 1999년에 그를 ‘21명의 젊은 스타’의 명단에 올려놓는 선구안을 보였다.

비행기 같아요. 날을 수 있을 만큼, 날을 수 있는 곳까지만 가겠죠. 인기란 순간적인 것이란 걸 알아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만큼 사람의 혼을 빼앗아 놓는지도 알고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비행기는 영원히 떠 있지 않고 언젠가 착륙한다는 거예요.

유난히 인기나 유명세에 대한 경계와 자의식이 강한 이 스물두살 청년은 1978년 7월2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미네소타의 시골마을 세인트폴에서 자라났다. 건장한 체격조건덕에 고교 풋볼 선수로 활약하던 조시는 15살 되던 해 경기중 무릎인대가 파열되면서 선수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에게 또다른, 배우로의 인생을 열어주었다. 뉴욕주립대(SUNY)에 연기전공으로 입학하자,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보았던 배우들의 연기는 어느덧 자신의 일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항공사의 직원 역 같은 엑스트라 시절을 겪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1997년 TV시리즈 <크래커>로 얼굴을 알리게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오디션을 보러오라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흔히 알려져 있듯 <도슨의 청춘일기>에 6번 오디션을 봤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인생의 디딤돌이 되었던 <할로윈 H20> 이후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패컬티>(1998)에서도 조시는 일련의 고등학생 무리 중 가장 돋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진주만>의 행운이 찾아들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진주만습격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당시 생존자를 직접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재미로 가는 하이킹이 아니었어요, 진짜로 고된 훈련이었어요.” 함께 출연했던 벤 애플렉과 참여한 혹독한 군대캠프훈련은 소년 조시를 파일럿 대니 워커로 단련시켜주었다.

촬영이 끝나면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날 거예요. 오랜 벗인 유화 캔버스를 끼고 말이죠. 그림을 그릴 땐 정말 릴랙스하게 돼요. 캔버스 위엔 틀린 길도 바른 길도 없으니까요. 이미 조시는 모로코에서 촬영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과 현대판 <오델로>라고 할 수 있는 의 촬영을 마쳤고, 실연 뒤 ‘40일 동안 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금욕의 선서를 한 남자가 꿈속의 여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로맨틱코미디 을 촬영중이다. 어느덧 인기배우가 되었으니 근거지를 LA나 뉴욕으로 옮길 만도 한데 여전히 고향인 세인트폴에 머무는 그는 “친구와 가족이 있는 이곳이 좋아요. 혼란스러운 곳에 있는 것은 딱 질색이에요”라며 촌로 같은 대답을 던질 뿐이다. 그 소년 같은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