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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 삭제할 수 없는 이미지 파일, <엑스맨>의 휴 잭맨
위정훈 2001-07-11

늑대처럼 외로운 눈빛, 기다란 강철손톱, 온몸의 골격이 아다만티움이라는 특수한 물질로 이루어진 후천성 돌연변이 인간. 지워진 과거의 기억. 강철손톱이 튀어나올 때마다 아프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더욱 아픈, 어두운 캐릭터. 지난해 여름, 휴 잭맨은 <엑스맨>의 울버린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엑스맨> 이후 휴 잭맨이 맡은 역은 모두 상처를 간직한 사람이다. 애슐리 저드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썸원 라이크 유>의 에디는 첫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바람둥이이며, <스워드 피쉬>의 스탠리는 전처가 못 만나게 하는 딸을 만나기 위한 소송비용을 마련하고자 악당들한테 협력하는 컴퓨터 해커다.

날 때부터 혈관 속에 연기자의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1968년, 세계적인 미항 시드니에서 영국계 이민자의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휴 잭맨은 소년 시절엔 럭비, 크리킷, 수영, 테니스, 배구, 서핑 등을 즐기는 활력 넘치는 스포츠맨이었다. 그의 미래는 영화나 연기가 아니었다. 자의식이 강한 소년도 아니었고, 자폐적인 사춘기를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여덟, 그때가 생애 첫 갈림길이었을 것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예비 변호사나 판사, 정치가의 요람인 크녹스 그래머 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학교의 공기가 그를 질식시켰을까. 곧 휴식을 취하고 싶어졌다. 휴 잭맨은 쉬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훌쩍 떠났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긴 여행 동안 깨달음을 얻었다. 영국 등을 돌아다니다가 학교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돌아와 저널리즘을 공부했지만, 전공에 딱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해야 했던 마지막 학기에 그는 두 번째 갈림길에 섰다. 선택과목을 2개 신청해야 했는데, 아주 쉽다는 친구의 말에 극작과목을 택했던 그는 쩔쩔맸다. 지난 10년간 연극을 하지 않았던 담당교수가 그 학기에 연극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배역도 마음대로였다. 모자 속에서 사람 이름을, 또다른 모자 속에서 배역을 끄집어내서 낙점을 했는데, 연기의 ‘연’자로 모르는 휴 잭맨이 그만 주연을 맡게 되었다. 결국 다른 모든 수업시간을 합쳐놓은 것보다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보석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엉뚱한 전공 선택해서 3년간 잘못 살았다.”

분석이 아닌 창조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그는 1년 과정인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언 아카데미 오브 퍼포밍 아츠를 마친 뒤 TV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방송)에서 방영한 <코렐리>에서 데보라 리 퍼니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만난 데보라는 그의 반려자가 되었다.

영화 데뷔작은 로드트레인 운전사이면서 로맨스 소설가라는 또 하나의 비밀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로 분했던 코미디 <페이퍼백 히어로>(1998). <에르스키네빌 킹스>(Erskineville Kings, 1999)에서는 난폭한 아버지를 피해 집나간 동생의 형 역할을 맡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카데미상격인 오스트레일리아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원래 울버린 역에 내정되었던 더그레이 스콧이 <미션 임파서블2>의 촬영지연으로 <엑스맨>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급히 대타를 구했다. 그리고 휴 잭맨이 보낸 오디션 테이프를 본 감독은 도박을 결심했고, 그 베팅은 성공이었다. 그리고 <썸원 라이크 유> <스워드 피쉬> 등 할리우드와의 만남이 쭉 이어졌다. 휴 잭맨이 멜 깁슨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스워드 피쉬>에서의 휴 잭맨에 대해 <뉴스위크>는 “늑대인간의 갈기와 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구레나룻이 없으니 훨씬 보기 좋다”고 했지만, 울버린의 어두운 눈빛과 지독한 상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기억을 되찾은 그의 귀환을 기다릴 것이다. 지금 촬영중인 <케이트와 레오폴드>(Kate & Leopold)가 한발 먼저 찾아올 예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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