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게릴라 방식으로 만든 정통 문법의 영화 <구멍> 감독 김국형
사진 이혜정조종국 2000-03-14

“때로 나 같은 고집쟁이도 필요하지 않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겁없이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도대체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일까? <구멍>은 안성기라는 A급 배우를 기용한 것 이외에 사실상 상업적 고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다. 또 김국형(36) 감독은 현실적 한계를 예상하고 작정이라도 한 듯, 주류 시스템에서 한발짝 물러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제멋대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지금처럼 하면 몇년 안에 폐인 될 것”이라는 주변의 걱정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국형 감독은 단호하다. “현실인식은 바뀔 수 있어도 가치관, 영화관은 변할 수 없다.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싶다. 이런 영화 만들기가 내 몫이라면, 이대로 계속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구멍>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이래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해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 3월4일에야 가까스로 서울 4개관, 지방 6개관에서 단출하게 개봉했다. 결과는 ‘예상을 크게 빗나지 않아’ 관객 수를 내놓고 말하기 민망한 정도다. 이처럼 대단한 영화적 성과나 눈에 띄는 상업적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닌데 김국형 감독에게서 쉽게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영화 본령에 충실한 ‘정통 영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국형 감독의 이런 지향은 그가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남다른 경외심으로 느껴지지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구멍>은 개봉관에서 관객을 만나기까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지 3년이나 걸렸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사실상 ‘게릴라식’으로 지나온 김국형 감독에게서 <구멍>과 그의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개봉과정이 힘들었다. 개봉관에서 관객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영화를 공식적으로 소개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개봉 때까지 틈이 너무 길었다. 그동안 국제영화제에서 두번이나 소개되고, 영화를 완성한 지 열달이 지나 개봉 여부가 불투명하다가 개봉한 탓인지, 솔직하게 드디어 ‘개봉’이라는 감흥이 덜하다. 담담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잡 미묘한 생각도 든다.

-극장에는 가봤나. 개봉날은 어땠는가.

=개봉날 오전 11시쯤 극장에 나갔고, 주말 동안 피카디리극장에 있었다. 개봉날 피카디리극장 1회 상영에 관객이 60여명 정도였고, 정확히 모르지만 첫 주말 관객이 전국 5천명 이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이 워낙 적어서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극단적으로 갈리는 분위기였다. 비교적 나이든 관객은 호평이 많았다. 어머니 친구들 중에서 글쓰고, 그림그리는 이들이 봤는데 좋아해서 기분 좋았다.

-충무로 조감독 생활을 오래 했는데, 감독으로 데뷔한 감상은 어떤가.

=조감독으로 일할 때와 감독과는 차이가 상당히 컸다. 결정할 것도 많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감독은 좀더 고집스럽고, 좀더 뻔뻔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배우와 스탭들에게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 때문에 양보하고 넘어간 게 많다. 뻔뻔하게 영화만 생각하고 밀고 나가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실상 감독이 프로듀서 역할도 해야 했고, 제작과정이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들었나.

=태어나서 계약, 융자, 연대보증인 세우는 일 등을 처음해 봤다. 촬영을 시작해서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어떤 때는 이틀 분량을 하루에 찍거나 합쳐서 찍기도 하면서 처음 구상한 이미지가 축소되는 걸 그때 이미 알았다. 촬영 중반을 지나면서는 아예 그 시스템에 맞춰갔다. 판권담보 융자를 받았기 때문에 1년 안에 개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상당히 힘든 점이었다.

-지금쯤은 영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감이 생겼을 것 같은데.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결점이든 좋은 쪽이든,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만이 느끼고 아는 부분도 있다. ‘100만명이 적당히 울고 우는 영화보다, 한명이 통곡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소신은 변함없지만, ‘과연 그렇다면 통곡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는가’하는 반성을 많이 했다.

어린 시절 김국형 감독은 TV에서 주말 영화를 보고 나면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확인하는 열혈 영화팬이었다. ‘걸어다니던 영화사전’이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85년 서울예대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영화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뒤 몇편의 문화영화와 TV문학관 제작 일을 하다가 88년 김유진 감독의 <시로의 섬> 연출부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 김국형 감독은 그의 영화 인생에 운명의 끈이 된 배창호 감독을 만났다. 미국 UCLA에 유학을 다녀와 서울예대 조교와 배창호 감독 조감독을 겸하던 최영학씨를 따라 배창호, 이명세 감독이 묵고 있던 여관에 따라갔다가 ‘면접’을 봤다. 두 사람은 여관에서 <꿈>과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후 <꿈>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등에서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수련했다. 김국형 감독은 97년 <가족>을 준비하던 이명세 감독의 권유로 조감독을 맡기로 했으나, <가족> 제작이 무산되면서 <구멍> 준비에 착수했다. 제작 자체가 불투명하던 차에 당시 영화진흥공사 판권담보융자 대상작으로 선정돼 마련한 3억원으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구멍>은 판권담보 융자 3억원에 비디오 판권까지 미리 처분해 마련한 돈 등 6억원 가량이 들었다.

-굳이 <구멍>을 데뷔작으로 고집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나는 어차피 ‘탄탄대로를 달릴 운명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집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분있던 최인호 선생의 원작 분위기와 이야기에 호감이 컸고,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의 제작 규모와 캐스팅 등을 따져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프로덕션이었던 것 아닌가.

=먼저 전제할 것은, 안성기 선배의 연기 등 영화 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제작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말하자면, 제작비규모를 작게 가면서 A급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결과적으로 어울리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반대로 안성기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에 제작 규모와 환경이 너무 초라해 효율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작비 유치를 위해서 A급 배우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냉정했어야 한다는 반성을 한다.

-<구멍> 이전에 수차례 연출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련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용이 안 맞았다. 가치관이 안 맞았다.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수용할 수 있지만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영화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의 받았던 영화가 나쁜 영화라는 말이 아니라 나와 안 맞았던 영화라는 말이다.

-영화에 대한 가치관이라는 게 뭐냐.

=두 시간 동안 재미있게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삶의 가치를 되새겨보거나, 부정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반성적 의미를 끌어내거나, 긍정을 보여주면서 희망을 보여주는 등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주장을 담거나 관객의 감정에 개입하거나 건드리는 것, 두 시간 동안 관객을 마취시키는 것은 싫다. 이를테면 나는 <챔프>를 보면 눈물이 한 방울도 안난다. 형식면에서는, 영화언어의 문법은 50년대 이전에 이미 완성됐다. 영화는 그때 문법으로 다 찍을 수 있다. 요즘 영화가 뮤직비디오, CF, TV를 닮아가고 소재가 가벼워지는 게 싫다. 나는 영화 본연의 문법과 언어로 찍고 싶다. 그런 영화가 성공한 사례도 많다. 물론 현실과 접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영화감독으로서 언제나 관객과 만날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름대로의 돌파 전략은 진심이 통하는 좋은 시나리오를 쓰면 관객과도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또 대중에게도 알려져 있고 내 가치관에 맞는 원작이 있다면 영화화할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무작정 기다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 영화도 질적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어떤 경향에 치우치는 현상도 정화되리라 생각한다. 운좋으면 그때 만들면 된다. 많은 대중을 만족시킬 감독들은 많다. 나는 언제가 내 인생에 의미있는 영화 한편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다음 작품에 대한 걱정이나 조바심은 없다. 호구책은 따로 궁리중이다.

-그래도 영화가 산업적인 메커니즘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주류 감독들도 중요하지만, 나 같은 비주류 감독도 소중한 것 아니냐. 고집스런 사람들도 때때로 필요한 것 아니냐. 고집 센 사람의 고집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12살된 조카가 있는데, 삼촌이 만든 영화가 개봉했다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지금까지 항상 내 또래, 내 고민만 하다가, 조카가 좋아할 수 있는 영화, 어린이 청소년들이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소중한 깨달음이다. 생각이 열린 거다.

-나름대로 <구멍>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60∼70년대 영화풍을 느꼈다는 관객을 보면 반갑다. 내가 그걸 표방했으니까. 이런 영화를 만든 게 기특하다고 생각하거나, 열악한 조건에서 완성했다는 데 의미를 두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다. 굴곡없는 이야기를 리듬있게 풀어나가는, 영화적으로 계산된 리듬이 아니라 내 개인의 리듬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그렇고.

-영화를 만드는 궁극적인 목적이 뭔가.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감독이 되도록 이끌어준 영화는 몇편 안 된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 <태양은 외로워> 앙리 콜삐의 <그토록 오랜 부재> 세르주 브르기뇽의 <시벨의 일요일>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 등이다. 이런 영화 보면서 영화를 보는 가치관, 영화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흥행이나 상 같은 건 관심없다. 단 한명이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다.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다른 생계대책이 있었나.

=나도 내가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데,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며 산 게 신기하다. 90년 <꿈> 때 1년에 120만원 받았고, 94년 <젊은 남자> 때는 1천만원 받아서 연출부들 나눠주고 내 몫은 400만원이었다.

-취미는, 시간나면 뭐하나.

=음악을 즐겨 듣는다. 60년대 음악 좋아한다. 블루스, 솔, 재즈 등 모두 즐겨 듣는다. 배창호 감독의 <천국의 계단> <젊은 남자> <러브 스토리>,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의 삽입곡도 내가 골랐다.

-음반도 많이 가지고 있나.

=많았는데, 많이 팔아서 술마셨다. 지금은 LP 1천장 정도, CD는 300장 정도밖에 없다. 개런티 몇푼 받으면 어차피 굶고 살 텐데 표나게 쓰고 싶어서 절반 정도 떼내 왕창 CD를 사곤 했지.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