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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2001-07-19

<신라의 달밤> 김상진 감독과 그가 말하는 김상진표 영화

●6월23일 개봉한 <신라의 달밤>이 개봉 3주만에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겼다.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전국 400만까지 가능하다고 예상한다. <친구>의 흥행기록이 워낙 엄청나서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이정도 흥행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여름 방학 시즌. 극장의 성수기라지만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이 줄줄이 이어져 웬만한 한국영화는 간판 올리기도 힘든 시기이다. 지난 7월11일 제작사 좋은영화에서 만난 김상진 감독은 <주유소 습격사건>을 앞지르는 흥행성공에 기쁜 낯을 감추지 못했다. 바야흐로 흥행감독 김상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김상진의 영화는 지금까지 <투캅스3>를 제외하고 늘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이 거둔 성공을 보면 이제 누구도 김상진의 코미디 감각을 허투루 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흥행결과가 그의 작품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대신하진 않는다. 그의 영화는 여전히 비판적 시선과 관객의 열띤 호응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상진 감독 스스로 이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쌈마이’라는 말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한다. 다른 욕심없이 2시간 짜리 엔터테인먼트를 공급하는 사람으로서 일찌감치 자기 자리를 잡은 셈이다. <신라의 달밤> 이후 공동대표로 있던 영화사 좋은영화를 떠나 새 살림을 차릴 예정인 그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제작자로, 감독으로 일할 것”이라 다짐한다.+ 흥행성적은 어떤가? 관객반응이 예상대로인가

= 7월10일로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겼다. 예전엔 전국 200만이라고 하면 ‘악’소리가 났는데 요즘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숫자에 가치를 별로 안 두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 예상은 <주유소 습격사건> 만큼은 될 거라고 봤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웃음코드보다 조금 더 쉽게, 가볍게 접근한데다 스토리텔링이 있으니까. 게다가 <주유소 습격사건>은 전혀 주목받지 못한 느낌에서 시작한 영화지만 <신라의 달밤>은 기획이나 캐스팅에서 훨씬 주목도가 높았다. 초반 흥행은 확실히 <주유소 습격사건>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신라의 달밤> 개봉한 뒤 인터뷰한 걸 보니까 평단의 반응에 대해 크게 두가지 이야기를 해왔다. 한편으론 <주유소 습격사건>보다 못하다는 얘기에 대해서 그런 사람들이 <주유소 습격사건> 때 비판했던 사람들이라고 받아치고, 한편으로는 호평을 받는 이유가 여름영화 가운데 대표격인 한국영화라서라고 얘기하던데. 솔직히 스스로 평가하기에 두 영화 가운데 어느편이 낫다고 생각하나

= <신라의 달밤>에 대해서 극히 만족스런 면이 있다.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이 나름대로 내 스타일이지만 그동안은 평단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거 같다. <주유소 습격사건>도 평이 안좋았다가 관객이 워낙 많이 드니까 ‘이거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는 걸’하고 생각한 거 같다. <신라의 달밤>과 <주유소 습격사건>을 비교하자면 지금이 스타일면에서 더 다듬어진 거 같다. 하지만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내가 어디 유학 갔다온 것도 아니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닌데 영화 한 편 더 만들어서 얼마나 실력이 늘었겠나. <주유소 습격사건>은 일부러 거칠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극단화된 느낌이 많은 반면 <신라의 달밤>은 굉장히 공들여 다듬었다. 개인적으로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애정이 더 간다. 거침없고 속이 시원해진다는 느낌이 <신라의 달밤>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 <주유소 습격사건>에 대한 평에 대해 못내 섭섭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섭섭함이 있긴 하다. 지금 시점이라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주유소 습격사건>이 개봉했을 때 평이 워낙 안 좋았으니까. 그런데 <신라의 달밤>에 대한 평을 하면서 ‘<주유소 습격사건>의 풍자정신과 해학은 어디로 갔나’라고 말하는 걸 보면 이해를 못하겠다. 그때는 그런 평가를 안해주다가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인지.

+ <신라의 달밤>의 원래 아이디어에는 깡패와 교사의 역할바꾸기가 없었다가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그렇게 바꾸었다고 들었다. 여기엔 일반적인 질서를 뒤집는 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 뒤집힌 세상에 대한 풍자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아쉬운 감이 있다.

= 그런 식의 풍자를 하면 닭살스러워진다.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각 정권의 구호를 부수는 장면도 난 닭살스러워서 못본다. <주유소 습격사건>에는 어떤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주유소를 무인도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간 녀석들이 권력의 질서를 뒤집어놓는다는. 하지만 <신라의 달밤>은 그런 의도를 갖고 시작한 영화가 아니었다.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역할바꾸기가 나오게 됐는데 기본적으로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다. 깡패와 교사, 두 친구도 그렇지만 주변인물도 마찬가지다. 경찰도 뱃지를 던지는 게 고작이고, 깡패 보스는 겁장이이고, 고등학생들은 깡패가 되려고 안달하고. 그 정도 설정이면 된다고 봤다. 난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더 재미있는 쪽, 웃기는 쪽으로 결정하곤 한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찍는 내가 재미없어서 못한다.

+ <신라의 달밤>은 차승원을 발견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간 차승원의 출연작이 그의 외모나 카리스마에 기대고 있다면 <신라의 달밤>의 차승원은 그의 실제 성격에 의지한 듯하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돌쇠’같은 이미지를 살린 영화인데 차승원을 캐스팅할 때 그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인가.

= 맞다. 차승원에겐 그런 이미지가 있다. 차승원을 알게 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그간 술도 같이 먹고 어울리면서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이미지를 많이 봤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차승원이 ‘이건 날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말을 했는데 조금 오버이긴 해도 차승원의 실제 모습과 굉장히 닮은 인물이다. 기동이로 변신한 게 아니라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편했다. 캐스팅할 때 난 대체로 그 배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오는 편이다. 그게 전형적인 상업영화 감독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서 김혜수를 캐스팅한 것도 그렇다. 김혜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라면집하는 민주란이 될 수 없다. 관객들도 그냥 스타 김혜수를 보는 것이고. 난 연기변신을 하겠다는 사람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기존 이미지로 극에 잘 스며들면 된다. 그런 면에서 차승원은 기동이로 딱이었다.

+ <신라의 달밤>은 어쩔 수 없이 <친구>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건 <친구>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영화가 감정을 끌어내는 부분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다. 어쩌면 사랑과 우정, 둘을 나란히 놓고 갈 수도 있었을텐데.

= 처음부터 사랑의 코드로 풀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원래 시나리오는 로맨틱코미디였지만 내가 고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여전히 로맨틱코미디같은 분위기가 나는 건 김혜수의 존재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남자의 경쟁심리로 풀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김혜수 캐스팅은 다소 부담스런 면이 있었다. 스타에게 너무 비중이 적은 역을 주는거 아닌가 하는 점에서. 하지만 본인이 <캐스트 어웨이>의 헬렌 헌트 얘기를 하면서 출연하겠다고 나섰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헬렌 헌트는 처음과 마지막에만 등장하는데도 내내 존재감이 느껴진다며. 실제로 영화를 보면 김혜수가 나오지않는 장면에서도 웬지 존재감이 느껴진다.

+ 우정 얘기를 해서 말인데 <신라의 달밤>은 이지점에서 비약이 있다. 코미디로 풀다가 갑작스레 두 남자에게 끈끈한 우정이 생겨난다.

= 사실 편집하면서 영화의 톤을 맞추느라 고민했다. 감정선을 몰아가는데 자연스럽지 않은 면이 있다. 비약이라고 느끼는 건 전반부에 두 남자의 우정을 보여줄만한 장면이 없기 때문일텐데 사실 좀 찍긴 했다. 나중에 재미가 없어서 들어냈는데 그건 시간 계산을 잘못한 감독 탓이다. 한편으론 굳이 우정을 차곡차곡 쌓아서 잘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 스스로 좋아하는 영화라 말하는 이소룡이나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무술 또는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하지만 당신의 영화는 액션을 희화화한다. <신라의 달밤>에서의 액션은 한마디로 개싸움이다. 액션영화로서의 액션을 찍지는 않는데 그냥 코미디를 찍다보니 그런 것인가? 제대로 된 액션시퀀스가 있는 액션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 액션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액션은 내 영화에서 도구일 뿐이다. 코미디를 이끌어가기위해 어쩔 수 없이 넣어줘야 되는 거다. 실제로 급해죽겠는데 누가 액션영화에서처럼 싸우겠나. 액션영화로 찍으면 내 영화의 톤과 맞지 않는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향은 엄청나게 받았다. <신라의 달밤>에도 그런 흔적이 있는데 뭐랄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훨씬 냉정하고 건조하고 그렇다.

+ 그간 인터뷰한 걸 보면 스스로 ‘쌈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남들한테 그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나. 아니면 ‘쌈마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사랑하나.

= 쌈마이라는 말 좋아한다. 진심으로. 이젠 인정해주니까 좋다. 이건 니 스타일이야. 저건 김상진 아니면 못 찍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기분좋다. 강우석 감독은 <신라의 달밤> 보면서 ‘난 죽었다 깨나도 저런 거 못찍는다’고 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너 진짜 쌈마이다’라고 했는데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거 같다.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 먹히는 건 그런 거다. 영화가 어차피 관객 위주라면 따라가야된다고 본다. 만화적인 것, 허무하게 풀어버리는 것,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것, 그런 것이 요즘 관객의 호흡인 거 같다.

+ <주유소 습격사건>에 이어서 박정우씨가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둘의 협력관계는 어떻게 이뤄지나. 박정우 작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 박정우 작가는 <주유소 습격사건> 초고를 들고와서 알게됐는데 호흡이 잘 맞는다. <신라의 달밤>은 마지막 장면 촬영 때까지 밤새가며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해줬다.

+ 앞으로 김상진표 영화가 나갈 방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 내가 만드는 영화가 하나의 철저한 엔터테인먼트가 됐으면 좋겠다. ‘재미있지만 남는 건 없네’하는 관객에겐 500원이라도 쥐어주고 싶다. 그래야 남는 게 500원이라도 있을테니까. 2시간 짜리 영화에서 남아야 뭐 대단한게 남겠나 싶다. 즐겁게 볼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인터넷에서 누가 ‘김상진의 영화는 일품요리나 프랑스 정식이 아니라 싸구려 재료로 만든, 비오는 날 먹는 부침개같은 것이다. 싸지만 맛있다’라고 쓴 걸 봤는데 그런 표현이 맘에 든다.

글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