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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보다는 휴먼드라마로 가고 싶었다”
2001-02-06

<불후의 명작>으로 데뷔한 심광진 감독

심광진(36) 감독의 입봉작 <불후의 명작>은, 바라보고 있으면 만든 사람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르는 영화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영화 안에서 인물들은 어떤 경우라도 타인을 다치지 않으며 미욱하게 그렇지만 꾸준히 살아간다. 그처럼 다소 어눌한 필치에 발신인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를 이미 받아 읽은 탓인지 심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걸은 눈쌓인 삼청동 길은, 초면의 상대를 만나러 가는 길목답지 않게 푸근했다. 영화 속 여경과 인기가 언제나 고집하던 창가 테이블을 택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개봉 뒤 훌쩍 떠난 여행길에 들른 변산 내소사의 대웅전 문살이 너무 예쁘더라고 감탄하는 그의 눈빛만큼은 짐작대로였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꽃잎>의 연출부로,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조감독으로 개봉을 겪어봤지만, 감독 데뷔작의 개봉은 기분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사상 최고로 두려운 크리스마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다. 언제나 성탄절이면 혼자 지내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며 보냈는데. 영화를 만들 때부터 흥행에 대해선 체념한 부분이 있었는데 예매가 매진되어 깜짝 놀랐다. 관객동원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호평이 거의 없다시피한 점에는 좀 충격을 받았다.

<불후의 명작>이라는 과장스런 제목, 박중훈이라는 스타의 출연이 부추기는 기대치가 영화의 실체와 괴리가 있어서 부담스러웠을 텐데.

물론 첫 영화가 ‘불후의 명작’이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삶을 유지하는 사람의 모습이 불후의 명작이란 뜻이었는데 절실한 의미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제목 붙이면서 ‘불우한’ 영화니 불후의 ‘졸작’이니 놀림받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틀리지 않았다.(웃음)

이번에 박중훈이 보인 이완된 스타일의 연기를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고 들었다.

‘박중훈표 코미디’를 피하는 것이 중요했다. 박중훈은 일상을 연기하고 웃음은 주변인물에게 분담시켰다. 액션, 코미디에서 채플린 같은 연기를 하는 그가 연기를 안 해버리면 어떨까 궁금했다. <투캅스2> 같은 박중훈 출연작을 보다 슬쩍 스쳐가는 찰나의 숏에 비치는 그의 눈망울이 너무 예뻐 놀랐고, 왜 저 눈빛을 쓰는 영화가 없을까 의아했다. 그의 캐스팅이 원하는 연출스타일과 안 맞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냥 박중훈씨가 좋아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나도 겁난 면이 있다. 인기가 우는 장면은 첫 테이크에서 중훈씨가 정말 서럽게 울었는데 배우의 이미지가 워낙 진하다보니 자연스러운 연기도 너무 강해보여 일부러 감정이 좀 눌려 있는 장면을 골랐다.

언제부터 영화를 마음에 두었나.

음악광이었던 중3 때, 영화광 급우와 <테스>가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네 아니네 내기를 했다가 진 대가로 영화세계에 입문했다. 친구 대신 명동에서 사던 일본영화잡지 뒤쪽 흑백페이지에 실린 페데리코 펠리니, 알랭 레네 등의 영화스틸은 묘한 마력이 있었다. 평론가를 꿈꾸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하길종 감독 추모행사에 갔다가 당시 유행한 호스티스영화와 다른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한국영화도 인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구나’를 깨닫고, 감독이 되기로 했다. 누구보다 강한 힘으로 자기와 세상의 빛과 아픔을 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독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웃음)

불후의 명작> 속 영화계의 살풍경은 본인이 겪은 충무로인가.

입봉 앞두고 3년쯤 헤매고 있는 조감독들은 자기 작품이 남에게 용인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삶 자체가 폐허다. 페널티 킥을 앞둔 골키퍼의 불안이다. 뭔가 저편에 있을 듯한 가느다란 희망만 있다. 주변 선후배들이 받는 충격과 분위기, 심정이 <불후의 명작>에 투영돼 있다.

영화 속 영화의 시나리오로 액자 구조를 만들었다.

인기와 여경의 사랑이야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직접적 감정소통은 배제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사랑의 매개물이자 결실 노릇을 했다. 처음에는 레슬링을 영화 속 영화의 소재로 생각했는데 <반칙왕>이 나와서 변두리에 힘들게 남아 있는 또다른 소재로 서커스를 떠올렸다.

여경과 명준을 잇는 고리가 한참 늦게야 드러난다. 인물 관계에 대한 설명을 굉장히 아꼈는데, 복선을 너무 깊게 묻은 건 아닌가.

되도록 기존 멜로 코드를 피하고 휴먼드라마로 가고 싶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등만 보는 사랑,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에로비디오 부분에 코미디 요소가 강하다보니 숨겨놓은 사랑의 감정이 부각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감정의 근거들을 아예 더 깊이 묻거나 아니면 좀더 친절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인기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에로배우 진희가 쓰고 있던 모자를 인기처럼 슬쩍 돌려쓰는 장면이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연애감정의 세부가 눈에 밟힌다.

어려서 하는 연애는 발랄하지만 나이 들어 하는 연애에는 상대에 대한 존경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영화에는 원수지고 헤어지는 커플이 없다. 표현 못하는 사랑의 아픔도 그렇다. 어찌 보면 적극성의 결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일 수 없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내 영화의 연인들은 자기모순 때문에 헤어지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남긴다.

서른 이상의 관객의 감수성을 편애한 것 같다. 생계를 위해 임시로 붙잡은 일 안에 평생 주저앉아 나이 들어가는 심정이라든가, 늦은 밤 지하철 의자에 몸을 기댄 여경의 지친 모습이라든가. 함중아의 노래 <내게도 사랑이>도 그렇고.

앞으로 또 영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웃음) 첫 작품만큼은 절대 ‘척’하지 않고 내가 잘 아는 이야기, 나의 세대가 들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생에 크게 도움은 안 돼도 아름다운 채 남아 있는 관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경과 인기의 발레 흉내나 반딧불, 차 안 장면의 스크린 프로세스 효과, 말풍선 등 요즘 관객에게 통하기에는 조금 과잉이다 싶은 장식들을 집어넣었는데.

누구나 나이먹어도 친구를 만날 때나 연애할 때는 유치하다. 차창에 비친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은 장비가 안 따라줘서 할 수 없이 CG로 효과를 낸 것이다. 스크린 프로세스, 포커스 아웃 효과를 CG로 내면서 CG팀에서는 “남들은 컴퓨터로 현실감을 극대화하려 하는데 감독님은 왜 망가뜨리려고 하냐”고 불평하기도 했다. 오히려 불안해서 더 눈에 띄게 확실히 못한 것이 실수인 것도 같다. 의도적인 유치함이 정서적 장치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서란 자연스럽게 유도해야지 장치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선배도 너무 악하게 그리지 말자”, “주인공이 꼭 성공해야 되나요?”라는 인기의 대사는 <불후의 명작>에 관한 감독의 혼잣말 같다. 어렵게 말하면 이중담론이고, 스테레오 타입화에 대한 거부감도 컸고. 빚독촉하는 사촌형도 영화사 기획실장도 사는 것은 다 힘들다. <불후의 명작> 안에서는 극적 대비를 위해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따지고 보면 빚 안 갚는 인기가 제일 나쁘다. 마음 안 털어놓은 여경도 얼마나 나쁜 여자인가? (웃음)

“에로비디오가 왜 나쁘지?”라는 20자 평이 있었다. 인기는 에로비디오를 영화로 간주하지 않고, 극중극의 공중곡예사는 발레리나를 꿈꾸고 대필작가 여경은 소설가를 꿈꾼다. 적통의 예술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명히 갈라놓았는데.

에로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희화화된 에로비디오 제작자나 업계 모습을 통해서 한국영화산업 전체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가는 돈의 단위가 다를 뿐 충무로 상황은 더할 수도 있다. 과장과 희화화는 오히려 억제한 편이다. 실제 에로영화업계는 한솥밥먹는 식구들 분위기가 강해서 영화보다 훨씬 우습고 재미난 일이 많다. 에로비디오가 하류 문화라서 고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비주류라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답답하기는 인정받은 유망주 감독 명준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는 숨통이 틔어 있는 인물이 없다.

내세울 것 없는, 어쩌면 감독으로서 재능마저 없을지 모르는 남자로 설정된 인기의 캐릭터는 흥미롭지만, 그와 별개로 극의 중심으로 구체화가 부족했다는 평도 있다.

어쨌거나 1시간50분짜리 드라마인데 일상을 살리려고 극적 구조를 너무 느슨하게 풀어버린 게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 캐릭터의 정확한 해부와 분석도 모자랐다. 나의 관점과 시각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한편의 영화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캐릭터나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 장면의 에로비디오 촬영현장에 인기는 목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는다.

인기는 거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가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지만 직접 보여주기는 싫었다. 다만 여전히 희망을 떠들면서 살고 있을 거다. 여경과 인기가 커플을 이루었는지 여부도 사소한 문제다. 연인의 형식을 갖추었냐는 것보다 그들의 감정은 그들이 책임지고 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숙제’를 받아든 심정이겠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지금의 두 고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영화가 다음 영화면 좋겠다. 내겐 발언과 관조의 욕망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 대학 시절 오즈 야스지로,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 <동동의 여름방학>을 보고 이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구나 느꼈지만 동시에 누군가 미리 다했다는 사실에 실망도 했다. 발언하는 영화도 언젠가는 하고 싶지만 목소리만 높고 설득력 없는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글 김혜리 기자vermeer@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