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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밉상되는데”, <산책>의 박진희

고단한 삶을 새빨간 루주와 매니큐어로 가린 연화. 힘들어서 피신한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에서 네명의 남자를 만난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삶의 줄 위에 서 있기는 이들도 매한가지나 그들은 태연스레 기타의 줄감개를 매만지며 음을 고르고 있다. 도돌이표 따라 제자릴 맴도는 것 같아 연화는 더딘 보폭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영화’가 끝나고 ‘산책’이 시작될 쯤이면 그들 곁에 나란히 선다. 그때까지는 혼자 좋아라 앞서기도, 뒤를 돌아보느라 처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잔잔히 흐르는 수면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물고기 같은 느낌이에요. 연화는 제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 중에서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죠.” 연화 역을 맡은 박진희가 자세히 소개하는 <산책>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듣는’ 영화다.

“혹시 제가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요?” 영화를 미리 본 주위 사람들이라면 박진희에게서 한번쯤 시달렸을 만한 질문이다. “내면을 그냥 통째로 드러내선 안 되고 묻어나야 하는데 힘들더라구요.” 상스런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가슴으론 허밍을 굴려야 하는 느낌이랄까. 작부 연화 역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먼저 버려야 했어요. 실제 그런 곳에도 몇번 갔는데 나중에는 그분들이 싫어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결국 연화의 성격과 비슷한 친구를 모델로 삼았죠.” 그래도 연화는 <간첩 리철진> 때 화이보다 수월했다. “그때 저에게 주어진 숙제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화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 진희를 그대로 옮겨놓는 식이었죠.”

자신에게 연기나 배우에 대해 묻는 큼지막한 질문들이 박진희는 버겁다. “아직 멀었구, 어렵구, 할말도 없어요. 아직까진 시켜주니까 하는 연기죠. 알아서 하는 연기를 하려면 기다려야죠.” 작품을 고를 때마다 이 역할을 해서 ‘얻는 게 뭐지’ 하고 따지기 전에 이걸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배우라는 수식이 무거워 막상 작품 하다보면 매번 자학도 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만이 갖고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 않으냐 했더니 놀래서 헛기침을 해댄다. 촬영 현장에서 “우리 진희 잘했어” 하는 격려 반에다 “앞으로 점점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 반을 합쳐 ‘한몫 해냈다’는 보람을 얻으려 한단다.

눈썰미가 있어 쌈바르다는 소릴 들을 만한 박진희는 남하고 친해지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 “내가 먼저 열고 들어가려 해요. 당황해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제 이야길 털어놓으면 상대가 금방 알더라구요. 그럼 되는 거죠.” 새로 시작한 드라마에다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만큼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애먹은 적도 여러 번. 일정들이 겹칠 때면 사정이 이러하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이 싫다지만 정색하고 쉽게 거절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 하자고 함께 모인 사람들한테 주는 덧정이 많아서다.

“긴 눈에 처진 갈매기 입술이라 웃으면 밉상이 돼요.” 옆에서 보기엔 복스럽기만 한데도 자신의 웃는 모습은 꽝이라는 박진희다. “회사를 다녔을 것 같지는 않고. 내키지 않는 일을 끈덕지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백수로 놀아야 했겠죠. 이 일을 하게 된 건 다행이에요. 사실 정돈된 생활은 재미도 없고 자신도 없어요.” 인터뷰 도중 혼자 박수쳐가며 까르르 웃어젖히다가도 할말은 힘주어 또박또박 말하는 박진희. 기회가 된다면 달랑 가방 하나 메고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게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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