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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역할은 계속, 투쟁전술은 변화`
2001-02-06

영화인회의 정지영 전임 이사장, 이춘연 신임 이사장을 만나다

정지영 감독은 1988년 직배 반대투쟁 시절부터 한국영화계의 투사였다. 지난 10여년 동안 새로운 영화세상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뚝심있고 사심없는 그는 든든한 맏형이었고, 그 때문에 돈 안되고 짐만 되는 이런 저런 감투를 써야 했다. 본업 생각이 꿀뚝 같았겠지만, 후배와 동료들의 간청을 매번 거절하지 못해, 촬영 현장 밖에서 많은 날들을 보내야 했다. 속으론 마지막 감투이기를 바라는 영화인회의 이사장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면서, 정 감독은 "이제 나처럼 유연성이 없는 사람은 안돼"라며 웃었다. 그의 짐을 떠맡은 신임 이춘연 이사장(씨네2000 대표)도 따지고 보면 정 감독과 같은 종족이다. 96년 정지영 감독과 함께 스크린쿼터감시단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영화인회의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정 감독과 함께 궂은 일을 해온 사람이다. <손톱> <지독한 사랑> <여고괴담> <미술관 옆 동물원> <인터뷰> 등을 기획한 제작자기도 하며 입심과 넉살이 충무로 최고수급이다. 지난해 12월16일 영화인회의 2000년 정기총회에서 제2대 이사장으로 뽑힌 그는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말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영화인회의는 99년 9월17일 “스크린쿼터 지키기 싸움을 계승하고 영화계 내부를 스스로 개혁해 21세기를 대비하는 전망을 제시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영화인들의 공감대 속에 제작자, 감독, 평론가, 배급 및 마케팅 관계자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결합체로 나선 단체. 출범 초반 한국영화인협회쪽의 집중 견제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스크린쿼터 사수투쟁, 등급외 전용관 설치를 위한 영화관련법규 개정 노력 등 영화계 현안에 발벗고 나서왔다. 창과 방패, 그동안 서로 다른 스타일로 영화계 일을 도맡아온 두 사람이 한국영화계와 영화인회의의 앞날을 놓고 신년 정담을 나눴다.

정지영 감독/ 시작할 때 1년만 하겠다고 했으니까, 빈 말은 아니지?

이춘연 대표/ 한번 잡기 시작하면 계속 갖고 싶어하는 게 대권 아닌가? (웃음) 신문에서 봤다며 누군가 물어보더라고. 월급 받냐고. 우리 장모님도 그랬어…. 형님은 도대체 왜 그만둔 거야?

정/ 지금까지 해온 일이 본업에 지장을 주기도 했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잖아. 지난 정권까지는 영화정책이나 제도를 놓고 항상 부딪히기만 했으니….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이젠 정부쪽과 요구하고 조율하는 관계를 만들었으니까, 여전히 영화문화에서 NGO 역할을 하되, 투쟁일변도의 전술은 바뀌어야지. 이제 내 캐릭터는 리더가 아니야. 이 대표처럼 포용력 있는 이가 적임이지. 어쨌든 무거운 짐만 떠넘겨준 것 같은 느낌인데.

이/ 그래서 안 한다고 했잖아.(웃음) 왜 하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 내가 평상시에 좀 우유부단하고 두루뭉술해서 그런가. 겸손 떠는 게 아니라 내 깜냥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서 싫었어. 결국 맡기로 결심한 건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나보고 하라는 건 반대로 날 인정해주는 거잖아. 고마운 일이고,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물론 다른 동료들이나 회원들이 도와줄 거라고 믿으니까 한 거지.

정/ 한-미투자협정 관련해서 스크린쿼터 축소 발언이 터질 때 반대투쟁 했잖아. 그때 영화계에 신념과 정열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 놀랐어. 이기적인 생각도 들고. 내 일에만 신경을 쓸 때도 됐잖냐. 나도 감독 좀 하자. 뭐 그런 거 있잖아. 사실 박철수 감독말고 내 또래 누가 있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웃음) 자꾸 밀려나고 있다고. 감독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대학에서 가르치던 일도 그만뒀어.

이/ 아쉬움은 없어?

정/ 적자를 메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 정도. (웃음) 영화인회의라는 조직이 몇 사람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건 아니지만, 내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는지가 습관이 돼버린 나보다는 유연성 있게 꾸릴 수 있을 거야. 이 대표는 의견이 다르면 귀담아들을 줄도 알고, 달래서 설득할 줄도 알잖아. 난 그게 부족해.

이/ 그러니까 형님을 고2 수준이라고 부르지. 나보다 여섯살이나 많지만, 거짓말 못하고 계산도 못하고.

정/ 고등학생도 거짓말 해. (웃음)

이/ 요즘 인터뷰 나온 것 보면 영화인회의가 영화인협회와 합친다는 쪽으로 적는데.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함께 할 거냐고 물어서 못할 것도 없다고 한 거지. 화해하라는 말도 나오는데 사실 난 싸워본 적도 없는걸. 다만 영화는 문화잖아. 다양해야 하고. 신인이나 노장이나 누구나 판에 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 영화계 전체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난 뭐든 할 거야. 단 누구든 사심이 들어가선 안 돼.

정/ 영화인회의 탄생이 영화인협회와 다른 단체를 만들자는 건 아니었어. 영화인회의 출범은 쿼터 싸움 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 생각이었고 그 결과였지. 영협은 순수 영화인들만의 모임이잖아. 그런데 한국영화정책이나 산업을 논하고 이끌려면 제작, 배급, 평론, 하여튼 영화관련자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는 조직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한 거지. 다만 그 시점이 대기업이나 금융 자본이 들어오고 새로운 인력들이 들어오고 또 선배들이 밀리던 때라 영협 죽이기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지. 갈등이나 오해가 있다면 오히려 다른 거야. 영화진흥법 개정 등과 같은 정책이나 제도 정비에서 뜻이 달랐던 거. 이제는 그런 문제까지도 논의가 가능할 정도로 변한 것 같아.

이/ 돌아보면 한국영화 껍데기는 발전했지. 그렇게 보여. 관객 수도 늘어났고, 제작편수 많아졌고, 수출도 늘었고. 근데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명필름을 제외하곤 맘 편한 데는 없는 것 같아. 이럴 때일수록 동업자 의식이 필요해. 내가 영화 못 만들어서 망하면 그건 다같이 망하는 거란 말이야. 내가 그만큼 관객을 내쫓았으니까. <공동경비구역 JSA>도 한국영화 관객을 모아주니까 잠정적으로 득이 되지. 잘한 사람에게 칭찬해주고 못한 사람에게는 야단칠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 생각하고 위로해 주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해. 신당동 떡볶이집이랑 신림동의 순대타운처럼. 이런 분위기는 우리 후배나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테고.

정/ 현재는 영화배우 협회쪽 배우들이 참여를 많이 못하고 있어. 이유야 있지. 동시녹음 시스템이 들어가면서 후시에 익숙한 선배들은 대사훈련이 안 돼 있으니까. 영화인회의와 영협과 함께 그분들한테 무료로 워크숍을 제공하고 지금 제작자나 감독들과 미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야.

이/ 젊은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형님뻘 아버지뻘 분들에게 같이 하십시다 하고 감히 말을 붙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단순히 세대차의 문제만은 아닐 거야. 그 부분을 연구해야지.

정/ 2000년 하반기에는 제한상영관을 둘러싼 논의로 시끌벅적했지. 그건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끝없는 싸움이라고 봐. 이제는 실질적인 위헌 요소가 제거된 심의제도나 기구가 필요한 시대야. 임명제말고 정말 민간자율심의기구가 맡아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여전히 남아 있는 등급거부 조항은 말이 안 돼. 위헌 요소를 왜 또 만드냐는 말이야. 민간자율심의기구를 만들자는 것을 전제로 논의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합일점이 나오고.

이/ 창작하는 입장에서 표현의 자유는 쟁취해야 하지. 그런데 제작자 입장에선 매우 예민한 문제야. 처음에는 창작의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구속에 대해 반발했지만, 이젠 명확한 영상물 심의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민간자율로 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정/ 내 말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야. 이사장을 그만뒀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등급외전용관이라는 것은 포르노전용관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형법에 음화배포 및 제조죄가 있어 포르노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것도 바꿔야 한다는 주의니까.

이/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있어야 돼. 그건 책임이겠지.

정/ 범죄 관리적인 차원의 문제 접근은 곤란하다는 거지.

이/ 기준은 필요해.

정/ 기준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는 거야.

이/ 제작자 입장에선 그 부딪히는 시간이 너무 괴로워….

정/ 영화인회의 운영 시스템 중 크게 변하는 게 있을까. 생각 좀 해놓은 게 있어?

이/ 틀은 그대로고, 아마 몇 가지 소위 정도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아. 영상유통환경개선위원회 정도가 적당하겠네. 배급쪽 친구들이 입회하기로 했고. 영화시장에서 배급시 한국영화가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들은 색출해서 외화와 똑같은 조건에서 깔릴 수 있도록 해야지. 그건 사실 너무 오랜 관행들이야. 그걸 뿌리뽑고 습속들을 바꿀 필요가 있어.

정/ 부금을 늦게 받는 것도 문제야.

이/ 사실 매일 받아야지. 현금인데.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정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정/ 그렇게 되면 곧바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니까.

이/ 요즘 극장 운영하는 이들이 현대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 잘되리라 믿어. 극장주는 내 재산이다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등기상 건물주일 뿐이야. 영화인이 주인이고 소비자들이 손님이지. 새해는 어떻게 보내실 건지.

정/ 지금 하고 있는 <은지화> 잘해야지. 요즘 강릉에서 시나리오 고치는 중이야. 짐을 덜었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투자자들한테도 내가 환영받는 처지는 아니잖아. 그 사람 영화 만들어봐야 흥행하겠느냐 뭐 그런 분위기니까. 그걸 부수기 위해 노력해야지. 아무래도 현장 분위기가 젊어지다보니까, 그 분위기가 나이먹은 세대를 즐겁게 포용하진 못해. 어렵지. 그런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어. 뭐 그 정도야.

이/ 회사 이름이 씨네2000인데. 회사 만든 6∼7년 전부터 매일 2000년엔 씨네2000 난리난다, 뭐 그러고 돌아다녔거든. 그런데 <인터뷰> 한편 했어. 물론 논 건 아니지. 많이 준비했으니 올해는 서너편 정도 선보일 수 있을 거야. 보따리를 풀어야지.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되고 나니까 2001년은 영화인의 해로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도 생기더라구. 영화인들이 모여 이 판이 출렁거리도록 만들어야지. 막연한 생각이지만, 훌륭한 역학자들이 그런 말 하잖아. 운명은 자기 맘속에 있다고. 영화의 운명도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글 이영진 기자anti@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