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지난 8년, 관객의 웃음이 가장 그리웠다”
2001-08-01

<엽기적인 그녀>로 돌아온 감독 곽재용 (2)

+ 원작소설을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영화화하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췄나.

= 소설은 가벼운 연애담이란 느낌이었다. 영화에도 좀 그런 부분이 있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게 작위적이란 생각도 들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더해가면서, 라스트를 행복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또 <엽기적인 그녀>인데 사실 엽기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소나기 패러디 버전, 토사물 삼키는 장면, 하이힐장면 같은 걸 추가했다. 좀더 엽기적으로 재밌게, 후반부는 행복하게. 영화를 본 관객이 정말 즐겁고 행복했으면 했다.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다면 더 좋고. 치열한 예술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소설 자체가 재밌으니까 영화도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스무살, 젊은 시절의 감성을 복기해보는 영화.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8년간 가장 그리웠던 게 관객이 내 영화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거였다. 언젠가는 <동년왕사>처럼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도 만들고 싶지만, 지금은 좀더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

+ 남녀의 캐릭터가 전도된 설정은 새로워 보이지만, 사랑이야기를 끌어가는 감성은 구식이란 생각도 든다. 감상주의적인 신파로 흐르기도 하고.

= 구식이라기보다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편지를 쓰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 2년씩 기다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연인들도, 지나온 사람들도 내 사랑이 어땠나 돌아볼 수 있으면 했다. 신파와도 좀 다르다. 신파는 슬픈 감정에, 슬픈 대사에, 슬픈 음악과 함께 마냥 슬프게 가면서 구구절절 슬픔을 강요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차역에서 둘이 헤어지는 장면도 슬픈데 코미디로 풀었다. 하나는 올라타고, 하나는 뛰어내리고. 탈영병이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총을 겨누는 장면이 좀 신파스러운데, 결국 코미디로 바뀐다. 슬프면서도 웃긴 감정, 그 두 가지 감정을 섞어놓는 것. 아주 진지한 데서 나오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비오는…>에서도 이경영이 ‘까르르’ 소리를 낼 때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인 것처럼.

+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비디오 가게를 하다가 감독에 데뷔한 이력이 특이하다.

= 원래 연영과를 가고 싶었는데, 말도 못 꺼내볼 만큼 아버지가 워낙 무서웠다. 그나마 물리를 좋아해서 물리학과를 갔지만 영화를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필름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바늘구멍 사진기와 필름을 이용해서 카메라를 만들어 사진을 찍고, 옛날 사진의 필름 표면을 죄다 긁어서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환등기에 비춰보곤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의 필름이 거의 없다. 그것 때문에 감독이 되기도 했겠지만, 가끔 안타깝다. 언젠가 꼭 그 유년 시절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환등기에 모터를 걸어 영사기처럼 만들고, 안양에 있다는 신필름에 순전히 필름 주우러 가겠다고 걸어가다가 고개 하나 넘고 지쳐 돌아온 기억도 있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해서 아버지 몰래 영사기 한대, 카메라 한대를 구한 게 재수 시절이다. 그때 찍은 게 프랑스문화원에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대학 3학년 때 만든 단편영화 <선생님 그리기>로 청소년영화제에서 상금 200만원을 받고부터는 영화만 했다. 영화세상의 안동규, 영화평론가 이효인 등 동기들과 ‘그림자놀이’란 영화패도 만들었고. 비디오 가게는 졸업하고 <비오는…> 하기 전까지 잠깐 했는데, 마음껏 영화보는 재미가 있었다. 왕가위의 <열혈남아> B자 테이프,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등등 보물을 찾아내는 느낌이었으니까.

+ 감독의 영화라기보다 <결혼 이야기> <편지> 등으로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이끈 신씨네의 기획성이 강한 영화라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소설 잡을 때부터 기획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기획영화고 트렌디영화니까 그런 느낌 들겠지. 하지만 <데몰리션 터미네이터> 같은 패러디부터 사소한 아이디어까지, 시나리오나 촬영에서 신씨네가 터치한 것은 없다. ‘낙태하러 가는데 니가 아빠라 그랬어’란 대사에서 ‘낙태’란 단어가 거부감이 든대서 ‘수술’로 바꾸는 식의 수정은 있었지만. 신씨네가 감독의 영화를 잘 싸안는 것 같다. ‘절라유쾌뭉클코미디’처럼 카피를 잘 뽑아서 포장을 잘한다.

+ 쌓아둔 시나리오는 많다고 했는데,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계획하고 있나.

= 유년 시절을 다룬 <성>(城), 죄의식에 관한 <귀의>, 이중섭에 대한 영화 등등 이야기는 많은데, 어떤 걸 해야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장르는 좀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다. <엽기적인 그녀>에 들어간 장르 중 하나겠지. 멜로, 코미디, 액션, 무협, <소나기> 같은 고전적인 드라마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다 해봤으니까. 좀더 예산이 크고, 코미디가 아닌 상업영화를 하고 싶다.

글 황혜림 blauex@hani.co.k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 <엽기적인 그녀>로 돌아온 감독 곽재용 (1)

▶ <엽기적인 그녀>로 돌아온 감독 곽재용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