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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는 무슨무슨 파가 될 자격 없다”
2001-08-16

이용관 전 영진위 부위원장 (2)

+ 어쨌든 혼선이 있었고, 그 때문에 정치적 배려니 외압이니 하는 추측이 나돌았다.

= 혼선은 인정한다. 시행착오는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시행착오로 봐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보려는 시각은 이해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 단체사업지원을 두고도 비슷한 추측이 있었다. 생산적이지 않은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에 비해 어렵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독립영화계나 시네마테크쪽엔 지원이 줄거나 없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비판적인 성명서도 나왔고.

= 역시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한 거다. 심사위원 선정에서 정치적 배려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려는 아직 필요하다고 본다.

+ 영화정책의 길은 비타협적인 개혁 노선을 추구하든가, 아니면 보수파에 일정한 지분을 인정하든가 두 가지다. 이 교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 난 이데올로그는 아니다. 어느 한쪽을 제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미끄러지고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힘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다른 위원들의 생각이 나와 똑같지는 않다는 거다. 6인 위원들의 생각이 전자일 경우 난 대의를 따라가는 편이었다. 그래서 미끄러지고 문제가 얽히고 욕도 먹는다. 나는 우리 영화의 힘과 전통을 발견하기 위해선 앞서가는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전에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보수적 영화인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없다. 그들의 잘못된 견해와 요구조차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앞날을 모색하는 데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거다.

+ 보수적 영화인들은 현장 활동력은 약하다 해도 정치권 로비력은 높다. 그 때문에 문화관광부나 정치권을 이용한 외압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측도 많다.

= 그런 건 확실히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의견이 맞서는 일이 없진 않았다 해도, 결정적으로 휘둘리거나 방해받은 적은 없었다.

+ 영진위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정작 일반 관객을 위해 한 일은 없다는 비판도 있다.

= 전적으로 인정한다. 따가운 비판이다. 그동안 시스템 정비나 제작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현장 영화인 중심의 영화정책을 편 거다. 하지만 이젠 관객과 영화문화 전반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 특히 시네마테크운동에 대한 지원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매경 빌딩 아래 300석 규모의 2개관이 있는데, 현재 사려는 사람이 없다. 그 공간만 확보하면 시네마테크 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듯싶다.

+ 관객에게도 혜택이 미칠 수 있는 영상미디어센터는 왜 그렇게 1년씩이나 늦추어졌나.

= 예산승인이 난 지 벌써 반년이다. 조희문 위원의 반대도 그렇지만, 정부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도 애초 반대의견을 표명했던 유길촌 위원장이 실행을 늦춰서이기도 하다. 우리로선 위원장이 필요한 많은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결정된 사항의 실행을 미루는 업무스타일이 지금 영진위의 큰 문젯거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주어진 25억원으로는 애초의 영상미디어센터를 만들 수 없다. 원래 계획안은 100억원짜리였고, 그렇게 추진했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내부의 소수 반대의견 때문에 과감하게 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 25억원짜리 만드는 데도 이만큼이나 걸렸다. 술자리에서 김홍준 감독이 미디어센터 소위원회일 너무 지쳤다고 못하겠다고 해서 뜯어말리기도 했다. 위원회 안에서 왜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습다. 결정된 사항을 두고 소수가 다시 왈가왈부하고 그 때문에 또 실행이 늦춰져 진짜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 지쳐 떨어지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소수의 횡포 아닌가.

+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던데.

= 해결됐다. 내년 예산 1500억원이 확정됐다. 아직 미정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1조5천억원 규모의 디지털콘텐츠진흥계획 재원 중에서 영화쪽 할당 금액이 2500억원인 것으로 안다. 자본의 운영주체나 방법은 안 정해졌지만 적극적인 진흥과 지원의 발판이 마련된 건 분명하다. 문제는 영진위가 현재 인건비조차 자체 해결을 못하고 있다는 건데, 현재 복권발행 같은 복안을 놓고 국회와 논의하고 있다.

+ 개인적인 얘기로 돌아가자. 부산영화제 부위원장 자리는 이용관 교수를 위해 비워져 있다고들 한다. 사실인가.

= 김동호 위원장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한번 떠나온 자리라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영화제는 지금 잘되고 있고. 영진위 일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는 게 희망이다.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학술잡지 만들고, 시네마테크 운동 하고 싶다.

+ 이용관 교수가 수장인 중앙대파가 영화계의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 웃기는 얘기다. 아직 우리는 무슨무슨 파가 될 자격이 없다. 솔직히 한국영화학의 수준은 바닥 아닌가. 멋진 책 쓰고 글 쓰고 영화 만들어서 중앙대파로 불리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나부터 너무 한심해서 무슨 파라고 불릴 수가 없다. 일자리에 관한 거라면 할말 있다. 그만큼 열심히 하니까 일이 주어지는 거다. 하지만 이제 바깥 일 그만하고 학교 가서 진짜 파벌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글 허문영 기자 moon8@hani.co.kr·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 이용관 전 영진위 부위원장 (1)

▶ 이용관 전 영진위 부위원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