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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장이, 정신건강이 허락하는 한 만든다”
2001-08-29

<세이예스> 제작자 황기성 (2)

* 처음으로 타회사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는데, 황사단 제작 시스템의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가.

= <세이예스>부터 투자받는 체제로 바꿨다. 해보니까 아주 이상적인 방법이더라.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과는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호흡도 잘 맞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기획, 제작, 배급, 투자를 혼자 다 해봤지만, 분업이 우리 회사 발전에 더 좋겠더라. 새로운 서광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그간은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지만, 이제 영화 만드는 일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건강한 투자사가 매력을 느끼는 제작사가 돼야겠지.

* 자체 제작을 그만두는 것은 혹시 <신장개업>의 흥행 실패로 인한 부담 때문인가.

= 그건 아니다. <신장개업>으로 큰 데미지는 없었다. 지금 시장이 몇개의 배급 체인으로 단위화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있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제작비가 상승하고 있고, 강력한 배급체를 갖고 있지 않으면 제작비 뽑을 확률이 낮다. 프로듀서의 본분은 현실을 개탄하고 이상만 내세우는 게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체질화돼 있었지만, 양질의 자본을 가진 투자사를 겪어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회사에서 박철수 감독이 6편 만들었지만, 돈 벌어준 작품은 <접시꽃 당신>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서로 잘 통하고 같이 작업하는 게 좋으니까 계속했던 거다. 비즈니스의 손익관계가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신장개업>으로 적자를 본 건 사실이지만, 김성홍 감독과는 오히려 전보다 더 밀착됐다.

* 김성홍 감독에 대한 신뢰가 매우 깊은 것 같다.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는지.

= 나는 김성홍 감독의 드라마 구축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 아직 꽃을 못 피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감독이라고 본다. 한두편의 영화로 단정할 수는 없는 거다. 계속 시도하고 부딪치면서 개화하는 거니까. 확실한 개화의 시점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지금은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라고 하는데, 프로듀서로서 체감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점은 없나.

=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지면 해외 진출의 밑거름이 되고, 산업적인 힘도 길러진다. 투자의욕이 높아지고 산업이 커진다는 얘기다. 지금의 문제는 상업화다. 영화의 예술적 노력, 비상업적인 순수한 노력이 발붙일 자리가 없어진다는 문제가 거론될 수 있는 시점이다. 지금의 추세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비상업적 영화를 위한 별도의 진흥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거다. 현재의 상업영화 진흥책도 몇억원을 몇 영화에 나눠주는 식인데, 상업영화 육성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생각지 않는다. 건강한 투자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예술영화 지원도 확대하고 정예화해야 한다. 지원 성격이 확실해지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자율경쟁 속에서 스스로 하라거나, 사재 털어 비상업적 영화를 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얘기다.

* 지금 준비중인 영화가 있다고 들었다.

= 내년 크리스마스나 이듬해 신정 예정으로 확정된 아이템이 하나 있다. 건달영화다. 감동이 있는 건달영화. 인간의 진면모를 들여다보기에는 건달이라는 인물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업중이고, 감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몇 가지 아이템 중에서 그 전에 들어갈 영화를 고르고 있는 중인데, 조만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 황사단이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특별할 것 같은데.

= 정확히 만 16년이고, <세이예스>가 21번째 작품이다. 햇수는 별스럽지 않다. 내세울 만한 게 아니다. 영화장이가 정신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영화 만드는 거지. 프로듀서도 자기 인생을 사는 거다. 쌀밥 먹다보면, 콩밥 먹고 싶듯이, 선을 얘기하다 악을 얘기할 수도 있는 거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는 거다. 프로듀서의 레퍼토리라는 건 의미를 두고 정리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영화 만드는 인생을 사는 거니까. 물론 그 모든 것이 관객을 만나겠다는 전제하에 하는 일이고, 기술력과 거대 시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그건 언제나 외로운 전쟁이다.

글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 <세이예스> 제작자 황기성 (1)

▶ <세이예스> 제작자 황기성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