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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 즐기기 위해서 영화 만드는 건데”
2001-09-12

<조폭 마누라> 제작한 서세원

● “개그맨 서세원 맞아?”극장에 깔린 <조폭 마누라>의 포스터나 전단에서 ‘제공 (주)서세원 프로덕션’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이들이라면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할 법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여년간 본인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납자루떼>를 방송용 개그 소재로 간간이 써가며, “영화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쳐왔기 때문. 그래서일까. 서세원 프로덕션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홍보는커녕 그는 영화제작에 관한 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해마다 국회의 국정감사 자료에서 고소득 방송인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가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을 강행해서 벌어들인 돈을 직접 충무로에 싸들고 온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9월3일 늦은 8시. 신은경을 내세워, 폭력조직을 이끄는 한 여장부가 행복한 가정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액션영화 <조폭 마누라>의 9월28일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 코리아픽쳐스에서 만난 서세원은 개그계의 ‘큰형님’답게 농담을 걸 때는 시종 자신감이 넘치는 거침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가 이상스레 떨렸고, 심지어 갈라지기까지도 했으며, 여러 번 목이 잠기기도 했다.

첫 질문치곤 그렇지만, 몇년생인지.

마흔여섯쯤으로 쓰쇼…. 아니 김동주 대표하고 동갑이라고, ‘친구’먹었다고 써줘. (<친구> 포스터의 카피를 보더니) ‘같이 있을 때는 두려울 게 없었다’잖아. 사실 속으로 개봉 앞두고 굉장히 두렵거든.

사무실이 청담동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3개월 됐다. 코리아픽쳐스 김동주 대표 방만한 공간에서 열댓명이 모여 일한다. (웃음) 처음에는 영화만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인순이, 이문세 같은 친구들 콘서트 준비도 하고 음반제작도 하고 이벤트 사업도 하고 그럴 계획인데, 아무래도 영화쪽이 주가 될 것 같다.

얼마나 준비했나.

준비 안 했다. 막연히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결국 이렇게 된 건데…. <조폭 마누라>는 신은경과 같이 방송하면서 맺은 친분도 있고 해서 조금 발을 담근 건데 일이 커졌다. 사실은 중간에 포기하려고도 했다. 방송과 달리 영화 일은 너무 방대하고 신경쓸 일도 많으니까.

처음에는 민병천 감독의 <내추럴시티>에 투자한다고 했는데.

제작비가 너무 커서 중간에 나왔다. 40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내 나이 40에, 40억원짜리 대작영화를 떠안을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좋은 투자자와 잘하고 있으니까, 내가 나온 게 잘된 일이다.

단지 투자부담 때문이었나.

요즘 다들 50억원, 100억원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는 편당 10억원에서 15억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친구>처럼 적은 돈 들여 큰 돈 버는 영화 만드는 게 제작자로서의 내 지론이다.

<조폭 마누라>는 얼마 들었나.

지금까지 18억원 정도 들었다. 애초보다 더 들긴 했지만, 처음 봤을 때 가격이 만만했다. 물론 시나리오가 재밌어서 한 거다. 깊이나 철학이 담긴 영화는 아니지만, 종합선물세트처럼 추석 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 한편 만들고 싶었다.

현진영화사와는 어떻게 일을 분담했나.

투자는 내가 전액 맡고, 제작은 주로 그쪽에서 담당한다…. 지금까지 감독이나 현진영화사는 내가 시나리오도 안 본 걸로 아는데, 사실 40번은 봤다. 예고편 편집하면서, 다들 코믹하게 가자는 걸 반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웃기고 즐거운 영화인지는 다 아니까 액션을 내세워서 반대로 가보자, 뭐 그랬다. 결국엔 내 뜻대로 됐다.

설득한 결과인가.

반은 설득이고, 반은 공갈이었다. (웃음)

현장에는 자주 나갔나.

한번도 안 갔다. 왜 안 갔냐면 제작자 입장에서 밥값도 뼈를 깎는 아픔이다. (웃음) 가서 장비 빌려다놓고 안 쓰고 돌려보내는 걸 보면 나서서 말릴 텐데, 뻔한 것 아닌가. 그래서 안 갔다. 이참에 내가 돈낸 놈의 마음을 알았다니까. 심지어는 야참 먹을 때도 돈이 아깝더라. (웃음) 나랑 매니저랑 모두 8명, 여덟 그릇인데. 그게 얼마야. 3만2천원인데, 아껴야지.

80년대 중반에 비해 충무로가 변한 게 있다면.

=숫자가 많아졌다. 무슨 PD, 무슨 PD가 어찌나 많은지. 직함도 많아졌고, 일일이 다 기억도 못한다. 예전 같으면, 제작부장 월급 80만원으로 엑스트라에서 조명 막내일까지 다 했으니까.

영화를 다시 하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극장에서 보고 나오다 마누라한테 이야기했다. 1∼2년 안에 내가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다음날 내 통장하고 도장을 뺏어가더라. (웃음) 네 식구가 함께 영화 보고나서, 다들 영화 좋다고들 하는데 혼자 제작 이야기하다 처음에는 욕만 실컷 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허락받았나.

나중에 그 사람 말로는 기도했더니 응답이 왔대. (웃음) 하느님같이 바쁘신 분이 ‘다윗은 어디로 갔는가’ 뭐 그런 유의 신앙영화도 아닌데, 하필 영화 제목도 <조폭 마누라>인데, 잘될 거라 응답을 주시다니…. (웃음) 이제는 때가 왔구나. 말려봐야 뻥치고 거짓말하고 나가 살겠구나 싶어서 조용하게 봐 준 거겠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납자루떼>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극장 개봉을 하긴 한 건가.

너 맞을래? (웃음)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했다. 원래 기획하던 건 다른 거였다. 안정효의 <전쟁과 도시>, 홍성원 원작의 <기찻길> 같은 걸 준비만 하다 손을 놓았다. 방송일이 바빠서 생각만 많았지 계약만 맺고 미뤄놓다 다른 데로 넘긴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납자루떼>를 만들게 됐고…. 전문적으로 뭘 배워서 한 건 아니니까 허술한 부분이 많은 영화다.

이번에 직접 연출할 생각은 없었나.

뒤늦게 마틴 스코시즈의 <분노의 주먹>을 보고 ‘아, 난 감독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또 <납자루떼> 찍은 게 86년인데, 이후에 나 아니어도 한국영화 잘 만들 감독은 많다, 영화계는 잘 굴러갈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중에 돈 벌어 제작하겠다고 맘을 바꿔먹은 것도 그때다. 그걸 지킨 셈이다.

직접 연출할 계획은 전혀 없나.

있다. 마케팅 비용 포함해서 10억원 미만의 돈을 들여 한편 찍고 싶다. 물론 코미디영화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니까. 방송에서 보여주는 개그맨 서세원의 입담보다 업그레이드된 이야기를 담아야겠지. 1시간40분 내내 관객을 웃겨주는 영화를 하고 싶다. <조폭 마누라> 다음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더이상은 비밀이다. 12만원 주면 알려주지. (웃음)

유년 시절부터 영화에 빠진 건가.

어릴 때부터였다. 아버지가 역장이었는데, 서울, 부산 할 것 없이 이사다니느라 고등학교 때까지 전학간 게 열번이 넘었다. 그랬으니 친구는 없었고, 극장이 친구였지. 장마철 내내 처박혀서 살았다…. 아버지 덕에 외국여행도 많이 갔는데. 돌아다니면서도 외국의 기가 막힌 풍경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아마 저걸 카메라로 찍고 싶어서였겠지. 지금도 하고 싶은 영화는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해바라기>처럼 정사진 같은 이미지들이다. 근데 그때 유럽이나 실크로드 같은 풍경 보고 자란 놈들이 만드는 화면구도는 평생 못 따라갈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내가 갖고 있던 외국문화에 대한 사대성 같은 것도 다 그런 이유때문이다. 뒤에 <철도원>이나 <그린 파파야 향기> 같은 아시아영화들 보면서 아 저런 길도 있구나 싶어 힘을 얻긴 했지만.

지금은 바빠서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건 엄두를 못 낼 텐데.

아니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작품만 해도 거의 다 봤다. 외국 나가는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극장 순례부터 한다.

정말인가.

나, 새벽에 귀가해서라도 영화 한편, 소설 반권씩 읽는다. 눈이 침침해져서 못할 때까지 그렇게 살 거다.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요즘은 안중근에 빠져 있는데, 얼마 전엔 체 게바라하고 히틀러 책을 사모았고, 그전 시즌엔 칭기즈칸과 광개토대왕을 읽었다. 그런 역사적인 인물에 나를 대입시켜보면 반성이 되니까 얻는게 많다. 대신 일요일은 온전히 쉬는데 주로 잔다. 평일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하루 정도는 부활을 위해 그렇게 해야지.

<조폭 마누라>, 잘될 것 같나.

이제서야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결과가 좋을 것 같다. 힘들 때는 나 혼자 십자가를 지고 올랐는데…. 내 얼굴 보고 투자한 사람도 있으니까 내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나 이래뵈도 양심적인 놈이야, 양아치 아니라고. (웃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

25년 똑같은 일에 종사했는데, 내 인생의 발자취를 전 국민이 다 아는데 뭘 또 해? 나 사는 거 방송하고 똑같다. 그러니까 잘 안한다.

제작사를 차린 뒤 영화 이야기도 거의 안 했는데.

영화라는 게 그렇다. 잘될 확률 99%, 안 될 확률 99%다. 도박판에 있는 것 같다. 도박이야 안 하지만, 가끔 설날에 고스톱 치는 걸 뒤에서 보고 있노라면 왜 저런 걸 하나 싶기도 한데, 내 지금 상황이 고냐 스톱이냐 뭐 그런 심정이다. 그래서 그런 거다.

이번에 안 되면 접을 생각인가.

되든 안 되든 별로 상관없다. 한편 만들어서 대박치려는 마음 같은 것도 없고, 투자 받아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코스닥 같은 데 등록할 맘도 없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내 돈 들여 만들 조건만 허락하면 계속하는 거지. 서세원 이름 걸고 하는 거면 다 재밌으면 좋겠다. 믿을 만한 메이커로 남고 싶은 맘은 있다. 그게 유일한 야심이다.

개인 소득이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직접 번 돈으로 투자를 하나.

방송만 해도 먹고살긴 충분하다. 영화처럼 딴 짓만 안 하면 내가 먹고 싶은 것 사먹을 수 있고, 친한 친구 만나서 술 한잔 할 수 있고, 내 가족하고 사는 데 지장없다. 물론 이번 영화로 본전 걱정은 안한다. 반응이 나쁜 것도 아니고….

영화하면서 조언해준 이들이 누가 있나. 혹시 심형래씨는.

형래하고 나하고는 영화 길이 다르다. 형래 꿈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면, 난 로베르토 베니니다. 영화계에선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님이나 명계남 형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물론 두 사람 하는 말이 조금 다르다. <납자루떼> 경기, 강원 배급 맡아주면서 알게 된 이태원 사장님은 “제대로 만들려면 넉넉하게 가라”고 하고, 계남이 형은 반대로 “아껴라”라고 조언하고. 그 가운데서 헷갈릴 때가 있다. 이번 영화하면서 코리아픽쳐스 김길남 팀장으로부터 배급이 뭔지 강의도 듣고, 어쨋든 도움이 많이 됐다.

주위에서 독선적이라는 비판도 듣는데.

물론 많이 듣는다. 자기중심적이니까. 근데 다행인 건 내가 의외로 귀가 얇다. 그래서 나를 진실로 씹는 사람들을 주위에 둔다. 그리고 그들이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면 금방 알아먹는다.

요즘 한국영화는 어떤 것 같나.

사실 최근에서야 제대로 극장 가서 봤다. <쉬리>도 비행기 안에서 봤는데 처음에는 그냥 홍콩영화 한편 본 것 같았다. <초록물고기> 보면서도 그냥 누아르구나, 했다. 물론 이창동 감독이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런데 이번에 내가 영화 만들겠다고 하고서 생각이 달라지더라. <신라의 달밤>이나 <엽기적인 그녀>를 봤는데 앞의 영화들을 포함해서 한국영화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마 그땐 애정이 없었고, 그래서 무시해왔던 것 같다.

추석 개봉하면, 관객이 어느 정도 들 것 같나.

서울 200만명, 전국 500만명 정도…. (웃음) 안 된다 하더라도 열심히 했으니까 관객의 판단에 승복할 거다.

중간에 배급사가 AFDF에서 코리아픽쳐스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갈등이나 아픔은 만든 사람이 안고 가는 거다. 관객은 그냥 영화보려고 옷 입고 신발 신고 컴컴한 극장을 찾는 건데, 미리 나 이렇게 고생했다고 떠벌리는 건 우스운 일 아닌가. 관객이나 나나 같이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고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