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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걷고 청춘의 햇살 아래,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요원
최수임 2001-09-19

푸른 언덕이라고 했던가, 잊기 힘든 그 이름의 뜻이. <푸른 안개>로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졌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지쳐 앉아 있는 이요원은 어딘가 낯설었다. 컨디션이 좋아 ‘공식적인’ 모습만 보였다면 오히려 드러나지 않았을 것들, 그녀에게서 ‘낯선 배우’의 얼굴을 보게 한 건, 막 많은 일을 하기 시작한 스타의 희로애락, 그중에서도 ‘피로’였다. 여러 남자아이들에게서 동시에 문자메시지를 받는 ‘요원’과 아직도 남아 있는 <푸른 안개>의 ‘신우’, 그 이미지들 뒤에서 이요원은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는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듯했다. 멈추면 넘어지고 마는.

“<푸른 안개>를 안 했으면 <고양이를 부탁해>로 첫 주연데뷔를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절 보고 그냥 얼굴 좀 익숙한 신인이라고 했겠죠.”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이 처음으로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다. <남자의 향기>가 첫 영화지만 ‘어린 은혜’, 즉 주연인 명세빈의 아역이라는 작은 역이었고,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여자 주유원 ‘깔치’를 연기했지만 역시 조연이었다.

‘영화배우 이요원’에게는 정말 특별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출연은, 그녀가 오디션을 봤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오기민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이 영화에서 이요원의 배역은 여상을 나와 증권사에 다니는 ‘혜주’. 친구들 중 제일 출세했다면 한 혜주를, 이요원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왜 혜주는 모든 걸 다 참냐고요? 전 친구들이 참 다양해요. 혜주 같은 친구들도 있는데, 평소의 그애들 보면 혜주는 특이한 게 아니에요. 갓 직장에 들어간 어린 여자애가 상사한테 혼났다고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죠.” 회사에서 부당한 언사를 당해도 칭얼거리지 않고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 뿐인, 일찍 사회에 나온 여자아이. 혜주는 영화 속에서 스무살 생일을 맞고, 지영에게서 고양이를 건네받으나 ‘키울 수 없다’며 돌려준다. 그리고 처음 모습 그대로 친구들이 떠난 뒤에도 그자리에 남는다.

“정말로 오랜 시간 동안 참 많이 고생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진 않을지언정 우리끼린 참 뿌듯하고 흐뭇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촬영이 끝나고 오랜만에 다른 두 배우를 만난 이요원이 그들에게 건네는 ‘문자 메시지’를 한번 보자. ‘남들이 알아주진 않을지언정’이라는 말에 들어 있는 묘한 연대감에 특히 유의하여. 이런 유의 말을 진지하게 전하는 건 아무 사이에서나 되는 게 아니다. 유달리 꼼꼼한 감독 아래서 하루 반나절씩 리허설을 하지 않았더라면, 서로를 부탁해왔던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그러면서 함께 즐겁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말. 비록 인터뷰의 한 답변으로 한 말이었지만, 대놓고는 전하지 못한, ‘그 때 그 여자애들’에 대한 동지애가 그 말에선 느껴졌다.

인터뷰가 있던 날, 이요원은 드라마 <순정>과 다음 영화 <아프리카> 촬영이 겹친 탓에 한 시간밖에 못 자고 하루종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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