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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가장 행복한 작업이었다”
2001-09-25

촬영감독 김형구 인터뷰

<비트>에서 <무사>까지 ‘정(靜)과 동(動)의 극을 경공하는 카메라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촬영감독 김형구. “몇 학년이지?” “1학년이요” 전화기 너머, 교수로 재직중인 영상원의 개강분위기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봄날은 간다>의 촬영감독 김형구와의 짧은 질문과 답이 오고갔다.

허진호 감독의 전작이자 고 유영길 감독이 촬영한 가 신경 쓰였겠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아 맘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었고 나중에는 나 나름대로 해보자고 하니 오히려 맘이 편했다. <봄날…>도 처럼 거의 고정된 컷으로 찍었다. 이동차 한번 타본 기억이 없다. 움직인 거라면 대나무숲에서 크레인 한번 탄 정도? 초반에는 허 감독과 지난 작품과는 다르게 많이 움직이고 컷도 많이 나누자면서 클로즈업도 많이 찍었는데 막상 편집을 하다보니 컷이 붙지를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숏들이 이 영화에 맞지 않는다는 거다. 주관적인 클로즈업, 드라마틱한 감정전달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거다.

힘들게 찍은 숏이 있다면.

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은수방 침실장면과 상우집 대청마루는 찍기 힘들었다. 상우집 대청마루는 집 안쪽과 바깥쪽 노출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나무 색이 너무 어두워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했다. 보통 이런 경우 세트를 짓게 되는데 허 감독은 세트를 무진장 싫어한다. 대부분 장소가 카메라 놓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협소했다. 은수네 집은 세트처럼 보이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세트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소리가 중요한 영화다.

헌팅 때부터 동시녹음기사가 쭉 같이 다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은 사운드가 그림에 비해 우선하지 못하고 ‘후반작업에서 손보지’ 하는 식이었는데, 이번엔 거의 대등하게 작업이 이루어졌다. 어떨 땐 사운드가 주가 되어 그림을 양보하거나 포기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영화 전반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가자고 컨셉을 잡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미묘한 변화를 주길 바랐다. 가령 두 사람이 처음 맞는 겨울은 조금 냉랭한 느낌이 나고 사이가 뜨거워지면 따뜻한 색깔로 왔다가 헤어지고 아픔이 있을 때 색깔이 빠지고 마지막 상우가 홀로 보리밭으로 갈 때는 다시 따뜻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워낙 작은 변화라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다.

허진호 감독과의 작업은.

근래 가장 행복한 작업이었다. 보통 작가 성향이 짙은 감독들은 요구사항이 많은 편인데 허 감독은 앵글을 잡아놓으면 ‘좋네요, 가죠’, 그게 다였다. 현장에서는 몇 마디 말도 오가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촬영감독에게 현장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거다.

백은하 lucie@hani.co.kr

▶ <개봉작>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