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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보다 만듦새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
2001-10-10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1)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배두나의 부러움을 살 만큼 멋지고 세련된 운동화를 많이 갖고 있는 제작자다. 그리고 여자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프리랜서 시절 그는 스타 프로듀서였다. <이방인> <여고괴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그의 프로듀싱으로 태어났다. 그중에서도 <여고괴담> 시리즈는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 붐을 주도한 프로듀서의 기획력이 빚어낸 가장 빛나는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가 지난해 영화사를 창립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 것도 그 때문이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를 내놓고 오기민 대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 좀 부탁해’로 제목을 바꿨다고 근심어린 농담을 하고 다니며. <고양이를 부탁해>를 창립 작품으로 선택한 까닭은.

<미소>와 <고양이를 부탁해>를 나란히 놓고 고민하다가 상업성이 옅은 두편을 모두 우리가 만드는 것은 과한 부담이라고 판단했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첫 영화가 된 것에는 의미도 있다. 단편 <둘의 밤>으로 여고생의 생활을 그린 정재은 감독으로선 그 아이들의 뒷이야기를 하는 셈이었고, 나 역시 <여고괴담> 시리즈 주인공들의 졸업 뒤 이야기를 한 결과니까. <여고괴담> 시리즈를 만들면서 정말 청소년들의 현실문제를 다루려면 상고와 공고 학생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회에 첫발을 디딘 아이들의 이야기로, 회사를 처음 만든 내가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여성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가 연달아 세편째다. 우연인가.

우연도 기본적인 관심사가 닿을 때 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들 영화는 다를 거다. 당분간은 이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기획하거나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장화홍련전>은 역시 10대 소녀들이 나오지만 가족 이야기가 줄기다. 만약 성장기를 다시 다룬다면 연령대가 더 낮은 인물로, 내 이야기가 반영될 것 같다.

전문 프로듀서로서 <이방인>과 <여고괴담> 1, 2편의 세편, 제작사 사장으로서 이제 한편을 만들었다. 이번 영화 제작 경험이 앞의 세편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PD와 제작자의 차이는 별로 없다. PD 시절에는 투자자와 제작사에 대한 이중의 부담이 버거웠다. 특히 여고괴담 1편 할 무렵은 제작사 씨네2000의 형편이 나쁠 때라 어깨가 무거웠다. 반면 제작사 사장은 다 본인이 책임지면 되고, 투자자한테 미안스런 흥행결과가 나오면 다음 작품에서 벌어주면 되니까 차라리 속 편하다. 어려움은 작품 자체에 기인하는 것들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제작과정의 고충은.

소모한 필름, 촬영 횟수, 당초 10억5천에서 12억원으로 상향조정된 예산이 모두 전작을 능가하는 규모였다. 로케이션도 72군데였다. 장소 많은 촬영이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다. 폴란드에서 찍은 <이방인>은 헌팅 디렉터가 따로 있었고, <여고괴담> 시리즈는 학교 하나만 헌팅하면 됐으니 무리도 아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하루에 세 장소를 이동하는가 하면 시내버스, 고속버스, 여객선 터미널, 택시 등 등장 안 한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미술도 전작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공이 들었고, 예산과 계획, 배우 스케줄이 모두 예측을 빗나갔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작품성 측면에서뿐 아니라 시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나.

흥행을 기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감독이 참 싫어하는데…. (웃음) 처음 <고양이를 부탁해>를 갖고 투자사인 아이픽처스의 영화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에게 이야기할 때 3억 정도 손해볼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런데 차 대표가 시나리오를 읽어보더니 “에이, 5억인데?” 하더라. “그럼 내가 어떻게 5억이라고 하겠어”라며 웃었다. 이 영화로 돈 벌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부류의 영화가 갖는 딜레마다. 이런 영화는 한정된 관객층을 지니므로 손해는 보게 마련인데 단, 그 손실 폭이 다음 영화 제작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다스려져야 한다. 한데 이런 영화는 만듦새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예 존재 의미가 없다. 돈이 든다고 무너져야 할 집을 안 무너뜨릴 수 있나. <여고괴담> 시리즈라면 기획에서 다른 뇌관이 있지만 <고양이를 부탁해>의 경우는 만듦새가 전부다. 압박감이 심했던 어느날인가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운데 손가락 빼고 온몸이 움직이질 않더라.

감독과 신경전이 없을 수 없었겠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 이견이 어찌 없을까. 그러나 불안은 있을지언정 불신은 없다. 지금까지 감독과 나름대로 ‘싸워’왔고 싸움을 겁낸 적도 없고 안 싸우는 PD라는 인상을 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감독과 PD의 줄다리기에서 결국 패자는 PD다. 만일 감독이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찍고 싶어요”라고 하면 찍어야지 어떡하겠나. PD는 싸우면서 감독의 색깔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면 감독을 하지 왜 PD를 하나. 굳이 서운한 점을 꼽는다면, 한 영화에 대한 최종책임자는 결국 감독과 PD 두 사람임에도 감독들이 상업영화가 처음인 연출부와는 의논하면서 PD와의 대화는 타협이라고 여기는 경향이다. PD란 감독이 뭔가 상의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사람들이다. <고양이를 부탁해> 경우는 제작기간은 길어지는데 돈을 더 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서 스탭의 생존권문제를 포함한 내 평소 신념을 스스로 어기는 일이 제일 두려웠다. 평상시 말끝마다 “합리적 시스템” 운운하지나 않았으면. (웃음)

촬영 초에 <고양이를 부탁해>는 성격상 개입할 수 없는 영화라고 말한 기억이 있는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일단 주요무대가 되는 인천이라는 공간을 잘 몰랐다. 예쁜 여자를 따라가다 정신차려보니 동인천까지 간 사건은 있었지만. (웃음) 그렇게 치면 <여고괴담>의 여고는 아는 공간이냐고 반문하겠으나, 사실 여고나 남고의 차이는 에피소드지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고양이를 부탁해>가 다루는 스무살 여상 졸업생들의 고민은 내가 잘 모르는 것이었다.

▶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1)

▶ <고양이를 부탁해> 개봉 앞둔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