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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영웅도, 악당도 갖고 싶어한다”
2001-10-24

<시리즈7> 감독 대니얼 미나한

죽느냐 죽이느냐 그것이 문제다. 방송사에 의해 무작위 추출된 시민들이 살인 리그전을 벌이는 영화 <시리즈7>의 세계는 주사선으로 그려낸 현대판 콜로세움이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스타 프로듀서 크리스틴 바천(<세이프> <소년은 울지 않는다> 등 제작)과 손잡고 <시리즈7>을 만든 신인감독 대니얼 미나한은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키드’. <BBC>와 <채널4>를 거쳐 <폭스 TV>에서 시사 프로그램 PD로 일한 그는 메리 해론 감독의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에서 영화 만들기의 실제를 습득한 뒤 4년에 걸친 <시리즈7>의 구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기나긴 숙성기간이 무색하게도 코네티컷 주의 고향마을 댄베리에서 단 21일 만에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마쳤다. TV 포맷과 장편영화 시나리오의 결합이라는 난제와 정면승부를 벌인 <시리즈7>은 지난봄 미국에서 개봉해 재기, 기동력, 문제의식, 형식실험 등 데뷔작에 거는 대부분의 기대를 채워주는 ‘똘똘한’ 블랙코미디로 호평받았다.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될 TV판 <시리즈8>을 준비하며, TV 수상기로 보면 더욱 신나는 한방이 될 거라고 악동의 미소를 짓고 있는 대니얼 미나한 감독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제작에 참여한 첫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국 관객에게 소개되지 않았다. 그 영화에서 당신이 얻은 소득이 있다면.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의 제작자와 감독은 시나리오 쓰기부터 프로덕션, 편집에 이르는 영화제작의 전 과정에 내가 참가할 수 있도록 불러주었다. 그건 내가 필름메이커로서 맛볼 수 있었던 가장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시리즈7>은 형식과 소재, 주제를 모두 TV라는 매체에서 찾았다. 당신 자신은 TV 시청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나.

지금 현재로서는 전혀 TV를 보지 못하고 있다. 요사이 나는 삶을 ‘구경’(watching)하기보다 삶을 ‘살고’(living) 있다.

방송사 경력이 <시리즈7> 제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나.

TV 프로덕션 경험은 <시리즈7>의 스토리부터 촬영과 편집 스타일까지 모든 면에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결국 <시리즈7>은 한편의 독자적 내러티브영화로서 자립해야만 했다.

<시리즈7>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나.

영감은 여러 곳에서 얻었다. 촬영팀이 실제 경찰관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그들의 낮과 밤을 기록해 보여주는 <캅스>(COPS)라는 TV쇼, <롤러 볼> <스탭포드 와이브스> <소이렌트 그린> 등 어린 시절 사랑했던 영화들도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모든 공상과학영화들도 영감의 원천이었고 TV쇼 제작에 참여한 나의 경험도 물론 도움을 줬다. 이따금 나는 <시리즈7>을 가리켜서 내가 TV쇼를 만들며 아둥바둥한 많은 시간에 대한 복수의 판타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리즈7>은 최근 미국의 TV 리얼리티쇼 유행을 다소 초현실적인 세팅을 빌려 극단까지 밀어붙인 영화다. TV 프로듀서들에게 사람들에게 살인을 강요할 수 있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권력을 부여하는 가상사회를 상상한 것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초법적 지위를 갖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는 이 영화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정확히 똑같이 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불합리하고 공포스럽지만 이제 더이상 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스크린으로 TV를 보는 듯한 체험을 주는 <시리즈7>은 제작과정의 기술적 측면이 궁금한 영화다. 어떤 종류의 카메라를 몇대나 썼나? 조명과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은.

우리는 다큐멘터리식 스타일을 택했다. 미리 준비한 세트업을 차례차례 완성해 나가기보다 카메라맨으로 하여금 장면(scene)을 ‘발견’하게 하는 스타일을 택했다. 스탭의 숫자는 아주 적었다. 각각의 기술팀은 1명에서 3명에 불과했다. 조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만 제외하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조명만 사용했다. 그런가하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을 직접 인터뷰한 장면들을 제외하면 즉흥 연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편집은 아비드로 했고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를 뉴욕의 DUART 현상소에서 블로업했다.

배우의 연기 연출에 있어서 당신이 멋진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이 연기자들을 어떻게 골랐나.

칭찬 고맙다. 수잔 숍메이커라는 캐스팅 디렉터와 일했다. 그는 대형 극단, 영화배우, 비전문 배우 집단으로부터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데려왔다. 나는 그저 카메라 앞에 처음 섰을 때 ‘실제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적당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브룩 스미스는 내가 항상 돈 역으로 캐스팅하고 싶었던 배우다.

연기의 최고치를 끌어내기 위해 한 일이 있나.

음, 고문을 했다. (농담이다.) 나는 그저 가장 진실한 연기를 그들로부터 끌어내고자 노력했지만 늘 그들에게 카메라와 카메라맨이 방 안에 그들과 함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는 <시리즈7>에 걸맞은 자의식적 색채를 그들의 연기에 불어넣는 데 효과를 보았다.

그중에서도 돈 역의 브룩 스미스와의 작업을 묘사한다면? <양들의 침묵>에서 그녀가 맡았던 희생자 역할을 상기하면 <시리즈7>에서 만삭의 살인 게이머가 된 스미스의 모습은 특히 흥미롭다.

<시리즈7>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1995년 <작은 괴물들>(Little Monsters)이라는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브룩을 본 나는 그 즉시 그녀를 염두에 두고 돈의 캐릭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브룩은 시나리오를 쓴 1995년부터 마침내 촬영에 들어간 99년까지 4년간 나를 버티게 해준 존재였다. 우리는 선댄스의 감독 연구실(director’s lab)에서 워크숍을 했고 4년간 이 영화에 대해 끝없이 대화했다. 브룩은 뉴욕연극계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여배우이며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한 진정한 팀 플레이어다. 또한 나는 돈의 캐릭터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 있고 그 위기를 스스로의 생존 본능에만 온전히 의존해 타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들의 침묵>에서 범인의 구덩이에 갇혀 있던 소녀 캐서린 마틴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브룩이 해낸 만큼 이 역할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매우 헌신적인 연기자다.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돈과 제프의 플래시백에 조이 디비전의 노래 <Love Will Tear Us Apart>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Love Will Tear Us Apart>는 로맨틱하고 향수가 깃들어 있으며 일종의 송가(頌歌)같은 성격을 띤 노래이며 돈과 제프가 한 것 같은 불가능한 사랑에 관한 노래다. 또한 나의 성장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사적으로 소중한 영화다. 조이 디비전의 리드 싱어 이안 커티스는 제프 캐릭터가 늘 시도하는 대로 자살하기도 했다.

당신은 이 영화에서 말하자면 양날의 칼을 썼다. 돈과 제프 스토리의 후반부는 TV 미디어의 사악함을 노골적으로 공격한다. 반면 영화 속 인물들과 그들 각각에게 연결된 이야기들은 TV 브라운관에서 막 걸어나온 것 같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 설계한 의도는.

영화에는 내가 TV와 맺고 있는 ‘애증’의 관계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TV의 언어로 TV의 조건으로 TV를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TV를 비판하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돈과 제프가 카메라맨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쇼의 영웅에서 악당으로 탈바꿈하는 지점을 좋아한다. 내가 지금까지 터득한 진실에 다다르면 TV는 영웅도 갖고 싶어하고 악당도 갖고 싶어한다.

<시리즈7>은 명백한 풍자극이지만, 종종 감독 자신이 TV가 현실을 다루는 방식을 놓고 스스로도 즐기는 유희를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수고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 우선해서 표현하고 성취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무엇을 생각해보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영화들을 미워한다. 나는 비누상자를 뒤집어놓고 올라서서 “TV는 나쁘다!”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행위는 정직하지 못한 짓일 거다.

나는 진심으로 TV보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나는 매우 직관적으로 이 영화의 작업에 임했다. 가장 넓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TV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내 의도였다. 나는 TV문화의 야만스럽고 착취적인 속성을 지적하고 싶었다. 질문을 제기하고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었다. TV문화의 병폐에 대해 나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징후들을 지적하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미디어의 선정성과 탐욕에 대한 비평이 되고자 작정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많았다. <시리즈7>에 영감을 준 특정 작품이 있나? 혹시 <글래디에이터>?

<글래디에이터>를 봤을 때는 <시리즈7>을 이미 끝낸 뒤였다. 그러나 나는 “와우, 이 영화는 내 영화랑 똑같은 테마를 많이 다루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고마운 비교다. 하지만 <시리즈7>은 아무래도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의 직계후배라고 해야겠지.

당신 자신이 <시리즈7>의 ‘컨텐더’같은 살인게임 참가자로 뽑힌다면 당신의 반응은 영화 속 캐릭터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할 것 같나.

내 순서가 닥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두 내 자신의 여러 단면 중 하나를 대표한다. 돈은 공격적인 분노, 제프는 수동적인 자살 판타지, 코니는 모순된 신념, 토니는 비겁함, 린지는 단순함을 표상한다. 음, 뭐 좋다. 하나를 고르라면 돈(Dawn)이겠지. 어쨌거나 내 이름인 댄(Dan)은 ‘w’만 빼면 돈과 똑같이 쓰니까.

추진중인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만약 그 하나로 <시리즈8>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다.

현대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를 현재 쓰고 있다. 스릴러 장르에 대한 나의 한 시도가 될 거다. 그리고 당신 말마따나 <시리즈8>의 TV 버전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영화 속에서 죽어갈 미국인들이 아직도 많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즐기는 TV 프로그램이 있다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TV쇼는 <앤틱 로드 쇼>(미국판 ‘TV 진품명품’)다. 사람들이 고물이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건들을 갖고 와서 전문가들에게 값을 평가받는 프로그램이다.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물건의 값어치가 그래픽으로 뜨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김혜리 verme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