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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떳떳해요!” <흑수선>의 이미연

잊을 만하면,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그녀. 사연은 이렇다. ‘이미연 과로 입원’ 혹은 ‘이미연 열애-결혼설’. 아마도 연예인 동정을 빠짐없이 실어나르는 일간지들이 이미연을 주시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연은 “기자들이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다”고 건들건들 대답하다 말고,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흑수선> 연기 일품이다, 뭐 이런 거 써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다시 함박꽃처럼 터지는 웃음. 진상이야 어떻든, 이런 추론은 가능하다. 그동안 영화도, 친교 활동도 어지간히 열심히 해온 모양이라고.

이미연을 만날 때마다 깨닫게 된다. 모름지기 스타란 우리가 먼 발치에서 가슴 떨려가며 훔쳐보는 존재이거늘, 이미연은 멋쩍은 눈길을 보내며 서성대는 이들에게 먼저 손짓을 보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아주 드물게 ‘친화적인’ 배우라는 사실. ‘스타’는 하늘에 떠 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우리 곁에 발딛고 서서 기꺼이 ‘대변자’의 역할을 자임하는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 장난스런 몸풀기 대화가 오간 뒤에, 사진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돼 있다. 검은 옷으로 단장한 자신을 ‘한떨기 흑수선’이라고 표현하더니, 금세 애조 띤 음악에 취해 슬픈 눈망울이 돼버린다. 배우는 배우다. 수다를 떨듯 진행한 인터뷰 한판. 아니,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 한판.

<흑수선> 봤죠?

그럼요. 못 봤어요? 정말? 왜?

시사가 없어서요. 보니까 어때요?

감독님 참 고생하셨구나 싶었어요. 나 영화 시작할 때마다 감독님들한테 그러거든요. 사기치지 말라고. 찍으면서 처음 얘기랑 달라지니까. 그런데 배창호 감독님은 약속한 거 지키셨더라. 이건 멜로다, 사랑 얘기다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의 사랑, 절박한 상황들을 잘 살리셨어요.

많이 아팠다면서요.

천식 때문에. 원래 천식기가 없었는데, 무리해서 그랬나봐요. 숨을 못 쉬었으니까. 촬영 때문에 우겨서 퇴원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폐교 화재신이라 폐타이어 태우고 난리였잖아. 그래서 더 심해졌죠.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

원래 몸이 약한가 봐요.

아니에요. 나니까 이 정도지.

이번 작업은 전작들하고 좀 달랐나요?

안성기 선배님이 그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면서, 그러셨어요. 같이 모이지 않더라도 각자 열심히 하자고. 영화에 배우들이 다 같이 붙는 신이 없어요. 각개전투 분위기지. 힘들 때마다 배우랑 스탭들, 그 동료애가 날 끌어줬어요. 현장에서 그런 에너지를 못 받았다면, 해낼 수 없었을 거야. 처음 시작했을 때 좀 힘들었는데, <인디안 썸머> 같이했던 김윤수 촬영감독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인디안 썸머> 시사 때 했던 말을 기억하라고. 내가 뭐랬냐면, 촬영 들어가면 너무 힘들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데, 막상 작품 나오면 후회한다고, 그랬대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말이 스스로에게 많은 자극이 됐죠.

50년 가까운 세월을 넘나들어야 하고, 연기하기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부담됐죠. 노역도 소화해야 하고.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사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할 수도 있었거든. ‘안전빵’으로 갈 수도 있었다고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 도전했다는 데 대해 난 떳떳해요. 지금처럼 선택의 폭이 넓을 때 아니면 잡을 수 없는 기회였잖아요. 난 그 점에서는 나한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어떤 촬영이 제일 힘들었나요.

수중촬영이요. 내가 수영을 못하거든. 배우는 눈이 살아 있어야 된다고 믿기 때문에 절대 안약도 안 쓰는데, 그 깨끗지 않은 물 속에서 눈을 똑바로 떠야 하니까, 그것도 힘들었고. 그런데 너무 추워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 되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한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중에 배 감독님이 잘했다면서, 모니터 보여주는데, 어쩜 그렇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지. 촬영할 때 절박함 같은 게 그대로 보이더라고요.

요즘 광고가 좀 줄었죠? 그래서 그런가, 이미연 한물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광고 편수가 인기의 잣대인가, 연기력의 잣대인가, 하면 그건 아니잖아요. 나는 배우가 대중한테 외면받을 때, 하고 싶은 연기를 못하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다 겪었으니까. 그렇다고 한참 잘 나갈 때 ‘해먹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진 않아요. 나는 나대로 가고 있는 거니까, 좀머씨 말대로 나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어. 난 그냥 연기하는 사람이거든. 광고 출연도 일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런 게 없으면 안 하지. 물론 이미지업과 약간의 돈, 그건 중요하죠.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이랄까. 돈 때문에 결혼해야 하고, 원치 않는 작품할 정도는 아니어야 하니까.

여담인데, 얼마 전에 <이소라의 프로포즈> 특집편 보니까, 언젠가 <키 작은 하늘> 열창하던 장면이 다시 나오던데(목소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데도, 개의치 않고 끝까지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그랬어요? 왜 그걸 다시 보여줬지? (약간 무안해한다)

그거 보니까, 옛날에 <젊음의 행진> 나와서 다소곳하게 <행복>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 그거? 별걸 다 기억하네. 미스 롯데 뽑히고 얼마 안 됐을 땐데, 예쁘게 부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공주옷 입고…. 그리고 그거 립싱크였어요. 그것 때문에 <사랑이 꽃피는 나무> 캐스팅됐었고요.

매스컴 처음 탄 게 <하이틴> 통해서던가요?

그럴 거예요.(물빠진 청재킷과 청치마 차림으로, 나무 옆에서 포즈 취한 사진 얘기를 꺼내자) 맞아. 그땐 사진 찍을 때 꼭 나무가 옆에 있어야 됐어. (웃음)

그때 이미지를 많이들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 같아요. 비련의 여주인공 제의도 그래서 많이 들어오는 것 같고.

그런가? 멜로는 정말 하고 싶어했고, 또 좋아했는데…. 그런 역할이 지겹다기보다는 이제 지치는 것 같아. 좀 힘들어요. 같은 멜로라도 좀 다른 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시나리오 많이 들어올 텐데, 맘에 두고 있는 작품 없나요? 틈틈이 시나리오 읽고는 있는데, 아직 아무 결정도 안 하려고요. 멜로든, 코미디든, 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데. 천천히 생각해야지. 올해는 나, 할 만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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