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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최초 코스닥 등록되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
2002-01-30

이제 콘텐츠 성장에 주력할 것

오는 2월5일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계에선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된다. 명필름이 그뒤를 이을 전망이고 강제규필름, 스타맥스 등 규모가 큰 영화사들이 다들 코스닥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CJ의 첫발은 의미심장해보인다. 영화업이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산업 못지않게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받는 분야라는 것을 시장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는 최근 몇달간 정신없이 바빴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코스닥 등록, 튜브엔터테인먼트, 영화사 봄과의 제휴, NABI픽처스에 대한 투자, 2002년 라인업 결정 등 2002년 영화시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일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은 무척 밝다. 하긴 튜브와 제휴한 뒤 내놓은 첫 작품 <나쁜 남자>부터 흥행을 하고 있으니 출발이 좋은 2002년이다. CGV라는 막강한 멀티플렉스 체인을 등에 업은 국내 양대 메이저배급사 중 하나, CJ에 올해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CJ엔터테인먼트 코스닥 등록은 영화쪽에선 처음이다.

다른 곳에서 코스닥 등록을 준비한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처음이다. 시가 총액이 1500억원 정도의 규모이니 음반쪽 상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케이스다. 사실 코스닥 등록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 정말로 돈을 많이 버는 회사는 코스닥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 따른 의무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의미는 이런 거다. 영화 한편에 따라 수익변동이 크게 생기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산업화했다는 것, 일정한 수익성 있는 성장을 해왔다는 것, 그리고 투명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 이걸 입증할 수 없으면 불가능한 거다. 영화산업적으로 볼 때 주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발판이지만 사장으로서는 골치아픈 일이 더 많아지는 거다.

이번 코스닥 등록이 모기업인 제일제당에서의 명실상부한 독립을 의미한다고 봐도 되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소유주 개인의 기업인 경우, 경영이 오너의 방침과 방향에 따라 좌지우지돼왔기 때문에 코스닥 등록 이후 선택해야 하는 시스템화된 경영방식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전에도 시스템 속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체감하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따로 감사를 둬야 하고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정도이다. 사외이사는 투자자를 대변해서 주요 의결사항을 협의하며 회사정책이나 수입,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회계장부를 분기별로 발표해야 하기도 하다. 우리끼리, 회사 내부에서만 알고 넘어갈 수가 없다. 당연히 경영 투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다른 사람 돈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뒤따라 코스닥 등록을 시도하는 회사가 많아질 것 같은데.

그럴 거라 생각한다. CJ가 제작, 배급, 상영까지 가능하기 때문이 코스닥 등록이 가능했다면 지금 상장을 희망하는 회사들은, 그중 한 부분이 비어 있는 상태라 그 부분만 채워진다면 가능하리라 본다. 아직 시장이 좁지만 적어도 메이저가 3개 정도 있어야 경쟁, 발전이 가능한 거다. 그만큼 시장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도 크고.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640억원 매출에 87억원쯤 벌었다. <슈렉>이나 <캐스트 어웨이> 같은 외화들이 효자노릇을 했고 한국영화는 별로 못 벌어들였다. 대부분 배급, 극장으로 수익을 얻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제작은 3편 정도였는데 올해는 개봉예정인 한국영화 편수가 많다.

지난해는 준비를 많이 했는데 영향력 있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올해는 명필름이나 영화사 봄 이외에도 튜브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고 조민환 프로듀서가 독립한 NABI픽처스, 자체제작 영화까지 합쳐 15편 정도다. 너무 많긴 하다.

튜브, 명필름, NABI픽처스, 영화사 봄 등 개별 영화사들과 관계맺는 방식이 다른 배급사와 다르다.

명필름과 NABI픽처스는 지분출자를 했다. 모두 같이 간다는 방향은 정했지만 영화사 봄은 아직 지분투자 결정을 하지 않았다.

튜브와의 제휴건은 정말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제휴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나.

제3의 배급사로서 튜브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 튜브는 우리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동양하고 유니코리아와 접촉했지만 결정적으로 멘털리티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CJ는 비교적 오랫동안 영화 관련업을 했고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컸다. 그래서 제작은 튜브가 하고 배급은 CJ가 해보자고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 김승범 대표도 흔쾌히 받아들었고 일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사실 별 기대없이 제안한 것이었는데 튜브가 배급을 포기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동양에 대한 견제가 아니었나.

전혀. 그런 견제가 있었다면 협상 초기에 들어갔을 거다. 동양이 떠맡기엔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동양이 가져갔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CJ도 95년에 영화사업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얼마나 수업료를 많이 냈는데…. (웃음)

튜브와는 장기적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할 예정인가.

일단은 같이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더 긴밀하게 발전해나갈 수도 있고. 튜브가 한국영화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유지해나갈 생각이다.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의 관계처럼 말인가.

그렇다. 명필름과 NABI픽처스도 그런 식의 모델로 가져갈 거다. 결국 미국의 디즈니, 유니버설식으로 배급사 위주로 발전해가는 거다. 인적 네크워크에서 벗어나 조직 네트워크로 갈 것이다. 배우나 제작사 등 제대로 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

부율조정 문제가 소강상태에 이른 듯하다. 영화계에선 CJ가 한국영화 부율을 올리는 데 적극적이었으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작하는 스타일에 문제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몇 사람이 시작해서 공론화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합리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마련하고 천천히 수순을 밟았어야 하는 거다. 미국, 호주를 보더라도 궁극적으로 슬라이딩 시스템(영화에 따라 개봉기간에 따라 극장과 배급사의 몫을 변화시키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예술영화도 살리고 상업영화도 살리는 길이다. 우리 때문에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노코멘트로 일관해왔지만 부율문제를 거론하면서 금기시해야 할 것이 두개가 있다고 본다. 첫째, 쿼터문제를 거론해선 안 된다는 거다. 둘째는 경쟁을 하더라도 요금을 내려선 안 된다는 거다. 요금을 내리는 건 공멸하는 지름길이다. 지난해 부산 메가박스에서 4천원으로 내리려는 것을 막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영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경쟁의 결과 요금하향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경영상태가 어려워졌다. 요금을 내리면 극장매출이 줄고 그러면 부율은 배급사에 더 불리해진다. 지금은 배급사 38%에 극장 62%로 전복된 상태라고 한다. 사실 좋은 콘텐츠만 가지고 있으면 6:4 부율은 금방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외화는 해외시장 박스오피스에서 이미 증명된 것이 있지만 한국영화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영화 부율을 올리는 데는 불안함이 있고 부율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2월5일 코스닥 상장 뒤 그리는 CJ의 큰 그림은 어떤 것인가.

그간 배급, 유통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체인을 형성하는 등 비즈니스쪽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콘텐츠 성장에 주력할 것이다. 향후 2, 3년간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도록 도와주거나, 직접 만들거나,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 관련 콘텐츠로 옮겨가는 방식이 될 것 같다. 국산애니메이션은 여전히 기술문제에만 집착하는 식으로 방향설정이 잘못돼 있는 듯하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좀더 힘을 쏟는다면 성공할 가능성도 보인다. 영화쪽으로는 도움이 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든지 기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고 스튜디오 건립이나 관련시설 제공 등을 꿈꾸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이다.

해외배급 의욕을 보였었는데 주춤하는 듯하다.

실제로 해외배급을 해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누가누가 해외배급했다더라, 하는 말이 다 거짓말인 줄 알겠더라. 결국 미니멈 개런티(MG)만 받고 다닌 걸 직접 배급했다고 말한 경우가 태반이다. <무사> 들고 해보니 미국은 어렵다는 걸 알았다. 미국시장에서는 메이저 배급사에 의존하지 않으면 어렵고 의존하면 다 뺏기게 마련이다. 일본은 마케팅비가 많이 들어가는 시장이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지난해 <치킨런> 들고 일본에 들어갔었는데 쉽지 않았다. 아니 무지하게 어려웠다. 일본은 장기적으로 개척해야 할 시장이다. 단기적으로 대만, 홍콩시장을 보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일본에서 잘되지 않았나.

정말로 러키한 케이스다. 도호에서 잘봐서 극장에서 잘 풀었다. 하지만 액션, 엔터테인먼트류가 아니어서인지 홍콩에서는 잘 안 됐다. 대만은 <쉬리> <텔미썸딩>이 들어가 다 깨진 시장이다. 실패도 많았지만 시도도 많이 해봐야 하는 곳이다. 해외시장을 위해선 지역성을 살린 작품도 나쁘진 않지만 <무사>처럼 범아시아적인 영화제작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시네마서비스, CJ 양대전선에 강제규, KTB, 삼성벤처투자, 에그필름이 제휴한 ‘A라인’ 등이 끼어들어 새로 배급라인을 형성하는 등 배급시장에 변화가 예상되는데.

두 회사로는 안 된다. 틀림없이 제3의 회사가 나오리라 장담해왔다. 물론 어떤 업체가 제3의 메이저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동양의 경우에도 콘텐츠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 이정도 시장 규모에서 3대 메이저 정도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한해에 나오는 영화만 몇편인데 한두 배급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올해, 자신있나.

극장은 언제나 자신있다. 더욱 완벽히 시스템화하고 조직화되어 발전해나가면 내가 없더라도, 누가 오더라도, 잘 굴러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회사 영속력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나? 인터뷰 남동철 namdong@hani.co.kr·정리 백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