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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같은 배우, 유오성의 도전

사각의 용광로 속, 챔피언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무르지 않고 굳지 않은 빛나는 강철은 따로 없어라.

기나긴 시련거쳐 당당히 선, 저 강철의 모습을 보아라.

그 모습은 핏발선 얼굴도 들떠 있는 쇳소리도 아니요.

투쟁의 용광로에서 다듬어진 부드럽고 넉넉히 열려진 가슴….”

‘강철은 따로 없다’ 중에서

유오성은 단단했다. 그것은 비단 언론에 공개되어 찬탄을 이끌어내었던 그의 육체의 단단함만은 아니다. 800만명이 넘는 흥행신화를 이룬 <친구>의 미향에 취하지 않고, CF 섭외가 밀려드는 스타덤 등극에 방심하거나 물러지지 않고, 길고 독한 훈련의 용광로로 자신을 던진다는 건 왠만한 자기관리 능력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말그대로 강철 같은 배우 유오성이 돌아왔다.

지난해 3월 <친구> 개봉과 함께 유오성은 참 많이 바빴다. 몰려드는 인터뷰들과 수많은 행사 참여, 그렇게 정신없는 몇 개월을 보내고 그는 잠시 접어두었던 제2의 본업에 열중했다. “늘 미안한 마음이 많았던 집사람 심부름도 재깍재깍 하고, 아들 앞에선 ‘떳다떳다 비행기’ 노래도 부르면서” 못다한 ‘충실한 가장 역할’을 압축파일로 저장하는 2개월의 시간 뒤, 그는 다시 배우로 돌아갔다. <친구> 촬영장에서 곽경택 감독이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한번 생각해봐라”며 넌지시 꺼낸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는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시나리오도 보지 않은 채 차기작으로 <챔피언>을 선택했다. 하여 햇수로 1년 만에 만난 유오성의 얼굴에는 더이상 부산의 깡패보스 준석이 없다. 그 자리엔 흙먼지 날리는 버스창가에서 고사리 주먹을 움켜쥐던 강원도 소년에서 긴 자신과의 투쟁과 타인의 사랑 속에 다듬어진, 인간 김득구가 자리했다.

“난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요.”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정두홍 액션스쿨에 들어가 복싱에 필요한 몸을 만들어 나가는 동안 유오성은 곽 감독의 표현대로 “다른 생각 전혀 안 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훈련 함께하던 박주천씨가 얼마 전에 ‘형, 나 지난해 여름에 더위먹었던 것 알아요?’ 하더라고요. 그때 내가 보통 선수들 하는 훈련량의 2배 이상을 한 거예요. 그런데 난 더위 안 먹었거든요. 몰랐으니까. 힘들긴 했는데 원래 그냥 이만큼은 힘든 거구나 했죠.”

그렇게 장시간 더위와 맞서가며 만들어온 몸이고 준비해온 연기였지만 촬영 전날까지 긴장을 늦추기엔 왠지 불안했다. 잠시라도 몸을 놀리면 안 될 것 같아. 새해 첫날도 가만히 집에서 놀지 않고 “여러 사람 불러내서 괴롭혔다”는 그는 김득구가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는 ‘12경기 몽타주 시퀀스’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우리 모두, 그전 어떤 권투영화에서도 담아내지 못한 컷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액션이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으면 영화 전체가 힘이 빠지는 거니까요.” 감독과 무술감독, 촬영감독 할 것 없이 모든 스탭들이 홀린 듯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쉬지 않고 찍어나간 그 장면들은 결국 “만족스럽게” 뽑아져 나왔다. 이제 맨시니와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죽이는 거 아니면 내가 죽는 거, 둘 중 하나겠지”라며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던 김득구처럼 그도 마지막 경기신을 찍기 위해 2월 말 LA로 떠난다.

유오성에겐 배우와 생활인의 모습이 기묘하게 공존한다. 이 말은 그가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일상적인 연기를 한다거나 혹은 생활 자체가 늘 배우처럼 화려하다는 말이 아니다. 스크린 속의 그는 철저히 배우의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카메라 뒤의 그는 철저히 보통사람이다. “배우가 광대, 그 이상이 되려면 자신이 많은 직업군 안에 한 직업을 선택한 사람일 뿐이라는 인식을 해야 해요. 그리고 스타가 아니라 배우로서 자신이 그 직업군 안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냉정히 평가해야 하는 거고.”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밥벌이용 직업이 아닌, 인생을 바칠 만한 것으로 후회없이 선택한 직업. 이 단단한 직업배우는 어느날 저 높은 스타덤의 링 아래로 내려온다 해도 챔피언의 풍모를 잃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들게 한다.

나, 불만있다

<친구>는 영화의 상업적 성공 덕분에 작품 자체가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친구>가 떴기 때문에 저질의 조폭영화가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문제는 장르가, 조폭영화가 아니라 코미디로만 편중되었다는 거죠.

내 친구 곽경택

왜, 인생에서 세명만이라도 진정한 친구를 얻으면 되는 거라잖아요. 저에게 그중 한명은 곽경택 감독이에요. 어떤 배우든지 곽 감독과 작업하면 편할 거예요. 전체적인 리듬을 온몸에 품고서 혹시 배우와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도 편하고 납득가게 설명해주니까. 그리고 사실은 내 모토인데 어느 순간 곽 감독 모토로 인식되어 있는(웃음), 리얼리즘과 휴머니즘, 이렇게 생각의 궤를 같이하는 친구를 일터에서 만난다는 건 인생의 축복이죠.

내가 말하는 <챔피언>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챔피언 벨트 차기까지의 ‘성공시대’도 아니에요. <챔피언>은 한 소년의 꿈에 대한 영화예요. 사랑이야기기도 하고요. 물론 닭살스러운 멜로가 아니라 풋풋하면서 살가운 멜로예요. 아! 그리고 <친구>에서 부산 사투리를 보여줬다면, <챔피언>에서는 강원도에도 강원도 말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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