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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폰>에 투자하는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대표 김상일
2002-02-20

`비지니스의 다양성 위해 한국영화 한다`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동안 직배사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번지점프를 하다> <소름> <나비> 등을 배급했던 브에나비스타 코리아가 올해 <폰>이라는 한국영화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도 직배사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려는 의도일 것이다. 과연 지난 10년간 메이저로 자리잡아온 직배사 대표가 바라보는 2002년 영화계는 어떤 모습일까?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대표 김상일씨는 비교적 일찍 이런 시장흐름을 감지한 인물이다. 97년 <남자의 향기>를 배급하면서 한국영화 배급을 시작한 그는 99년 <댄스 댄스> 투자, 배급을 통해 얼마간 수업료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씨네21>이 집계한 ‘한국영화 파워 50위’ 안에 직배사 대표로 유일하게 꼽힌 것도 2000년 직배사 가운데 매출 1위를 차지한 것 이상으로 <시월애> <오! 수정> 등 한국영화 배급에 적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역회사인 국제상사에 근무하다 브에나비스타 코리아의 대표를 맡게 된 김상일씨는 영화를 비즈니스로 다루는 사람들 특유의 자신감 있고 논리적인 어휘구사를 한다.

지난해 관객수가 8,100만명으로 늘었지만, 한국영화가 잘돼서 직배사 입장에선 별로 좋진 않았겠다.

시장의 흐름을 두고 좋다 안 좋다 할 게 없다. 지난해에 코믹액션이 잘됐는데, 수입영화들은 그런 장르가 없었다. 장르의 트렌드가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을 디즈니 본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굉장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가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른다. 그런데 1인당 관람횟수가 60%나 증가했다는 건 대단한 현상이다. 가히 경이적인 성장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영화만 얘기했는데, 이제는 관객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있으면 얼마든지 영화를 보러 간다는 분위기이고, 이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시그널이다.

시장이 성장하는 데 그것에 맞춰서 디즈니의 성장 폭이 따라 커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제삼지는 않는가.

그렇지는 않다. 시장이 성장하면 얼마든지 우리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해 좀 나쁘다고 해서 큰 문제는 삼지 않는다. 지난해 좀 안 좋았던 것은 관객이 선호하는 장르의 영화가 우리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직배사 순위에서 재작년에 디즈니가 1등이었고 지난해에는 3등으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흥행 1, 2위가 다 한국영화이지 않았나. 특수한 경우였다. 올해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있었던 워너가 1등을 할 것이다. <해리 포터…>가 430만명 모았으니까. 하나가 큰 게 있으면 1등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타이타닉>으로 폭스가 1위였듯이. 1등을 놓친 것에 대해서 아깝거나 애석하거나 그렇지는 않고, 올해에 어떤 새로운 전략을 짜서 다시 마켓 리더가 될 것인가를 생각할 뿐이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국영화 배급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97년 <남자의 향기>부터 한국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그때 신문기사에는 ‘할리우드 메이저가 한국영화 시장까지 잠식한다’ 등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때 우리가 주장했던 것은, 할리우드 메이저나 한국영화나 동반자적 관계이지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로 다양한 영화를 공급해서 시장을 키워나가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적대적 관계로 보는 것은 아날로그적 발상이라고 봤고, 그게 맞았다.

본사에서도 한국영화 배급에 대해 환영하나.

지사가 하는 일이 원래 배급이기 때문에, 배급하는 회사가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배급하는 데 환영하거나 반대할 것은 없었다.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즈니로서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니까,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영화 배급을 하면 직배영화와는 좀 다른 게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아주 다르다. 우리 자체 영화를 배급할 때에는 마음속으로 조금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만회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는데, 한국영화 배급은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깔고 있다.

실제로 디즈니처럼 1년 라인업이 나와 있는 큰 회사가 아니라 한국영화를 하는 작은 영화사에서는 영화 한편 흥행이 결정적이다. 디즈니가 자사 직배영화들 때문에 배급대행을 맡은 한국영화를 소홀히 하지 않는가 하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름>을 디즈니가 세게 안 밀어서 흥행이 안 됐다 하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은 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한국영화의 경우 더 마음에 중압감을 느낀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다해도 아쉬움이 남는데, 그 아쉬움이 나에게 남으면 괜찮은데 상대방에게 남으니까 책임감이 더 생긴다.

<폰>이라는 한국영화에 투자를 하고 배급도 한다고 들었다.

제작사는 토일렛 픽처스인데 후반작업 과정에 우리가 투자를 하고 그리고 배급을 한다. 순제작비말고 마케팅, 프린트제작 등 후반작업에 필요한 돈을 우리가 투자하는 것이다. 요즘은 제작비보다 그게 더 들지 않나. 전에도 이렇게 한 적이 있기는 있다. <댄스 댄스>라고. 그때도 똑같이 후반작업에 투자하고 배급하고 했는데 흥행에 실패했다. 1주일 만에 간판을 내렸다. 그때 광고비가 2억5천만원 정도였다. 제작비는 18억원이었고…. <폰>은 워낙 시나리오가 좋기 때문에 투자와 배급을 결정했다. 지난해엔 코믹액션이 주였지만 <디 아더스> 이후로 스릴러나 드라마 중심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겠나 보고 스릴러에 투자하는 것이다. 인구 대부분이 갖고 다니는 게 휴대폰이니 공감대도 형성될 것이고…. 제목이 주는 뉘앙스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고….

제작투자에 대한 직배사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나.

우리의 가이드라인이 있다. 너무 폭력적이지 않을 것, 살상을 많이 하지 않을 것, 욕을 많이 쓰지 않을 것. 그런 3가지 가이드라인이 스튜디오 전체에 있다. 그런 가이드라인 안에서 투자했을 때 수익을 낼 만한 가능성이 있는 영화에 투자를 한다.

메인투자자가 될 수도 있나.

그렇다. 그동안은 배급만 쭉 해왔기 때문에 한국영화에 진입하는 데 장벽이 좀 있을 것이다. 아직 자신이 안 생겨서 주춤거리고 있지만, 자꾸 시나리오도 보고 하면서 체질이 강화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한국영화 배급, 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나.

비즈니스의 다양성 때문에 하는 것이다. 동남아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고, 우리는 월드와이드 배급회사이니까 비즈니스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수익을 기대하고 하지만, 그보다 우리와 계속 거래를 하는 극장들에다가 양질의 작품들을 계속 공급해주면 친디즈니적인 거래선도 형성될 것이고, 서비스 차원인 면이 있다. 스크린쿼터도 맞추고, 양질의 작품을 공급해주고, 우리 작품도 잘 넣어줘서 수익을 내면 극장으로선 3박자가 맞는 것이 된다. 비즈니스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최근 스크린쿼터가 다시 얘기되고 있는데, 직배사 입장에서는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는 걸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렇지도 않다. 그건 정책적인 문제이니까, 국가 판단에 따를 뿐이다. 한국영화가 많이 성장했는데 보호를 할 것이냐 완전히 개방해서 자생력을 기를 것이냐 결정하는 건 정책입안자들의 몫이라고 본다. 우리는 거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되는 대로 간다.

디즈니가 지금도 전국 직배를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 따라서 85∼90%가 직배다. 나머지 10%는 경기도 9개 도시, 대구, 부산 등 지방의 주요도시들 이외의 지역이다. 그 부분까지 직배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 효율성에서 이윤을 내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극장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마산, 광주 등에 극장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전주, 제주까지 그렇게 되면 95%까지 육박할 수 있다.

최근에 부율문제가 쟁점이 됐는데, 외화와 한국영화가 동등하게 해야 하지 않나 얘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문제라 말하기 곤란하다. 동등한 조건일 때는 그게 가능한데, 외화 같은 경우는 2주, 1주 만에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용 다 부담하고 들어가서 하는데 내리면서 하는 얘기가 스크린쿼터 해야 한다, 그런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로 서로 아주 첨예하다. 극장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원래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영화 일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영화쪽 일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가.

예측을 하기가 제일 어렵다. 예측을 하고 그에 따라 투자액을 결정해야 하는데, 얼마만큼 기대를 할 건가, 얼마만큼 선행투자를 할 건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 정글에 떨어져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도구를 배급시기로 잡을 거냐, 아니면 마케팅 파워로 잡을 거냐, 를 결정해야 한다. 비수기 시장에 들면 마케팅 비용은 적게 들지만 적게 갈 수 있고, 성수기에 들어가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지만 크게 될 수 있는 거고, 그런 부분을 결정해야 한다.

가장 예상에 어긋났던 영화는.

러셀 크로 주연의 <인사이더>이다. 정말 좋은 영화인데, 흥행이 안 됐다. 또 아쉬운 영화는 <쿨러닝>이다. 좋은 영화인데 과소평가했다. 자메이카 봅슬레이영화가 뭐 되겠냐, 해서 작게 보고는 배급시기를 잘못 잡았다. 놓친 영화다. 다들 안 된다고 했는데 된 영화가 <시스터 액트>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인이 빨간 구두를 신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포스터에 나오면 영화 안 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시스터 액트> 포스터는 그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다들 안 된다고 했는데 대성공했다. <진주만>도 개봉 전에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잘됐고, <몬스터 주식회사>도 <반지의 제왕>하고 <해리 포터…> 사이에 왜 꼭 그때 가느냐고 다들 말이 많았는데 자체시장이 있기 때문에 잘됐다.

올해 디즈니의 성적은 어떻게 예상하나.

올해 라인업이 다시 좋아졌다. 주연배우로 보면 케빈 코스트너 영화가 있고, 앤서니 홉킨스 영화 있고, 멜 깁슨 주연 영화 하나 있고, 거기에 애니메이션이 여름 하나 겨울 하나 있으니까, 다섯편이면 1년 끌고 가는 데 무리가 없다. 특히 멜 깁슨 주연의 <사인>은 <식스 센스> 감독 나이트 샤말란이 만든 영화라 아주 기대가 크다. 최소 100만명은 들지 않겠나 보고 있다.

올해는 다른 직배사들 라인업도 만만치 않다.

폭스에 <스타워즈 에피소드2>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 있고 워너에선 <해리 포터…>가 다시 나올 것이다. 상대적으로 직배사들이 지난해보다 라인업이 좋다. 올해에는 시장규모가 유지가 된다면 외화들이 영화가 다양하고 좋기 때문에, 외화쪽에서 관객 수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영화 고정관객이 상당히 늘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외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게 제작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볼 만한 영화를 보는 것이지 한국영화만 찾는다고 볼 수는 없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