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굶어죽을 뻔한 로커시절, 그리고 오스카, <밴디츠>의 빌리 밥 손튼
최수임 2002-04-03

섹시하다는 말을 이 사람에게 쓸 수 있을까. 물론, 브래드 피트나 이완 맥그리거 같은 느낌으로는 아니다. 솜사탕 같은 미소, 댄디한 발걸음에만 이끌리는 이에게 그의 날선 눈빛은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밝고 쿨하고 편안한 것의 반대, 어두움, 복잡함, 다가가기 힘듦에서 그의 매력은 기인한다. 많은 이야기들을 살아낸 사람이 아니고는 지닐 수 없는, 포용과 냉소, 강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그의 눈빛은 어딘가 불온하고 그래서 섹시하다. 영매인 어머니로부터 배우가 될 거라는 예언을 듣던 소년 시절, 노래를 부르고 드럼을 치던 청년 시절, 무명 시나리오 작가로 무명 단역배우로 여러 해를 살며 걸린 영양실조, 다섯번의 결혼, ‘칼 차일더스’에의 집착, 뜻밖의 오스카 수상까지. 삶의 흔적은 그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핫 스프링스라는 이름의 아칸소주 작은 마을에서, 빌리 밥 손튼은 교사 아버지와 영매인 어머니 사이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수입은 보잘것 없었고 조부모와 함께 살던 그의 집은 수도도 전기도 없었다. 손튼은 고교 졸업 직후 취업을 하나 천성과 맞지 않음을 알고 대학 문을 두드렸다. 갓 스물에 한 첫 결혼이 딸 하나를 남기고 2년 만에 이혼으로 끝난 뒤였다. 그러나 심리학 수업을 듣던 대학생활은 단 두 학기뿐. 로큰롤에 빠져든 그는 오랜 친구이자 뒤에 영화작업의 동료가 된 톰 에퍼슨과 ‘트레스 홈브레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로커가 됐다. 그러나 밴드의 뉴욕행이 좌절된 뒤 그는 ‘철없는 시절은 다 갔다’고 웅얼거리며 다시 평범한 일자리로 돌아갔다.

몇년 뒤 1981년, 그는 에퍼슨과 함께 못다 푼 로커로서의 열정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화를 발견했다. 시나리오를 쓰며 그는 생계를 위해 배우 일을 시작했다. 시나리오는 잘 팔리지 않고 연기수입도 변변치 않던 그 무렵, 몇주 동안 감자만 먹으며 연명했던 손튼은 영양실조로 인한 심각한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두번째 결혼과 두번째 이혼, 게다가 출연작들은 곧장 비디오로 직행하던 우울한 그 때, 손튼은 그의 운명의 캐릭터 ‘칼 차일더스’와 조우한다.

칼 차일더스는 처음, 라는 TV드라마 캐릭터로 손튼에게 찾아왔다. ‘슬링 블레이드’(잔디깎이 칼)로 이웃남자와 어머니를 살해한 뒤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된 정신지체자, 칼 차일더스 캐릭터에 매료된 손튼은 이를 25분짜리 흑백단편 <슬링 블레이드라 불리는 전설>(각본·주연)로 만들었고, 이를 본 한 제작자는 그에게 장편제작 제안을 해왔다. “내가 아끼는 그 이야기에 다른 감독이 손댈까봐” 손튼은 냉큼 직접 메가폰을 들었다. 빌리 밥 손튼이 누구인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그때, 각본, 감독, 주연 빌리 밥 손튼의 이 영화 <슬링 블레이드>(1996)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각본상 수상이라는 이변을 낳았다. 그 후, <U턴> <아마겟돈> <심플 플랜> <에어 컨트롤>, 그의 출연작들의 면면은 점점 화려해져갔고 이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밴디츠> <몬스터스 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른다. 그 사이, 네번의 결혼실패를 겪은 손튼은 2000년 5월 당대의 미녀 안젤리나 졸리를 신부로 맞아들이는 행운을 안기도 했다.

<밴디츠>에서 손튼은 은행강도 역을 맡은 덕에 수도 없이 많은 가발을 바꿔 쓴다. <슬링 블레이드>에서 합죽이 같은 입모양을 한 넓적하고 허연 얼굴의 칼과 <에어 컨트롤>의 검고 단단하고 진중한 러셀, <심플 플랜>의 인간적이고 순진한 동생 제이콥, <밴디츠>의 콤플렉스투성이 은행강도 테리. <밴디츠>에서 가발을 바꿔 쓰는 테리는 매 작품에서 변장을 하듯 완전히 다른 모습, 다른 말투, 다른 표정으로 나타나던 손튼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연기는 노는 거죠. 친구들하고 운동장에 나가 놀이를 하는 것, 나에겐 그런 게 필요해요. 시나리오 쓰는 건 나의 또 다른 면을 만족시켜줘요. 나만의 방에 앉아 조용히 몽상을 하는 것 말이에요.” 어느새 47년을 살았지만, 손튼은 나이를 짐작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습으로 멋지게 나이들고 있다. 모건 프리먼, 홀리 헌터와 함께 새 영화 <변덕>(Levity)을 촬영 중인 그는 최근 앨범 <프라이빗 라디오> 발매기념으로 미국 내 8개 도시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