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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여성 캐릭터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영화가 됐으면…" - <여교사> 김태용 감독

<여교사>는 ‘금수저’에게 정규직 자리를 빼앗긴 비정규직 교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모든 걸 가진 이와 그에게 남은 자존감마저 빼앗겨야 하는 주인공, 그들의 욕망의 매개가 되는 소년이라는 삼각 구도의 역학 관계 속에서 파국의 드라마를 그려낸다. 사회안전망에서 탈락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거인>(2014)의 소년 영재(최우식)를 기억한다면, 김태용 감독이 언제나 계급의 벼랑 끝에 자리한 이들을 생생하고 기민하게 묘사해온 감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표 끝에 가까스로 매달려 가라앉지만 않으려던 아이는 <여교사>에서는 형형한 눈빛을 하고 내 자리를 밀어낸 이와 함께 기꺼이 침몰하려는 인간이 된다. 영재부터 효주(김하늘)까지, 절박한 인물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회의 폐부를 들춰내는 김태용 감독을 만났다. 영화와는 달리 밝고 상냥했던 그와 <여교사>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전한다.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장편 <거인>이 워낙 좋은 평을 많이 받아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첫 작품보다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된다. 김하늘이란 배우에 대한 평가가 제일 긴장되는 부분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부 김하늘 배우가 연기한 효주에게 있으니까. 김하늘 배우가 20년 연기 인생에서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언론시사 이후 김하늘 배우 연기에 대해 호평이 나와서 한시름 놨다. 이제 내 살길을 찾아야지. (웃음)

-제작사 외유내강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

=단편 <복무태만>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류승완 감독님이 심사위원장이어서 연이 됐다. <신촌좀비만화>(2014) 중 류승완 감독님이 연출한 <유령> 각본 작업도 했었고. CJ와 <여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성 제작자가 제작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고, 친정집이나 다를 바 없는 외유내강이 <여교사>의 제작을 맡게 됐다. 마침 외유내강도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어 하던 차였다. 외유내강의 첫 여성영화로, 강혜정 대표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전작 <거인>에서는 보호시설에 사는 청소년 영재를 통해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계약직 교사가 정규직 교사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여교사>를 통해 계급 문제에 다시 한번 접근하는데.

=나는 생존을 위해 뭔가를 포기한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거인>의 영재가 생존 때문에 성장을 포기한 소년의 이야기였다면, <여교사>의 효주는 생존을 위해 자존감을 포기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들은 아쉬울 게 많지만 사회는 그들에 대해 아쉬울 게 없다. 영재가 신부님이 되지 않아도, 효주가 학교를 그만둬도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고 아무도 그들을 알아주지 않을 거다. 나도 그런 인간이라 그런지 이들이 투쟁하는 모습에 관심이 많다. (웃음) 생존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지지만 그들에게 자존감이 생길 만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생명력이 번뜩인다. <거인>에서 영재가 신부가 될 가능성이 보일 때, 효주가 혜영(유인영)의 약점을 잡고 재하(이원근)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할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생명력마저 거세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 인물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파국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재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안전망 안에 매달리는 데에만 골몰했다면 효주는 자신의 자리를 밀어낸 자에 대한 질투와 증오, 그를 파멸시키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인물로서 효주는 영재의 확장인 셈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관점이 조금씩 바뀌더라. <거인>이 내 안에 갇혀 있던 시기를 자전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면 <여교사>는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접한 계급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계급 문제를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학교를,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한 까닭이 있나.

=학교에서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사이의 차별이 심하다더라. 학생들도 계약직 교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교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이지 않나. 처우에 대한 불만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갑갑하고 억압적인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계급을 전복하고 관계의 금기를 깨고 싶었다. 선생과 제자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발가벗겨진 채 선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이에 대한 열등감, 질투의 감정이 무척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평소 이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편인가.

=<씨네21>에 실린 <거인> 20자평 중에 이용철 평론가님의 ‘당신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나는 생존 때문에 스스로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영재를 연기한 최우식이 신인상을 받은 걸 보면서 한결 자유로워졌고, 내 안의 깊은 감정을 마주하게 됐다. 찬찬히 돌이켜보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동력은 다름 아닌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더라. 그래서 그 감정이 주가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존감 또한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다.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을 보면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더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기 일쑤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효주도 혜영을 이겨보려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믿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속은 모습을 남에게 들키면서 발가벗겨지고, 나락까지 떨어지는 거다. 김하늘 배우에겐 효주가 정말 재하를 사랑한다고 믿고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멜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라 뛰어나게 소화하시더라. (웃음)

-김하늘의 연기가 놀랍더라. 열등감이나 질투심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배우인데, 정말 효주가 된 듯 히스테릭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에게서 어떻게 이런 모습을 끄집어낼 생각을 했나.

=내게 있어서 최고의 미장센은 배우의 얼굴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더>(2009)에서 자애로운 ‘국민 엄마’ 김혜자 배우의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을 때 무척 감명받았다. 김하늘 배우도 이전까진 어두운 면을 보여주지 않은 배우다. 드라마 <로망스>(2002) 등에서 보여준 ‘국민 선생’ 이미지를 뒤집어보고 싶더라. 그가 지금까지 20여년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감정 중 효주와 맞닿아 있는 감정들을 이끌어내려 했다. 사실 질투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 아닌가. (웃음) 연약한 면도 냉철한 면도 있는 그의 감성과 얼굴을 잘 활용하려 했다.

-이야기의 외연을 보면 성인 여성 두명이 미성년자 남학생 한명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효주와 혜영을 남성으로, 재하를 여성으로 치환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롤리타를 욕망하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됐을 것 같은데. 의도한 성 반전인가.

=<은교>(2012)의 성 반전으로 많이들 보시더라. (웃음) 재하는 효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저렇게 어린 애한테 미쳤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 수 있는 현실적이고 어린 느낌을 줬으면 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치정극을 뒤집어 여성이 주체가 되는 치정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여성들이 영화에서라도 자기 할 말을 다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며 사는 걸 보고 싶더라. 그동안 여성배우들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대상화되어 소모된 경우가 많았는데, 2016년 <비밀은 없다> <아가씨> <미씽: 사라진 여자> 등 여성영화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대중이 여성 캐릭터에 대해 기대하는 방식이 달라졌구나 싶었다. <여교사>도 여성 캐릭터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여성이 주체로 나선 성 반전은 흥미롭지만 ‘여교사’라는 제목이나 여성이 여성을 질투하는 이야기에 있어선 젠더에 대한 편견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남성이 남성을 파멸시키는 수많은 서사가 있는 만큼 여성에게도 다양한 서사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질투라는 감정은 조금 전형적일 수 있으니까.

=한 인간을 질투하고 파멸시키려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 캐릭터가 여자일 뿐이다. <아수라>(2016)처럼 남자가 남자를 파멸시키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웃음) 여자의 편이 여자인 이야기든 여자의 적이 여자인 이야기든, 여자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다. 이 영화가 잘되어서 창의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신인감독들이 여성 캐릭터가 메인인 영화를 준비할 때 투자·배급사에서 주인공을 남자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많이들 듣는데, 그걸 뒤집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여교사’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전혀 섹슈얼한 의도가 아니었는데 구글을 검색해보고 나도 놀랐다. 그저 직업이 교사인 여성을 제목으로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이런 왜곡된 이미지들이 덧붙는 게 안타깝더라.

-혜영을 일차원적인 악녀로 그리지 않음으로써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시키지 않으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혜영이 다소 대상화되는 느낌도 있다. 진짜 문제는 시스템에 있고, 복수의 대상이 되는 혜영은 가해자가 아닌 시스템의 수혜자일 뿐인데.

=피할 수 없는 지점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요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안의 정유라는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너무 큰 박탈감을 주고 있지 않나. (웃음) 학생들은 내가 열심히 살아봤자 안 된다는 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선악 구도로는 그리고 싶진 않아서 혜영에게 따듯하고 밝은 면도 부여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잘생기고 브랜드 옷만 입고 차도 끌고 다니고 성적도 좋고 결정적으로 착하기까지 한 애들이 많았다. 착해서 욕도 못하겠더라. 이런 친구들을 미워하면 모멸감은 전부 내 것이 된다. (웃음) 그런데 그들은 아쉬울 게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혜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클라이맥스에서 파국을 직접적인 이미지로 드러내는 컷이 꽤 충격적이다. 이 컷을 보여주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영화는 이미지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니까. 인간 본성에서 나온 극한의 감정들과 악마성, 파국의 결과물을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이 영화가 던진 화두가 완성될 것 같더라.

-효주는 그 처지가 이해가 되는 한편, 완전히 이입하기는 어려운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효주를 이해하고 연민했으면 하는 마음과 효주를 무비판적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관객이 효주와의 거리감을 어느 정도는 갖길 원했나.

=그런 셈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인물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 있어야 인물의 욕망이 보인다. 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해준 것은 방준석 음악감독의 음악이었다. 음악이 이 세 사람을 관조하고 조망하는 전지적 시점이었으면 했다. 이국적인 라틴, 탱고 음악을 과감하게 썼고, 그 의도를 잘 살려낸 것 같다. 무용수 피나 바우슈가 “탱고는 파트너를 잘 만나면 구름 위 같지만 잘못 만나면 지옥보다 고통스러운 춤”이라고 했다더라. 그 말이 딱이었다. 촬영에서도 타이트한 클로즈업뿐 아니라 넓은 사이즈를 잘 활용해 인물간의 구도를 보여주려 했다.

-여러모로 ‘문제작’이다.

=관객에게 논쟁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영화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계급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다음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거인>과 <여교사>로 인물을 통해 화두를 던졌으니 이번엔 사건 위주의 본격적인 장르영화를 하고 싶다. 사회성이 있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슬픈 스릴러가 될 거다. 현재 각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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