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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연상호 감독·배우 정유미 - 1%의 어떤 것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8-01-23

닮은 구석이라곤 요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어딘지 닮았다. 연상호 감독은 뭘 찍어도 연상호스럽게 찍는다. 정유미 배우는 어떤 역할을 소화해도 정유미라는 특유의 아우라를 입힌다. 두 사람은 마치 형용사처럼 무언가를 묘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함께하면 편하고 즐거운가보다. <부산행>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연상호 감독과 정유미 배우는 같이 하는 게 당연했다고 말한다. “감독님한테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좋으니 뭐든 시켜달라고 부탁드렸다. 악역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럼 더 좋다고 했다. (웃음)” 정유미 배우는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염력>에서 홍 상무 역할을 맡았다. 건물을 철거하려고 상인들을 몰아내는 배후의 조종자다. “메인 빌런인 셈인데 개인적으로 악역을 좋아한다. 홍 상무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니 유미씨가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주었다.” 홍 상무는 분량으로 치자면 딱 3신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염력>의 핵심 캐릭터라 할 만하다. 아마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처럼 <염력>의 애니메이션 프리퀄을 만든다면 주인공을 맡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연상호의 날카로운 시선이 녹아 있다. “부잣집에서 곱게 자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악역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지만 해맑고, 구김살 없는 악당이랄까. 전무후무한 신선함이라는 점에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발렌타인(새뮤얼 L. 잭슨)같은 느낌이다.”

아주 익숙한 클리셰를 담았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묘한 악당 홍 상무는 말 그대로 연상호 감독과 정유미 배우의 합작품이다. 정유미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름대로 톤을 잡아서 현장에서 첫 연기를 보인 순간 다들 폭소가 터졌다. “정유미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역할을 맡아도 한끗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는 거다. 로맨틱 코미디를 해도 정유미의 멜로가 나오고 악역을 맡아도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굳이 캐릭터를 재해석하거나 연기 변신을 하는 등 힘을 주는 연기와는 또 다르다.” 정유미 배우의 톤이 마음에 들었던 연상호 감독은 그때부터 현장에서 맞춰가며 상당 부분을 수정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즉흥연기 지도를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셨다. 필요한 부분을 임팩트 있게 표현하신다. 나에겐 좋은 연기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웃음) <윤식당> 덕분에 요새 입에 붙었는데 아까 감독님 봤을 때도 ‘선생님!’이라고 불러버렸다.” 정유미 배우에겐 <부산행>에서 연상호 감독과의 만남이 좋은 기억, 즐거운 현장인 동시에 일종의 전환점과도 같았다. “예전에는 뭔가 하기 전에 고민부터 했다. 내가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고 괜한 선입견이 생길까 두렵기도 했다. 어떤 현장을 나가면 유미씨를 믿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곳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런 작은 시선들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해달라고 정확한 디렉션을 해주는 게 편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홍상수 감독님도 매우 정확한 디렉션을 주시는 편이다. 좋은 감독, 좋은 현장을 만나 나 자신도 바뀌고 있는 중이다. 예능 출연(<윤식당>)을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그게 좋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효율적으로 찍기로 정평이 난 연상호 감독이지만 <염력>에서는 또 한 차례 진화했다. 현장의 분위기를 받아들여 그때그때 수정도 많이 했고 스탭, 배우들과 호흡하며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나갔다. “연상호 감독님 차기작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다. 현장이 즐겁다. 모든 게 담백하게 소통이 된다. 믿음이 가는 감독님과 함께하다 보니 뭘 시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부산행>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염력>은 더 신나하는 게 느껴졌다. 분량이 적어 자주 오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정유미 배우는 함께 있을 땐 못내 부끄러워하다가 연상호 감독이 살짝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말을 보탰다. “연상호 감독님은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한다. 아주 익숙하지만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부디 나처럼 관객 여러분도 이 흥미진진한 장르를 믿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뒤에서 가만히 듣던 연상호 감독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보탠다. “언젠가는 정유미 배우 단독 주연인 블록버스터를 만들 거다. 무조건 출연해야 한다고 진즉부터 이야기해놨다.” 역시 두 사람, 묘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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