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곤지암> 정범식 감독 -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체험’하는 공포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8-03-29

각종 SNS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공포영화 <곤지암>은 오랜만에 공포영화로 돌아온 <기담>(2007)의 정범식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를 둘러싼 각종 바이럴 마케팅이 좋은 효과를 누리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대세라고도 할 수 있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은 때론 싸늘하다. 소위 말해 더이상 새로울 게 없는 장르라는 시선일 텐데 정범식 감독은 이번에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공포영화의 장르적 속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 요즘 젊은 관객의 취향이나 성향까지 면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공포영화를 내놓은 것이다. 오랜 기간 장르영화를 작업해오면서 느꼈던 어려움과 이번에도 뭔가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친 그를 만나 <곤지암>이 가리키는 공포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영화 <곤지암>의 모티브가 된 ‘남양 신경정신병원’이 ‘<CNN>이 선정한 지구상에서 가장 기괴한 7곳’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처음엔 바이럴 마케팅인 줄 알았더니 실제 보도된 바 있더라. 영화의 기획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하이브 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와 <무서운 이야기>(2012)로 연을 맺고 지냈는데, 그분이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영화 <폐가>(2010)를 제작하고 나서 <폐원>이란 영화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2016년 6월경에 대표님이 나를 찾아와서는 곤지암의 한 정신병원이 배경인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포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기획의 어떤 면에 끌려 연출을 결심했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블레어 윗치>(1999) 이후 끊임없이 자기 복제와 변형을 거듭하며 발전해가고 있었다. 물론 소재 면에서 약간의 변형만 가할 뿐 형식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신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거라면 기존 장르에서 진일보한 형식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의 끝에 ‘체험형 공포라는 설정을 더해, 관객이 공간을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며 시작하게 됐다.

-보통 혼자 각본까지 직접 쓰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는 공동 각본으로 이름을 올렸다.

=각본에 이름을 함께 올린 박상민 작가는 <기담> 연출팀 막내로 영화 일을 시작한 후배다. <워킹걸>(2014)때는 조감독으로 입봉해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곤지암> 기획 소식을 들은 박상민 작가가 이 영화를 꼭 내가 연출해야 한다며 오히려 나를 부추겼다. 그래서 같이 써보자고 제안했다. 집 앞 카페에서 12번정도 만났는데 하루에 3~5시간씩 스케줄 맞춰가며 작업해 초고를 완성했다.

-<곤지암>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파운드 푸티지라는 하위 장르에 중점을 둔 영화다. 체험형 공포라는 기획 방향에 걸맞은 라이브 방송 형태 같은 설정이 영화의 전체 구조를 결정짓는 요소다.

=시나리오 초고를 쓰던 당시, 인터넷에서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레이싱 영상을 찍어 수억원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는 뉴스를 봤다. 광고 수익 때문에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싶어서 유튜브 라이브 쇼의 컨셉이 탄력을 받았다. 영화 속 시간이 실제 러닝타임과 동일하게 진행되는 원칙을 적용해서 “생방송 시작합니다”라는 멘트에서부터 영화가 시작해, 끝날 때는 방송이 종료되는 형태로 만들었다. 이런 원칙을 만들고 나니까 촬영감독의 촬영과 일반 영화에서 하듯 배우들의 연기를 조합하는 방식은 의미가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아예 영화 전체를 배우들의 몸에 매달아놓은 ‘직캠’만으로 다 찍어버리자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직접 찍지 않은 컷이 어떤 컷인지 궁금하다.

=정신병원 내부의 CCTV 숏은 촬영감독님이 찍었고, 인서트 몇컷 정도다. 그외엔 모두 부산 영도의 한 폐교에서 실제로 배우들이 찍은 영상들로 이뤄져 있다. 그 폐교가 사진 속 곤지암의 정신병원 형태와 가장 흡사했다.

-주연배우를 모두 신인배우 위주로 캐스팅한 의도도 궁금하다.

=시나리오 작업할 때 김원국 대표로부터 엔딩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스크린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 침상에 눕혀진 채 끌려들어가는 장면 하나만 넣어주면 나머지는 모두 내 뜻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웃음) 그래서 시나리오 쓸 때 기존의 유명한 배우들 이름을 써서 그들이 연상되게끔 시나리오를 썼고 오디션을 진행할 때 내가 의도했던 인물의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친구들 위주로 찾아봤다. 최종 26명을 선발해 4팀으로 나눈 뒤에 연극 리허설 하듯이 촬영했고 그걸 토대로 투자사, 제작사와 나를 포함한 모든 스탭들의 투표로 선정했다. 지금의 배우들은 그렇게 선정된 친구들이다.

-독특한 촬영 컨셉 때문에 복잡한 현장이었을 것 같은데 신인배우들과의 작업이 더 어렵지는 않았나.

=영화 전체를 배우들이 직접 찍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첫 촬영에 들어갔는데, 영화의 성격상 5분에서 10분정도를 롱테이크로 찍고 스탭들은 전부 뒤로 빠져 있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카메라를 조작해 줌 타이밍에 맞춰 찍고 비추고 하다보니 혼돈 그 자체였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는데 촬영감독처럼 잘 찍을 수는 없지만 배우들이 느낀 만큼의 정서가 촬영에 담기더라. 일반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연기자와 촬영감독이 작업하는 게 아니라 배우가 스스로 느낀 만큼의 앵글이 담기다 보니 촬영감독의 숏과 잘 섞이지도 않아서 아예 그들이 찍은 영상 위주로 영화를 만들었다.

-곤지암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지만 막상 <곤지암>을 보면 완전 허구의 역사성을 부여한 가상의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그런데 그곳이 유신정권의 산물이라는 가상의 설정 때문에 자연스레 <기담>의 안생병원의 연장선상에 놓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이 매카시 선풍의 은유라고들 하지 않나. <기담>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판단 기준에서는 실제와 오차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다. 예를 들면 ‘안생병원’이란 이름도 당시엔 안락한 삶을 택했던 사람들이 후대에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게 되는 과정을 반영한 이름짓기였다. 주인공 정남이 창씨개명을 하고 받은 이름 다카키 마사오의 의미, 스스로 옳다고 여겼던 시대정신과의 비극적인 결합 같은 것들을 고민하며 러브스토리를 곁들여 써내려간 영화였다. 아직도 그 시대의 지배와 영향 아래 놓인 시대를 산다는 것은 <곤지암>의 배경인 정신병원에도 동일하게 부여한 역사성이다. 그런데 의외로 <기담> 개봉 당시에는 영화가 끝을 맺는 ‘1979년 10월’의 의미를 사람들이 몰라주더라. 나는 당연히 10·26을 떠올릴 거라 여겼지. (웃음) <곤지암>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이스터에그를 곳곳에 숨겨놨다.

-소재뿐만 아니라 형식을 고민하면서 생방송 컨셉의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활용한 영화들과 다른 전략을 취한 점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무렵 <혼숨>(2016)이란 영화가 만들어져 보게 됐다. 다들 생각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우리 기획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큰 틀 안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바꿀 수도 없었다. 그것은 그대로 시장의 리스크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상업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캐릭터의 관계에서 오는 사연을 빼자는 것이었다. 언젠가 먹방 생방송을 본 적 있는데, 시청자들이 ‘먹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더라. 그렇다면 우리도 ‘체험형’ 내러티브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호러영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쉽게 말해 부수적인 사연을 이야기 안에서 모두 지워나간 것이다. 공간 자체를 캐릭터로 두고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보듯 캐릭터들의 리액션을 관객이 지켜보게 하는 것이 <곤지암>을 보게 만드는 재미 요소라고 생각했다. 현대 호러영화들이 과시하듯 보여주는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나 음향효과 말고 히치콕 스타일의 고전 호러영화들이 보여줬던 서스펜스 조율 방식처럼 컷의 길이를 중요하게 편집하고 소리를 아끼고 아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요즘 공포영화들이 잘 구사하지 않는 내러티브 방식과 고전영화들의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을 합치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를 고민했다. 그 효과에 대해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곤지암>은 고프로, 핸디캠, 보디캠, 심지어 360카메라까지 동원되어 정말 다양한 앵글의 영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촬영방식을 통해 어떤 공포효과를 추구한 것인지 궁금하다.

=두 가지 전략이 있었다. 후반작업할 때 전부 제각각인 영상 소스의 톤 앤드 매너를 통일시키지 말고 다른 색감을 유지해 이질감을 선사하도록 했다. 다양한 영상으로 영화 초반에 공간을 숙지하게 한 다음, 두 번째 전략으로 후반부에는 오히려 앵글에 제한을 두어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많은 공포영화들이 초반에 제한된 앵글을 쓰고 후반부에 몰아치듯 다양한 앵글을 보여주는데 우리는 거꾸로 후반부에 제한을 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결정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샬롯(문예원)의 장면이 있는데 이때 한정된 앵글로 만들어내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인 순수한 원칙을 가지고 긴장감을 만들어내면 관객이 옴짝달싹 못할 거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 방법이 더 높은 밀도의 공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는 관객이 보는 시점이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되는지가 중요하다. <곤지암>의 관객은 극중 인물들이 참여하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다. 그런데 후반부에 인물들이 패닉상태에 빠지면서는 시점이 불분명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불분명한 것은 아니다. 제작·투자 단계에서 <곤지암>의 인물들이 참여하는 생방송에 대한 어떤 주문을 해온 것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본다면 어떤 설정을 집어넣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설정을 이해하면 영화 전체의 시점에 관한 의문도 해소될 것이다.

-<씨네21> 필자이기도 한 듀나도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듀나를 포함해 몇몇 평론가들에게 모니터링 차원에서 의견을 듣기 위해 영화 후반부 순서가 조금 바뀐 편집본을 보여준 적 있다. 그때 도움을 받은 감사한 이들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렸다. 트위터로 교복 문제를 지적했던데 내가 1983년 교복 자율화 첫 세대라 그 이전인 1982년까지는 교복을 입었다. 영화의 고증은 틀리지 않았다.

-할리우드는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시장 규모가 작아서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쇼박스가 그동안 공포영화는 <미확인동영상> 한편밖에 안 했다며 <곤지암>의 등장을 무척 반가워했다. 그리고 몇몇 호러영화를 통해 비수기 시장에서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 몇번의 성공 사례만 나타나준다면 좋겠다.

-공포도 공포지만 전작인 <워킹걸>을 보면 코미디에 대한 감각도 남다르다. 하지만 생각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워킹걸>을 본 어떤 관객은 <개그콘서트>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무서운 이야기2>의 <탈출>이 여러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해외 관객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관객은 호러와 코미디가 뒤섞인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없지만 <워킹걸> 역시 섹시 코미디로 생각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반감을 안겨줬던 것 같다. 반면 가족 코미디로 생각하고 본 관객은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마케팅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줘야 반감이 줄어드는 것 같다. 이번에는 마케팅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아 체험형 공포라는 영화의 형식과 마케팅 방향을 정교하게 맞춰가고 있다.

-<곤지암>을 <기담>의 정범식 감독의 본격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좋을까.

=옴니버스영화가 두편 있지만 11년 동안 5편을 만들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작품 수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장에서 원하는 안정적인 영화를 찍었다면 더 많이 찍었을 것 같다. 언젠가 박찬욱 감독님과 한 시상식 자리에서 만났는데 대뜸 “2000년대 이전엔 내가 최고였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는 범식이 네가 최고라는 소리가 있더라” 하시기에 “무슨 소리인가요?” 물었더니 “영화 엎어지는 거”라고 하시더라. (웃음) 그땐 덕담으로 알아들었다. 명함까지 찍고 엎어져야 제대로 엎어진 거지, 그전에 엎어진 영화는 카운트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시더라. 지난 11년 동안 다른 영화를 찍는다는 게 대단히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곤지암>을 찍다가 정말 힘든 시기가 찾아왔는데 그때 마침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님이 “승리의 횟수보다 어떤 종류의 싸움인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시더라. 왠지 내 이야기 같아 뭉클했다. 이왕 <곤지암>을 새로운 방식으로 찍기로 했으니 한번 시장의 평가를 받아보자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어떤 장르영화를 어떤 관객에게 어떤 방법으로 공략해야 할지 예전보다는 명확해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면밀히 연구하면서 더 많은 영화를 찍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다짐해본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