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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배우 아딜 후세인 -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8-05-31

인도영화 <바라나시>는 죽음을 준비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지켜보는 아들의 이야기를 사려깊게 그린 영화다. 배경은 순례자의 도시로 유명한 인도의 바라나시. 경쾌한 춤과 노래 대신 사실적인 캐릭터와 보편적인 감정, 따스한 기운이 영화를 채운다. 배우 아딜 후세인은 영화의 보편성과 따스함을 책임진다.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 파이의 아버지로 출연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딜 후세인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자국영화와 합작영화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일출>이란 영화로 방문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파르토 센굽타 감독의 <일출>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을 받아서 포스터 출력 비용을 마련했던 기억이 난다. 사정이 어려워 감독이 직접 크레딧 타이틀을 만들 정도였는데, 영화가 부산에서 상영되고 평단의 평이 꽤 좋아 뿌듯했다. 그래서 부산에 대한,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일출>은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웃음)

-<바라나시>는 인도의 내밀한 풍경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또한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는 영화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이지만 내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더이상 사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바라나시> 역시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많은 어른들이 부모가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공감할 지점이 많은 영화다. 슈브하시슈 부티아니 감독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영리하게 풀어간다. ‘바라나시의 호텔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내는 15일’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이 영화를 더욱 농밀하게 만든다.

-바라나시라는 공간이 중요한 영화다. 실제 인도인에게 바라나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혹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도 한다. 도시는 무척 더럽고 혼돈 그 자체이지만 그곳에 가면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바깥은 워낙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정신없지만 오히려 내면에선 행복과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바라나시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도 내 안에 존재하는 행복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내면의 행복을 발견하고 책임질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깨달음. 바라나시에 가면 눈앞에선 화장식이 거행되고 그 옆에선 결혼식이 진행되고 그 뒤에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고, 우리는 모두 배우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 혼돈과 평화가 공존하는 바라나시에서 영화를 촬영한 것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겠다.

=영화에서 라지브가 화장터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실제로 누군가의 화장을 지켜보던 순간을 찍은 거다. 화장터 앞을 거닐 때의 경험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음에 남았다. 삶의 가장 훌륭한 조언자는 죽음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항상 죽음이 내 어깨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결정을 내리게 되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바라나시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라지브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들이자 딸에게는 엄격한 아버지다. 라지브 캐릭터에 실제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나.

=라지브와 내가 다른 점은, 내가 13살 이후로 아버지의 말을 한번도 듣지 않았다는 거다. (웃음) 아버지는 내가 영어 교수가 되길 바랐지만 난 배우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은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땐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했지만 라지브와 달리 위로 형이 4명이나 있어서 책임감이 크진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어릴 때 혹독하게 영어를 가르쳐줘서 감사하다고, 그 덕분에 영어를 사용하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고, 나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영화를 찍으며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라지브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의 평범함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에서 살아가는 50대의 평범한 가장, 평범한 아들의 모습을 표현하게 위해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

=라지브의 캐릭터와 상황에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내 아버지는 가난한 교사였고 작은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았다. 라지브 역시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힘들게 택시 합승을 하지 않나. 그런 경험들이 공감의 영역을 넓혀줬다. 연기할 땐 그 순간의 진실함에 집중했다. 내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버지 역의 배우(라리트 벨)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내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아들로서의 경험을 꺼내 그 순간에 진실되게 연기했다.

-<바라나시>의 슈브하시슈 부티아니 감독은 20대 젊은 감독이다. 젊은 감독이 3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를 깊은 시선으로 다룬 게 놀랍다.

=지인에게서 와츠앱 문자가 왔다. 23살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관심이 있냐고. 시나리오도 보기 전이었는데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첫 만남에서 특별한 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중간중간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싶어서 “그런데 몇살이라고 했지?”, “너 정체가 뭐야?” 하고 장난치기도 했다. 리안 감독을 떠올리게 할 만큼 섬세하고 현명했다. 현장에선 철저히 감독 대 배우로 서로를 대했다. 감독이 나이 많은 배우를 어려워할까봐 시작할 때부터 ‘나는 당신의 배우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인도의 훌륭한 감독으로 성장하리라 예상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의 아버지로 출연했고 이후에도 여러 합작영화에 출연했다.

=에이전트 없이 활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출연 제의를 종종 받게 돼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예산영화일 경우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특별함을 중요하게 본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예외였다. 리안 감독이라고? 무조건 해야지! 이런 좋은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그런 마음이었다. 사실 시나리오만 봐서는 도무지 영화를 알 수 없었다. 호랑이 한 마리와 소년이 한배에? (웃음) 그럼에도 감독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출연했다. 노르웨이에서 <왓 윌 피플 세이>(2017)라는 영화도 찍었는데 노르웨이는 물론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여기서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도 이전에 해본 적 없는 특별함이 있어 멀리 노르웨이까지 가서 영화를 찍었다.

-춤과 음악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발리우드영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춤과 노래를 못해서 그렇다. (웃음)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서, 히틀러부터 부처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서 배우가 됐는데 뮤지컬 요소가 들어간 발리우드영화의 경우 캐릭터가 한정적이다. 물론 영화에서 춤과 노래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가계 사정이 좋지 않으면 출연할 수도 있겠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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