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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앤 더 독스> <튀니지의 샬라>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 - 내가 느낀 이 분노를 관객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8-06-14

매진, 또 매진. 올해 첫 유료관객제를 시행한 제7회 아랍영화제. 혹시 관객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튀니지 여성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과의 만남에서 관객의 호응은 그 어느 해보다 컸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여성 마리암이 하룻밤 사이 공권력이 가하는 2차 가해를 겪는 과정을 따라간 영화 <뷰티 앤 더 독스>(2017)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호평받은 작품으로 미투(#MeToo) 운동과 페미니즘 이슈로 고민하는 지금의 한국 관객도 피부로 체감하게 되는 문제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던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오토바이 탄 남성이 거리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면도칼로 해한 루머를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튀니지의 샬라>(2014)를 시작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영화로 발언해왔다. 영화의 소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 형식으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벤 하니아 감독의 영화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크다.

-서울, 부산에서 관객과 만났다. 성폭행과 2차 가해라는 이 영화의 문제가 멀리 한국 관객에게도 엄청난 공분과 지지를 얻은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먼 곳까지 왔다. (웃음) ‘이렇게 먼 곳의 관객은 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와서 보니 같이 공감해주더라. ‘내 영화가 보편성을 가졌구나, 세계 어디서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뷰티 앤 더 독스>의 실제 사건은 튀니지 사회에서 커다란 이슈를 만들었다. 실제 피해자가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영화화했는데, 영화 공개 후 반응과 변화는 어땠나.

=지난해 11월 개봉했는데,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도 상영 중이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이 영화를 캠페인의 목적으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의 방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여성 폭력에 대한 보호법을 제정하는 투표가 있었는데 그걸 독려하는데도 이 영화가 좋은 자료가 됐다. 튀니지 여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로 인식됐다. 실제로 경찰이 성폭력을 행한 사건으로, 튀니지에서 유명한 사건이었다. 7년형을 선고받은 가해자들이 항소했는데 그보다 더한 14년형을 받았다. 재판까지 2년이 걸렸다.

-<튀니지의 샬라> <뷰티 앤 더 독스> 모두 여성을 향한 사회의 억압과 차별적인 시선, 그로 인한 폭행에 대한 문제를 연달아 이야기해왔다.

=여성이라서 내가 더 영화 속 상황을 밀접하게 느끼게 되더라. 이 사건이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연출자로서 이 이야기를 더 발견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싶었다. 내가 느낀 이 분노의 감정을 관객과 공유하길 바랐다. 특히 <뷰티 앤 더 독스>의 실제 피해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폭력을 공개하고 문제제기를 한 것에 나 역시 용기를 얻었다.

-<뷰티 앤 더 독스>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여성이 경찰서에서 2차 가해를 당하는 하룻밤의 시간을 9개의 ‘시그먼트’로 구성한다. 마치 관객이 그날 밤 상황 속으로 들어가 관찰하고 있는 듯한 집중력을 극의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실화를 접하고 난 후 이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 보여줄지 결정할 때까지 시나리오를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 관객이 실시간으로 이 상황을 겪고 몰입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컷 없이 롱테이크로 보여주면서 감정이 상승하고 거기서 더 상승하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거다. 중간의 암전을 통해 그 상황에서 피해자 여성이 어떤 결정을 해나가는지 변화를 보여주려고 했다.

-마리암이 실제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끌어내는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 흔히 지적되는, 공분을 사려는 의도로 가학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극을 끌어간다.

=실제로 성폭력은 굉장히 은밀한 장소나 개인적인 공간에서 행해진다. 고소가 시작되면 순전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말로만 이야기될 뿐 그 사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자가 어떤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영화적인 장치를 통해 그 힘겨운 시간을 보여주고자 했다.

-<튀니지의 샬라>의 가해자 남성들은 짧은 의상을 입은 여성은 가해를 당해도 마땅하다고 본다. 그 사고방식이 <뷰티 앤 더 독스>에서 마리암이 클럽에서 입은 블루드레스로 연결된다. 마리암의 의상이 사회의 시선과 차별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로 활용된다.

=이 영화 속 경찰을 비롯해 남성들의 선입견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이다. 영화에서 마리암이 입은 블루드레스가 중요했다. 블루드레스는 마리암이 하는 행동과 정확히 반대를 보여주는 장치다. 계속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그 드레스로 인해 마리암을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드레스뿐만 아니라 영화 속 소품 하나하나가 사회적인 시선을 드러내게 하려고 했다.

-마리암은 그 하룻밤의 폭행을 당하는 동안, 자신이 이 시선과 차별에 굴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변화해나간다. 가까스로 얻은 천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경찰서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마치 슈퍼히어로영화의 주인공의 탄생처럼 희망과 용기를 준다.

=영화를 본 청년 관객이 와서 마블 영화 같다고 이야기하더라. (웃음) 장르영화적으로 보이기를 바랐던 부분이 있었다. 장르영화를 봐도 실제 현실의 메타포가 많다. 신화와 같이 평범하고 나약하고 온순한 여자인 마리암이 진짜 파워를 발견하게 되고, 그 힘을 가지고 다시 싸우는 영웅의 탄생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전체에 튀니지 사회를 비판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널리 알려진 튀니지 혁명(2010년 튀니지 국민들이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한 민주화 혁명으로, 민주화 시위가 처음 시작된 튀니지의 국화 재스민에서 유래된 명칭) 이전에는 언급할 수 없었던 소재였다고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재스민 혁명 전에는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검열이 있었을뿐더러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비판은 절대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지금은 검열도 없고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다. 혁명 전이라면 만들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이제는 만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펀딩이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나빠진 것 같다. 이전이 적은 예산이었다면 지금은 최저 예산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아랍영화제가 국제영화제에서 부상하고 있다. 쟁점이 그만큼 많은 곳이다.

=산업이 발전해서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기보다 지금 아랍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현안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눈이 아니라 아랍인의 시선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시급성이 대두되고 그래서 아랍영화가 많은 것 같다. 차세대 신진 영화감독들이 열정을 가지고 많이 만들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하자는 움직임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2편의 아랍영화가 갔고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도 많이 초청됐다. 여성감독도 많은데 사실 그 수가 미약하다. 산업 자체가 별로 없다보니 남성, 여성 모두 기회가 없다.

-차기작 계획은.

=시리아 난민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더 맨 후 솔드 히즈 스킨>이다. 난민 남자가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러 가기 위해, 미국 현대예술가의 제안을 받고 몸 전체에 문신을 해 유럽 아트 투어를 가는 이야기다. 한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로의 정체성은 오간 데 없고, 모든 박물관이 그를 아트워크로만 취급하는 이야기다. 내년 1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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