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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감독, 고성완 배우 - 자연스러운 페이소스의 발견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18-06-21

고성완 배우, 고봉수 감독(왼쪽부터).

“삼촌… 이번엔 주연을 해야 할 것 같아.” 독학으로 영화를 배우고 초저예산으로 영화 만드는 법에 도가 튼 감독이 친삼촌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면서 한 말이다. 짠내 나는 코미디 <델타 보이즈>(2016)로 화려한 데뷔를 마친 고봉수 감독은 서울 7211번 버스기사인 삼촌을 “코미디의 롤모델”이라 칭한다. <튼튼이의 모험>은 폐부 직전인 지방 고등학교 레슬링부의 이야기로 <델타 보이즈>의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배우와 삼촌 고성완 배우가 그대로 출연한다. 고성완 배우는 생계를 위해 버스기사로 전업한 전직 레슬링 코치 상규를 연기한다. 지금 그의 버스 회사는 “난리가 났다”. 고봉수 감독이 단체관람 티켓이라도 끊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장님이 전 직원 표 끊어서 간다고 했다”면서 삼촌은 손사래를 친다. 삼촌과 조카로 수십년을, 감독과 배우로 이제 막 발을 뗀 두 남자를 만나 여름 극장가에 호기롭게 뛰어든 작고 무모한 영화에 관해 물었다.

-단돈 250만원으로 찍은 <델타 보이즈>에 이어 두 번째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이번엔 배우들까지 십시일반 투자해 예산이 2천만원으로 늘어났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고봉수_ 원래는 상업영화로 제작하고 싶었다. <델타 보이즈> 멤버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이 중요했고, 시나리오에서 지키고 싶은 부분도 많았는데 제작사와 뜻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고맙게도 배우들이 도와줬다.

-전에 비해 조금 늘어난 예산 덕분에 달라진 점이 있었나.

고봉수_ 과거에 비해 먹을 것이 풍족해서 좋았다. <델타 보이즈> 땐 영화 소품으로 실제 식사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 가장 기뻤고, 끝나고 고기도 구워 먹었다.

-레슬링팀 선수 3인 만큼 코치 상규의 비중도 큰데. 친삼촌을 캐스팅한 건 꽤 과감한 결정이다.

고봉수_ 삼촌은 동네에서 웃기기로 소문이 났던 사람이다. 사소한 말투나 의도치 않은 실수 같은 것으로 주변 사람을 본능적으로 웃긴다. 다른 배우들과의 시너지가 좋을 거라 생각했다.

=고성완_ 봉수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같이 손잡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성룡 영화, 무술영화를 많이 봤고 둘 다 코미디를 무지 좋아한다. <튼튼이의 모험>도 처음엔 작은 배역이어서 별 무리가 없을 줄 알고 시작했다.

-첫 단편영화에도 고성완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고봉수_ 1인극 형식인데 머리가 너무 커서 콤플렉스인 사람이 나온다. 길을 걷다 벽에 뚫린 개구멍을 보고 ‘내 머리가 과연 저기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결국 개구멍에 머리를 넣고 빼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여러 해프닝이 벌어지는 5분 정도의 짧은 단편이다. 명절에 친척들 앞에서 보여줬는데 ‘뭐하는 짓들이냐’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고성완_ 나도 그때 그 영화를 보고 그랬지. ‘이 길은 네 길이 아니다. 다른 길로 가라.’

-고성완 배우는 버스 회사에 한달 조금 안 되는 휴가를 내고 촬영장에 갔다고.

고성완_ 혼자서 촬영지로 내려가는 늦은 밤 고속도로에서 정말 두려운 심정이었다. 첫 촬영날도 갑갑한 건 마찬가지였다. 고봉수 감독은 대사와 분위기만 대강 알려주는 스타일인데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어색한 거다.

고봉수_ 우리 촬영장은 일반적인 영화 제작 현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내가 카메라를 잡고, 마이크 하나에 스탭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삼촌 입장에선 이게 영화인지, 애들 장난인지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그래서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첫 촬영날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고성완_ <델타 보이즈>로 배우들과 안면만 있는 상태였는데, 촬영장에 밤늦게 도착해서 첫인사하고 넷이서 방을 같이 썼다. 그렇게 뭘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다음날 촬영에 들어갔다. 지나고 보니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얼떨결에 한 것 같은 느낌?

-고봉수 감독은 즉흥적인 연기를 선호하는 감독인데 힘들진 않았나.

고성완_ 처음엔 자꾸 고 감독 눈치를 보게 되더라. ‘이렇게 하면 쟤가 좋아할까?’ 여러 생각을 했는데, 계속 하다보니 나도 함께 젖어들게 됐다.

고봉수_ 현장에서 삼촌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내가 조카니까 아무래도 좀 편했던 것 같다. 삼촌이 원하는 코미디가 확실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옛날 스타일. (웃음) 성룡 스타일의 슬랩스틱이다.

-레슬링은 어떻게 배웠나.

고성완_ 내 경우는 촬영장 내려가기 전에 유튜브로 공부했다. 꽤 봤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고. (웃음)

고봉수_ 가르치는 장면을 찍을 때 옆에서 실제 전남 함평중학교 레슬링부 코치님이 계속 봐주셨다. 삼촌 보고 실제 같다고 하시더라.

-<델타 보이즈>에 이어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감독의 취향이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봉수_ 주변 어른들을 볼 때 특유의 말투나 행동을 유심히 본다. 그런 것들이 영화에 자연스레 들어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면 대체로 다 승낙을 한다. 이번 영화에도 로케이션 섭외차 방문한 고물상 사장님을 섭외했다. 혼잣말을 많이 하시는 분이었는데 말 안에 타고난 풍자 감각이 있더라. 쉬는 시간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도 그분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비전문 배우가 긴장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게 만드는 비결이 뭔가.

고봉수_ 내가 웃음이 많다. 현장에서 깔깔거리며 웃는데 그게 배우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다.

고성완_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냥 여기 잠깐 앉아 있어봐’ 해놓고는 슬슬 연기를 시키는 식이다. 단편적인 예가 <델타 보이즈>에 출연했던 내 경우인데, 처음엔 그냥 버스에 타는 것만 찍겠다고 했다. 그러다 한 바퀴 돌아달라고 하더라. 돌고 나니 작은 상황을 주면서‘삼촌이라면 어떻게 말할 것 같아?’ 한다. 보통 버스기사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말하다 보니 어느새 연기를 하고 있었다. (웃음)

-롱테이크를 선호하는 것도 배우에게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연기를 끌어내기 위함인가.

고봉수_ 한 프레임 안에 배우들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좋다. 인물이 더 귀여워 보이는 구도라, <튼튼이의 모험> 같은 이 영화의 컨셉에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영화는 애드리브가 많은데 나는 소리가 맞물려도 상관없으니 원하는 말 있으면 최대한 하라고 배우들에게 미리 부탁한다.

-이번 영화는 <델타 보이즈>에 비해 리듬감이 빨라진 것 같다.

고봉수_ 전작에서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두 시간이 웬말이냐! 한 시간 반으로 줄여라”라는 것이다. (웃음) 그땐 그 템포가 맞다고 생각해서 고집한 건데 <튼튼이의 모험>은 좀 다르게, 약간은 상업적인 가능성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전주에서 공개한 <다영씨>와 상업영화로 준비 중인 <봉수만수>(가제)까지 집요하게 코미디 장르를 고집하는 이유는.

고봉수_ 고민해봤는데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려는 게 아닐까. 여러 장르를 시도해봤지만 매번 시나리오 단계부터 막히더라. 내가 손을 대면 스릴러 장르라 할지라도 B급 유머가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 <봉수만수>는 한국형 액션 히어로 영화이고 덱스터에서 제작한다.

-<봉수만수>에도 고성완 배우가 출연하나.

고봉수_ 물론. 삼촌이 <튼튼이의 모험>으로 좀더 유명해져서 앞으로 상업영화를 만들 때도 더 자유롭게 캐스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성완_ 난 죽어도 버스기사로 죽을 거다. 배우는 시간나면 하는 거지 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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