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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 - 고대 비극에 해당하는 현대적 이야기… 가정폭력
김성훈 2018-06-28

제목이 암시하듯이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야기는 판사가 주인공 소년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진술서를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엄마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아빠 앙투안(드니 메노셰)의 양육권 공판에서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줄리앙은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걸 일삼기 때문에 엄마가 아빠와 이혼해 기쁘고, 엄마와 누나를 혼자 둘 수 없어 같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앙투안은 줄리앙을 아내에게 보낼 마음이 없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부모의 양육권 다툼을 통해 가정폭력에서 종종 잊히는 희생자들인 아이들이 어떤 피해를 보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첫 장편 연출작으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에 해당되는 은사자상과 신인감독상에 해당되는 미래의 사자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르그랑 감독과 서면으로 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야기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고대 비극에 해당하는 현대적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찾았다. 오늘날 전세계 수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정폭력이 그런 비극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어떻게 우리 사회 전체에 이런 역병이 만연하는데 그것을 수용하고 개선할 노력을 하지 않는 걸까. 시민으로서, 특히 남자로서 나는 이 문제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첫 영화의 주제로 삼기로 했다. 문제가 너무 절박하기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까지 기다릴 겨를이 없었다.

-이야기는 부부의 양육권 다툼으로 시작된다. 평소 양육권 다툼의 어떤 면모를 인상적으로 바라보았나.

=우리 사회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가부장적 가족 모델을 문제 삼고 싶었다. 법은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시한다고 선언하지만 부모끼리 이간하거나 아이를 인질로 삼는 문제에 대해선 제대로 감지하거나 대처하지 못한다. 아이의 행복이니 부모의 권리니 그럴싸한 명분을 이야기하지만 부모는 권리 이전에 여러 의무가 따르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권리를 앞서지 못하고 있고, 그건 가족이라는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 사회를 압박하고 가부장적인 가족 모델이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줄리앙이 아버지 앙투안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데도 앙투안이 줄리앙과 살기를 고집하는 건 가부장의 권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부류에 속한다. “내 아내, 내 아이”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가족의 우두머리이고, 가족을 통제한다고 믿는 가부장적 모델로 빚어진 사람이다. 아내가 그의 손을 벗어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데 그녀가 이혼을 하고 그와의 관계를 끊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 다시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부모의 끈밖에 없으니 아들을 이용해 감히 그를 떠나려고 하는 여자를 다시 옭아매려고 하는 거다. 그가 아들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자신의 소유인 아내를 되찾아와야 성이 풀릴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위해선 아들에게도 심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토마 지오리아라는 아역배우의 어떤 면모가 줄리앙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던 친구다. 보자마자 그에게서 성숙함과 관찰력 그리고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가 얼마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현장에서 아역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건 쉽지 않은데 어떻게 소통했나.

=아무르 로일러라는 아역배우 전문 코치가 캐스팅 단계부터 프리 프로덕션, 리허설, 촬영까지 줄곧 곁에서 도왔다. 우리는 토마가 두려움보다는 경계심을, 연약함이나 심리적 고통보다는 부모의 만남을 막는 기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앙투안은 누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취재한 남성들을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인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폭력적인 남성들이 재활하기 위해 마련된 미팅에도 참석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폭력을 선택하는 남자들의 공통된 패턴과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미리암과 앙투안의 양육권 다툼을 중계하는 법정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줄리앙이 폭군 같은 앙투안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오는 지를 그려내는 스릴러 같다.

=이 영화가 스릴러 같다면 그건 이런 상황에 처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일상이 스릴러 같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스릴러 장르를 염두에 두고 썼다. 사회적 이슈나 일화에 기반한 드라마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장르의 테두리 안에서 관객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영화의 주제에 더 뜨겁게 빠져들기를 바랐다. 몇몇 여성들은 가히 스릴러라고 할 만한 경험들을 내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처럼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장르적으로 함부로 다루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단순히 스릴러의 틀을 이야기에 씌우기보다는 스릴러가 이야기에서 유기적으로 묻어나올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 속 시간과 영화의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것도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연출이었나.

=‘일상의 스릴러’라는 이름 아래 스릴러 장르를 재탄생시키는 시도를 했다. 관객이 등장인물과 상황에 함께 빠질 수 있도록 ‘리얼타임’으로 서사를 전개시켰다. 음악을 일절 배제하고 실제 상황의 사운드들로만 채웠다. 의미심장한 음악을 동반한 여러 신들과 컷들의 몽타주 대신에 그저 흐르는 시간, 귀를 기울이게 하는 고요함, 묘한 분위기로부터 긴장감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가정폭력의 경우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잘 듣지 않는다. 이야기는 판사가 부모 앞에서 줄리앙의 진술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나. 줄리앙은 가장 어린아이로서 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앙투안이 총을 들고 줄리앙이 사는 집을 찾아가는 영화의 후반부 시퀀스는 마치 호러영화의 한 장면 같더라.

=프랑스에선 사흘에 한명꼴로 영화와 비슷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사망한다. 호러영화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다. 영화의 경로는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 있었다. 법정에서 시작해 호러로 끝나는 것으로. 법정에서 내리는 판결이 가족을 진정한 비극으로 내모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과 미래의 사자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이 수상이 앞으로 영화를 찍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나.

=아직 모르겠다. 아마도 상들이 영화인들의 주목을 좀더 끌어다줄지도 모른다. 나는 연극배우 출신이고 영화에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까닭에 수상 경력이 그나마 내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길일 것 같다.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나 영화감독이 있나.

=앨프리드 히치콕, 클로드 샤브롤, 미하엘 하네케의 열렬한 팬이다. 그들은 정교하고 예민한 프레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관객의 자리가 어디쯤인지도 신경을 쓴다. 그들의 작품 중 하나씩 고르라면 히치콕은 <로프>(1948), 샤브롤은 <도살자>(1969), 하네케는 <피아니스트>(2001)다. 구스 반 산트짐 자무시, 대런 애로노프스키, 자비에 돌란 등도 무척 좋아한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모든 것을 잃기 이전에>라는 30분짜리 프리퀄이 있는데 이 두편을 합하면 그동안의 리서치, 시나리오, 개발, 제작 등 작업에 거의 10년이 들어간 셈이다. 이제는 다른 주제와 장르를 마주하고 싶다. 사실 이미 다른 작품에 손을 댄 상태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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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판씨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