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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이 감독 - 평양국제영화축전에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그날까지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18-08-02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재일교포 박영이 감독

박영이 감독은 요코하마 조선학교 출신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다. 일본 내 혐오 세력이 조선학교 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실화를 담은 <걸치다>(2010)를 비롯해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조선학교 학생들을 밀착 취재한 <하늘색 심포니>(2016) 등 박영이 감독은 일본과 북한을 오가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진귀한 경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DMZ국제다큐영화제, 이주민영화제 등을 찾으며 남북한의 평화를 위한 “무지개다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북한영화 <우리집 이야기>(2016)가 한국 최초로 공개 상영된 것에 깊은 감회를 표했다.

-최근 남북·북미 정세가 급변한 이후 외부의 관심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겠다.

=BIFAN에서 개막하기 약 10일 전쯤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남북 영화’의 기조 강연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7월 13일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한국의 많은 매체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특히 단순 언론 보도뿐 아니라 남북 합작영화에 관한 의지가 뜨거운 것 같다. 8월에 북에 들어가서 이런 이야기들을 전달하려고 한다. 해외동포사업국을 비롯해 평양영화축전을 담당하는 외무성의 조선영화수출입상사에도 건의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의 반응은 어떤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제의가 있었다.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으려는 입장인데, 사전 협의 과정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더니 방송국쪽에서 결국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BIFAN에서 공개된 북한영화들은 비교적 최신 경향도 담고 있는데, 직접 평가를 해준다면.

=우선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는 영국, 벨기에와 합작한 영화라 사상적으로도 열려 있고 대중적인 재미가 있다. <우리집 이야기>는 2016년에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영화인데 촬영 기술의 진일보를 감지할 수 있다. 작품 전반에서 지방의 생활양식이라든지 일반인들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북한의 영화 관계자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확실히 앞으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자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집 이야기>의 공동연출자인 리윤호 감독을 2014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한번 만난 적 있는데, 당시 리윤호 감독이 샌드아트를 이용해 영화제 오프닝 세리머니를 연출했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다닌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영화는 익숙한가.

=커뮤니티 내에 북한영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돼 학생 시절부터 많이 보게 된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북한영화를 보는 이들이 있는데, 유명 DVD숍에 가면 <월미도>(1982), <불가사리>(1985) 같은 ‘조선영화’들이 있다. 물론 최신 영화는 아직 없고, 주로 옛날 작품들이다.

-<걸치다> 등 일본 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다룬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다. 그러다 <하늘색 심포니>에서는 북한으로 건너갔는데.

=이바라키현의 조선학교 학생들이 2주간 졸업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교장 선생님과 의논 후 북한에 우리의 촬영 의사를 전했다. 다행히 성사가 되어서 이바라키조선초중급고급학교 재학생 11명의 수학여행에 동행했다.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초청된 후 반응이 좋았지만 당시 남북 관계가 매우 첨예했던 터라 배급 제의가 일체 없었다.

-오히려 요즘 들어 다시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 아닌가.

=아직 정확하게 밝힐 순 없지만 한국의 배급사와 올해 개봉을 논의 중이다.

-지금까지 북에는 몇번 다녀왔나. 북한영화계와 어느 정도 교류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하다.

=총 18번 다녀왔고, 이제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2008년 이후 매해 방문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1년에 두번씩 다녀올 때도 있다. 일본 조선대학교 재학 시절인 96년 9월부터 97년 2월까지 5개월간 북에 머물렀던 것이 단일 방문으로는 가장 오랫동안 체류한 경험이다. 그때 북한에 건립된 재일교포 기숙사를 이용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고 공장에 나가서 노동도 해봤다.

-평양의 영화관은 일반 시민들에게 열려 있나.

=아직은 자유롭게 티켓을 사서 들어갈 수는 없고, 단체로 모여서 미리 관람 신청을 해야 한다. 2천석 규모의 대극장이 있는 평양국제영화관, 새로 건립된 대동문영화관, 개선문 옆에 있는 개선영화관 등이 있다.

-남북 영화교류의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보탠다면.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 당시에도 영화 합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잘 안 됐다고 알고 있다. 70년 분단 기간 동안, 사고방식은 물론 영화 사업에 관한 인식 자체도 격차가 많이 벌어지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규모가 큰 영화로 남북 합작을 해보자는 건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자체보다는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의 인간적인 교류가 먼저다. 작은 작품이라도 상관없으니 남북 모두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찾아야 한다.

-북한영화계는 합작에 관해 아직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보인다.

=합작영화로 수익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남쪽의 삶에 대해 북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다들 알겠지만 한국영화를 몰래 보기도 한다. 정부 단위로 움직일 조짐도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은 영화축전에 가면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화는 상영되어도 한국과 미국 영화는 볼 수가 없다. 일단은 하나씩 뚫고 나가는 시기라고 본다.

-한국영화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북한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다. <강철비>(2017)를 보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남성 캐릭터, 컵라면 하나에 기뻐서 날뛰는 주민의 모습 등으로 북한을 희화화해 한국 관객을 웃게 만든다. 한국이 북한에 시혜를 베푸는 듯한 시선 역시 조금은 불편하다. 지난 정권 10년간 남북 교류가 없었고,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던 이유가 크리라 생각한다.

-남과 북의 영화를 모두 접하는 입장에서 둘의 중요한 차이가 뭐라고 보나.

=한국영화는 표현 하나하나가 세밀하고,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촬영 및 편집 등의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수준 아닌가. 며칠 전에 <마녀>를 봤는데, 신인배우 김다미의 연기와 감독의 액션 연출이 정말 훌륭하더라. 반면 북한영화는 양심과 도덕, 인간의 휴머니티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올해 활동 계획은.

=지금껏 꾸준히 북한으로 건너가 한국이나 일본에서 보도되지 않는 것을 전하기 위해 촬영을 해왔다. 앞으로는 이런 일을 더욱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가깝게는 올가을에 열리는 평양국제영화축전에 한국영화를 출품하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아직 가능성을 타진할 단계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북한에 사무실을 내서 2, 3달간 머무르면서 영화를 찍는 것이다. 대학생과 택시 운전사 등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을 촬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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