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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루이스픽쳐스 대표, "영화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나 더 고민하게 될 듯하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8-08-09

<괴물>(2006), <해무>(2014), <옥자>(2017), 그리고 <인랑>. 제목이 두 글자라는 것 외에, 이들 영화는 모두 과감하고 도전적인 프로덕션을 시도한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루이스픽쳐스의 김태완 대표는 네 작품에 모두 참여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제작한 김태완 대표는 “누군가 시도하지 않은 요소가 하나라도 있는 작품에 확실히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오시이 마모루 원작, 비주얼리스트 김지운 감독이 그려낸 SF의 세계, 배우 강동원정우성의 만남 등 <인랑> 역시 창작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태완 대표는 <인랑>의 흥행 결과가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인랑>이 개봉하고 첫 주말이 지난 월요일, 루이스픽쳐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랑>의 관객수가 예상치를 많이 밑돌았다. 어떻게 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나.

=주위에서도 걱정이 되는지 지금의 결과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던데, 큰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거니까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제작자가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싶다.

-개봉 전 <인랑>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가 있었을 텐데.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내부 의견이 있었는지.

=여름에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무거운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7월 25일 개봉)이나 <신과 함께-인과 연>(8월 1일 개봉)이 밝은 컬러의 영화라면 우리 영화는 그에 비해 무겁고 어둡다. 오히려 그런 지점이 차별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랑>을 기획할 때도 그렇고 늘 새로운 시도에 끌린다. <괴물>과 <옥자> 역시 과감한 시도를 했던 작품인데, 다행히 결과까지 좋았다. <인랑>도 새롭게 시도할 것이 많은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욱 잘하고 싶었다.

-<인랑>의 경우 영화가 공개되고 초반에 특정 영화에 비유되면서 재미없는 영화로 낙인이 찍혔고, 그런 한줄 감상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영화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영화가 소비되고 회자되는 방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을 것 같다.

=재밌는 한줄의 말이 나오면 그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퍼지고, 그 말이 대상을 단정짓게 되는 것 같다. 꼭 <인랑>에 국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이라는 말을 전제로 달고 별점 하나를 주는 댓글도 많고, 영화의 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맹공하는 경우도 봤다. 물론 영화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일례로 사회적인 코멘트를 담은 영화엔 진영 논리가 바로 들어오더라. 앞으로 영화를 기획할 때 무엇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나, 관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더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 <인랑>에선 어떤 매력과 가능성을 보았나.

=기본적으로 원작의 팬이었다. 그다음 김지운 감독이 <인랑>을 만들면 어떨까, 김지운 감독과 <인랑>의 만남이 가져올 시너지에 대한 흥분이 있었다.

-처음부터 <인랑>을 연출할 최적의 감독은 김지운이라고 생각했나.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원작의 판권을 구매하는 과정은 어땠나.

=<인랑>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할 당시 김지운 감독은 미국 LA에서 <라스트 스탠드>(2013)를 작업하고 있었다. <인랑> 얘기를 꺼내니 연출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 덴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인랑>의 판권도 열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앞뒤 볼 것 없이 액셀을 밟았다. 일본은 작품 하나의 권리를 여러 단체나 사람이 나눠서 가지는 경우가 많아서 권리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제작위원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인랑> 역시 대여섯 군데의 개인과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일단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만나서 동의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중에서 <반칙왕>(2000)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그때 판권 구매가 잘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웃음)

-<인랑>의 실사 영화화와 관련해 원작자 및 제작사에서 내건 조건이 있었는지.

=놀랍게도 별로 없었다. 김지운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던 것 같다. 일본 원작의 경우 어떨 땐 숏 바이 숏으로 찍으라는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인랑>의 경우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었다. 진행 상황만 알려달라는 정도의 내용이 담긴 스탠더드한 계약서를 썼다.

-<밀정>(2016)을 투자·배급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인랑>의 투자·배급을 맡았다.

=<밀정>을 하던 당시 김지운 감독이 차기작으로 <인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워너브러더스에서도 알고 있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의 최재원 대표가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 대해선 전적으로 파트너십을 가지고 가고 싶다, <인랑>도 함께하자”고 말해줘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제작 초기 단계에선 미국에서 투자받을 준비도 하고 있었다. <옥자>의 투자사이기도 한 유니온투자파트너스가 “복잡하게 미국에서 투자받지 말고 우리랑 하자”고 해서 프리 프로덕션에 곧장 착수할 수 있었다. 워너브러더스와 유니온투자파트너스 두곳이 메인 투자사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

-얘기를 듣고 보면 어렵지 않게 <인랑>이라는 배를 띄운 것 같다.

=아니, 어려웠다. (웃음) 그전에 여러 배급사의 문을 두드렸고 거절당했다. 긴 과정 끝에 유니온을 만나고 워너를 만났다.

-순제작비가 190억원이다. 애초 책정한 제작비는 얼마였나.

=처음엔 150억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가이드를 가지고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표준근로계약의 틀이 잡혀가면서 제작비가 애초 짰던 예산에서 1/3쯤 늘어났다.

-<인랑> 이전에 제작한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다.

=<옥자>의 개발 초기에 제작자로 합류했다. 미국에서 두달가량 지내면서 <옥자>의 투자 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다. 미국의 많은 스튜디오, 인디 파이낸싱 회사들을 만났다. 미국에서 투자받으려면 경험 있는 공동제작사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만난 곳이 플랜B였다. 이후 넷플릭스와 접촉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넷플릭스가 굉장히 빠른 시일에 투자·배급을 결정하면서 이후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빨라졌다. 봉준호 감독과는 <괴물> 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시네마서비스 해외영업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최용배 청어람 대표님이 <괴물>이란 작품을 함께하자며 나를 스카우트했다. 워낙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아서 청어람으로 이직해 <괴물>의 제작파트에 합류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의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다.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프로덕션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훌륭했다. 영화에 필요한 제작 리소스를 국경 없이 어디서든 가져와서 쓴다는 도전적인 접근법도 매력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CG)은 미국, 특수소품은 호주, 투자는 일본 등 가능한 기술력과 스탭을 해외 각지에서 끌어오는 게 나의 역할이었는데 그때 성과가 괜찮아서였는지 이후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신뢰가 쌓인 것 같다. 이후 바른손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다가 2010년에 루이스픽쳐스를 설립했다. 공동제작으로 참여한 <해무>가 루이스픽쳐스의 첫 작품이고, <옥자>가 두 번째 작품이다.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를 제작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하루하루가 기억에 남고 모든 게 배울 점이었다. 말하자면 <옥자>를 통해 순수하게 미국영화를 경험한 건데, 한국영화를 할 때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미국영화와 한국영화가 요구하는 프로듀서의 역할도 상당히 달랐다. 미국에선 프로듀서에게 훨씬 더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를 요구하더라. 또 미국영화 현장은 철저히 분업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서로의 영역을 결코 침범하지 않는다. 한국 분량을 촬영할 때 한국 스탭들이 서로 도와가며 문제를 혁파해나가는 과정을 미국 스탭들이 보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이런 협업은 처음 보았다고. (웃음) 무엇보다 <옥자>를 통해 미국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것 같다. 미국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한 벽이 낮아진 느낌이랄까. 실제로 미국에서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온다. 한국 감독에게 관심이 있는데 소개 좀 해달라, 한국 감독과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한국영화에서 봤던 톤과 질감이 좋았다면서 구체적인 아이디어나 요구사항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건네는 곳도 있다. 일주일에 미국영화 시나리오 두편 정도는 보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현재 진행 중인 작품도 있고.

-정병길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애프터번>이 그것인가.

=그렇다. 최근에 시나리오 완고가 나왔다. 출연을 확정한 제라드 버틀러가 현재 시나리오를 읽고 있다.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곧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할 계획이다. 태양 폭발이 일어나 폐허가 된 지구에서 보물을 찾아다니는 보물 사냥꾼의 이야기이고, 액션 어드벤처에 코미디가 더해진 밝은 톤의 영화가 될 것 같다.

-반대로 한국 영화인들이 해외 제작 시스템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가끔 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이야기가 있고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영화가 의미 있게 나온다면, 어느 나라에서 만들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옥자>를 굳이 미국영화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마켓사이즈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 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는 거다.

-봉준호와 김지운이라는 창의적인 감독들과 연이어 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가 (감독의) 말을 잘 듣나? (웃음) 글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과는 <괴물> 때 생긴 신뢰감을 바탕으로 길다면 긴 시간 관계를 유지하다가 <옥자>란 작품으로 처음 제작자와 감독으로 만났다. 반면 김지운 감독과는 순전히 <인랑>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난 케이스다. 내가 먼저 <인랑>을 제안했고, 그 타이밍에 김지운 감독에게도 <인랑>이 어떤 울림을 안겨줬던 것 같다.

-어떤 영화를 만드는, 어떤 제작자가 되고 싶나.

=특별히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정해놓고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다만 전세계 수많은 제작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J. J. 에이브럼스가 만든 배드 로봇이란 회사가 참 마음이 가더라. (웃음) 배드 로봇처럼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최근에 안 사실인데, 멜 깁슨 주연의 <사랑 이야기>(1992)나 해리슨 포드 주연의 <헨리의 이야기>(1991)를 예전에 굉장히 재밌게 봤고 또 여러 번 봤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J. J. 에이브럼스가 각본을 쓴 영화더라. <대통령의 연인>(1995)도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그 영화의 각본을 에런 소킨이 썼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과거에 그 영화들을 괜히 좋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내 영어 이름이자 그 이름에서 딴 제작사 이름 ‘루이스’는 <대통령의 연인>에서 마이클 J. 폭스가 맡은 보좌관 역에서 따온 이름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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