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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 전여빈 - 몸으로 마음 표현하기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8-08-28

아직 전여빈을 수식할 단어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라면 다르다. <죄 많은 소녀>의 ‘영희’는 전여빈을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들, 새로운 배우의 출연을 확정짓는 하나의 기폭제다. 친구의 죽음 이후 가해자로 몰린 영희가 몸소 겪게 되는 살풍경한 사회. 독하게 그 아픔에 맞서는 영희의 심리가 세포까지 에너지로 꽉 찬 전여빈의 연기로 완성된다.

-여고생들의 심리를 그린 ‘여학교 버전 <파수꾼>’이라는 이야기로 수식되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영희 역을 제안받았나.

=처음엔 전 배역을 다 봤다. 영희, 한솔이, 경민이 누구든 다 될 수 있었다. 영희 역을 리딩해보자고 한 건 2차 때부터였다. 그때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오디션이자 미팅장인데, 감독님이 먼저 왜 이이야기를 시작했는지 털어놓으시더라. 그러다보니 나도 내 마음에 숨겨놓았던 감정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털어놓게 됐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지문을 한번 읽어봐달라고 하셨다.

-영희는 세상과 맞서고 뭇매를 맞는 가여운 아이다. 죽은 경민의 엄마(서영화), 담임선생님(서현우)을 비롯한 학교 전체, 형사(유재명)와 대결구도에 선 영희를 통해서 10대 청소년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과오가 드러나게 된다.

=어른들은 자기변호로 바쁘고, 친구들도 이해를 안해주고. 영희를 둘러싼 것들이 모두 가학적인 상황이다. 영희는 때로 자기방어를 하기도 하고,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기술적인 것보다 자연스럽게, 영희가 만난 난제들을 여과 없이 느끼려고 했다. 선배님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선배님도 힘들 텐데, 특히 서영화 선배님이 따뜻하게 늘 괜찮은지 묻고 배려해주셨다.

-교복을 입고,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학생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해야 했다.

=모든 오디션에 패기를 가지고 보고 싶지만, <죄 많은 소녀> 오디션을 볼 때가 20대 후반이었다. (웃음) 오디션을 갔는데 앞의 두분이 교복을 입고 와서 더 위축되더라. 내가 고등학생처럼은 안 보여도 지문이 가진 마음은 잘 표현해보자 다짐했다.

-영희는 친구 경민(전소니)의 죽음을 부추긴 가해자로 내몰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감정과 행동의 세기가 큰 역할이었다. 김의석 감독이 <곡성>(2016)의 조연출 출신이라는 점이 그 극한을 끌어내기까지의 촬영현장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압력을 가하는 기분은 못 느꼈다. (웃음) 감독님이 처음부터 “우리 영화는 예산이 많지 않아서 테이크를 많이 못 간다”며 완전하게 집중해주길 원하셨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단 한번 최고의 기량을 끌어내는 것 같은 상태 말이다. 그러려면 영희는 매 순간 힘든 상태, 항상 감정적 포화상태가 되어 있어야 했다. 감정에 빠져 있으면, 또 “연기는 안 했으면 한다”고 지적하시고. 어떤 때는 정말 야속하고 얄밉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의 목표는 결국 하나였다. 거짓 연기를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응축해나갔다. 촬영날마다 울었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계속 느끼니 울음이 나오더라. 한겨울에 촬영했는데 감정에 빠져서 오히려 추위가 안 느껴질 정도였다.

-강렬했던 장면이 여럿 기억나는데, 물리적인 표현도 어려운 과제였을 것 같다. 특히 영희의 자살 시도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장면은 몸을 사용해야 해서 사전에 두달 정도 몸의 움직임을 훈련했다. <부산행>(2016)의 좀비연기를 지도하셨던 전영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는데, 과정들을 무용의 한 시퀀스처럼 연결해 한 테이크로 찍었다. 무릎에 멍이 다 나고, 그날 근육통도 오더라.

-최근 JTBC <#방구석1열>에서 단편 <최고의 감독>(2015)을 함께 한 문소리 감독이 선배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배우 전여빈을 ‘기대주’로 추천하기도 했다. 개봉에 더 힘을 받을 것 같다.

=소리 선배님은 내가 대사 없는 연기를 할 때부터 나를 지켜봐주신 분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을 때 축하 전화를 해주셨는데, 잘했다며 우시더라. 정말 든든하다. <죄 많은 소녀>는 이제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순간에 만난 작품이고, 너무 감사하게도 지난 1년간은 좋은 일들도 많았고, 이제 이 일을 계속할 자신감도 생겼다. 더 열심히 연기하고 싶다. 독립영화 개봉하면서 관객 한분 한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늘 체감한다. 어렵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많이 공감해주시고 좋아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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