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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댄 존스 음악감독·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음악이 캐릭터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김현수 사진 박종덕 2018-09-13

음악감독 댄 존스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터 유(왼쪽부터).

<체실 비치에서>의 댄 존스 음악감독과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함께 내한했다.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며 사운드 퍼포먼스 실험도 하는 아티스트 댄 존스와 <BBC>가 선정한 ‘신세대 아티스트’이자,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의 상주예술가이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의 만남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음악을 선보여줄 조합이다. <체실 비치에서>는 원작자인 이언 매큐언이 직접 각본을 써 화제가 된 작품으로, 결혼 첫날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남편 에드워드(빌리 하울) 사이에 일어난 씻을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다룬다. 두 인물의 감정을 실어나르는 영화음악을 책임진 댄 존스와 에스더 유를 만났다.

-댄 존스 감독은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토크 행사로 무대가 아닌 극장에서 직접 관객과 이야기를 나눠본 소감이 어떤가.

=댄 존스_ 한국은 여전히 극장을 직접 찾는 문화가 살아 있는 나라라는 걸 느꼈다. 다른 문화권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가져서는 안 되지만, 영국에서 만든 굉장히 영국적인 영화가 한국에서도 똑같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걸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에스더 유_ 나는 지금껏 3장의 클래식 음반을 냈는데 영화음악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영국과 미국 개봉 당시에도 초대받아 홍보 활동을 다녔는데 이번 방문으로 한국 관객과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

-<체실 비치에서>의 음악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댄 존스_ 연출을 맡은 도미닉 쿡 감독과는 셰익스피어 시대극을 바탕으로 만든 TV드라마 <할로 크라운> 시리즈를 작업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와 함께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역사극의 음악을 만들다가 갑자기 아주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연달아 함께한 셈이다.

에스더 유_ 뉴욕에서 공연을 하던 때였다. 처음 제안을 해왔을 때는 바이올린 연주곡을 3곡 정도만 녹음하면 된다고 해서 바로 책을 사서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몇곡 더 해줄 수 있느냐는 메일이 와 있는 거다. 이미 녹음 날짜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결과적으로 23곡을 녹음하게 됐다. (웃음)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내가 연주한 곡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또 영화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의 녹음방식이 일반적인 클래식 음반 작업과는 달랐을 것 같다.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감정 연기하듯 녹음했을 것 같은데.

에스더 유_ 스튜디오에 가니 화면을 보면서 녹음할 수 있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일반적인 클래식을 녹음할 때는 내가 준비한 대로 가서 지휘자와 프로듀서와 맞춰 가며 연주하면 되는데 영화음악 작업은 내가 아무리 준비해가도 스튜디오에서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들어가야 했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곡을 준비해갔는데, 영화 속 장면과 비교해보니 너무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감독과 대화하면서 어떤 게 가장 어울리는지 발견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나로서는 너무 재미있는 작업방식이었다.

-극중 바이올리니스트인 플로렌스가 직접 연주하는 곡들과 그녀의 테마곡은 플로렌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플로렌스의 테마는 어떤 컨셉에서 만들어졌나.

댄 존스_ 극중 플로렌스는 현악 4중주단 멤버다. 그녀가 연주하는 콰르텟 곡들이 그 자체로 영화의 배경음악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하이든과 슈베르트를 골랐고 종종 모차르트 곡도 등장한다. 이 음악들은 플로렌스의 위대한 콰르텟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었다. 기본적으로 플로렌스의 테마곡은 라흐마니노프 심포니의 한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서 변형한 전자음악을 배경에 깔고 그 위에 에스더 유의 연주가 덧입혀졌다. 플로렌스 내면의 고통스러운 비명이나 외침을 라흐마니노프로부터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플로렌스가 과거에 묻어뒀던 기억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길 원했다.

-작가 이언 매큐언이 직접 각본을 쓰면서 영화음악의 방향에 대해 관여한 부분은 없었나.

댄 존스_ 이미 각본 단계에서 중요한 음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말하자면 영화음악은 플로렌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요소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한 음악 중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방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35번(Mozart, Symphony No.35 in D Major, K.385) 제1악장을 듣는 장면이었다. 평소 로큰롤을 좋아하던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의 음악적 취향을 처음으로 이해하는 장면이기에 각본상에 이미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영화 첫 장면의 음악도 지정해줬다. 이 커플이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 즉 서로 다른 관점으로 코드 진행 변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의 배경 음악은 블루스 장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반영했다. 그 장면의 극장 사운드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다. 하이파이에서 스테레오로, 그다음으로 5.1채널로 이동하게끔 표현해서 관객이 마치 장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참고로 모든 클래식은 5.1채널 사운드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극중 바이올린 연주곡이 플로렌스의 테마라면 당시 대중음악 마니아인 에드워드의 성격이나 심경을 대변하는 테마는 주로 삽입곡으로 표현된다. 극중 등장하는 티렉스의 <20th century boy>나 지미 리긴스의 <The Thrill is gone> 같은 곡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댄 존스_ 에드워드의 테마 역시 이언 매큐언이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디테일한 곡 선정은 나와 감독, 그리고 다른 제작진의 의견도 반영됐다. 모두가 모여 결정했다고 보는 게 맞다. 에드워드가 팝음악을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그가 음악을 대하는 접근 방식이 플로렌스보다 본능적이라는 걸 표현할 수 있었다. 첫 장면에서 두 사람이 코드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도 플로렌스는 학구적인 용어를 써가며 설명하지만 에드워드는 마치 기타를 들고 뜯으면서 코드를 들려주듯 말한다. 이런 세밀한 묘사는 작가의 역량이다.

-극중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에 쉽게 소통할 수 없었다. 이들을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끈이 음악이었지만 아쉽게도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

에스더 유_ 관객은 영화를 통해 바이올린 솔로곡과 실내악, 로큰롤 같은 팝뮤직도 듣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색깔을 지닌 다양한 장르가 존재함에도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라는 두 세상이 항상 똑같은 마음이 아닌 걸 보며 느끼는 바가 컸다. 요즘에는 클래식도 꼭 무대를 고집하기보다 관객과 만나기 위한 다양한 활로를 찾고 있다. 나 역시 콘서트홀을 벗어나 더 많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 이렇게 극장에서 솔로곡을 연주하며 관객과 만나는 행사를 가지는 것도 다양한 변화의 시도 중 하나다.

-댄 존스 음악감독은 영화음악뿐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 전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퍼포먼스 형태의 다양한 실험음악 작업도 하고 있는데 다음 프로젝트는 또 어떤 음악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댄 존스_ 종종 극단과 함께 일을 하는데 가장 최근에 작업했던 사운드 디자인 퍼포먼스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상이군인에 관한 퍼포먼스다. 관객이 병상과 닮은 침대에 누워 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는데 직접 다친 병사와 같은 체험을 하게 해준다. 그 안에서 3D 사운드 기술을 어떻게 구현할지를 연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운드 홀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이다. 참고로 많은 블록버스터영화에서는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보다 작은 아트하우스 계열의 영화에서도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극적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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