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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세계> 안정민 감독 - 여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18-11-29

남자감독이 본인에게 익숙지 않을 ‘소녀의 세계’를 영화로 다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편견 섞인 질문이라 양해를 구한다는 말을 덧붙이자, 가장 많이 듣는 얘기라는 답이 먼저 돌아왔다. “고등학생 때 연극부 반장을 했다. 인근 여고 학생들이 찬조출연을 해주면서 그들과 친해졌는데, 그 학교에 항상 남자 역할만 맡고 주변 친구들에게 한가득 선물을 받는 친구가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보니 신기한 마음에 그들의 세계를 엿보게 됐다.” <소녀의 세계>는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준비하는 고3 선배 하남(권나라)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 선화(노정의)의 성장담이다. 연극을 연출하는 수연(조수향)은 감독 자신이 가장 많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한다.

-2년 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고 들었다.

=선화의 일상 에피소드가 자칫 지루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편집했다. 또 몸매 관리를 위해 선화가 딸기 우유를 먹는 장면이 초반에 등장하는데, 남성감독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 혐오적인 신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뺐다.

-안 그래도 이른바 ‘남자가 만든 백합물’에 존재할 수 있는 불편함을 미리 우려하는 관객이 있다. 이를 위해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내가 여성 동성애를 그린 ‘백합물’이라는 장르에 대해 아예 모른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사랑은 당연히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사실 의도적으로 신경 쓴 것은 현장 분위기였다. 여고가 배경이다 보니 대부분의 배우가 젊은 여성이었다. 스탭들이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는 분위기였고, 배우를 대할 때 각별히 조심하라고 일렀다. 나 역시 화를 내고 싶을 때 강압적인 분위기가 될까봐 의식적으로 참았다.

-선화와 수연, 하남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염두에 둔 설정이 있다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인물들의 감정을 위해 만든 장치도 있을 것 같다.

=캐릭터에 색깔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전체적으로는 화이트, 수연은 레드, 하남은 파란 하늘에 빗대서 블루를, 선화는 노랑을 줬다. 영화를 보면 수연이 입고 있는 조끼나 책상에 싼 비닐도 빨간색인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가 심플하고 담백하지만 캐릭터의 감정이 단순하지는 않다. 이들이 가진 감정의 미묘함은 기본적으로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 결을 만들기 위해 주요 배역에 모두 첫사랑에 대한 장치를 심어뒀다. 가령 선화의 백수 삼촌은 첫사랑을 위해 작곡을 하고, 언니 선주도 아이돌 그룹 아스트로를 짝사랑한다.

-주인공들이 올리는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셰익스피어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의 사후 400주년에 맞춰 <소녀의 세계>를 찍고픈 개인적인 의지가 있었다(<소녀의 세계>는 2016년에 촬영했다.-편집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직접 연출을 하면 아이들이 경직될 수 있겠다는 고민이 있었다. 조수향 배우가 연극부로 캐스팅된 친구들을 미리 만나본 후, 수연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화합해야 한다며 직접 연출이 되어 리허설을 하겠다고 했다. 본인 캐릭터를 연구하기도 바빴을 텐데 정말 고마웠다.

-진행 중인 작품이 있나.

=한국적인 모성애가 없는 엄마가 나오는 스릴러, 여성 문제를 다룬 범죄극을 준비 중이다. 엄마가 모성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는 정말 어려워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면 여성 캐릭터가 거의 주가 되곤 하는데,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입봉이 늦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준비하던 중년 로맨스 영화도 결국 주제가 “여자한테 잘해라”였다. (웃음) 먼 훗날 60~70년대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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