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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 더 벙커> 하정우 - 캐릭터를 상상한다
김성훈 2018-12-11

하정우가 또 갇혔다. 뉴스 스튜디오(<더 테러 라이브>(2013)), 터널(<터널>(2016)) 등 한정된 공간에서 산전수전 두루 겪은 그가 이번에 갇힌 곳은 판문점 지하 벙커다. 그가 연기한 에이햅이 미국 민간군사기업(PMC) 블랙리저드팀을 이끌고 이곳으로 내려간 사연은 무엇일까. 에이햅이 과거 겪은 경험과 그 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그를 이해하는 데 작은 단서가 될지 모른다. 차기작 <클로젯>(감독 김광빈)이 크랭크업한 지난 11월 28일, 촬영을 마치자마자 서울역에 막 도착한 하정우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제작자로서 김병우 감독에게 판문점 지하의 벙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얘기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인데.

=특별히 영감받은 실화가 있는 건 아니다. <더 테러 라이브>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 않았나. 그보다 더 확장된 공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판문점 지하 벙커라면 사건이 우당탕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에이햅은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

=한국에서 군인이었던 그는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미국에 쫓기듯 건너갔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PMC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블랙리저드팀을 이끌면서 과거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변호하고 싶어 한다.

-김병우 감독과 함께 에이햅 캐릭터를 공들여 구축했을 것 같다.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되면서 이야기의 윤곽이 드러났고, 그때 에이햅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어느 도시에 정착했을까, 누구와 어울렸을까, 어떤 언어를 구사했을까 같은 디테일한 설정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 대화의 결과가 시나리오에서 드러나지 않는 에이햅의 전사일 텐데.

=에이햅은 필라델피아 같은 한국 사람이 없는 도시로 갔을 것이다. 그곳의 흑인 동네에서 마트 경비 일을 하며 먹고살아야 했고, 우연한 기회에 PMC 구직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PMC 안에서 흑인, 히스패닉계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깨너머로 그들이 구사한 흑인 영어를 익혔고, 그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에이햅을 포함한 용병들은 PMC와 단기계약을 맺었다. 위험천만한 일을 수행하는 곳이라 장기계약을 맺었을 것 같진 않다. 그런 곳에서 에이햅은 누구보다 능숙한 일처리와 생존능력을 발휘해 팀장 자리까지 올랐을 것 같다.

-대사의 80% 이상이 영어인데.

=흑인들이 구사하는 리드미컬한 영어로 컨셉을 잡고 준비했다. 김병우 감독은 컷을 잘게 나누기보다 한 챕터를 한꺼번에 찍는 방식을 선호해 짧게는 5분, 길게는 12분까지 카메라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촬영 시작 전에 모든 대사를 숙지해야 했다. 영어 대사가 대부분이라 보통 영화보다 대사를 익히는 데 4, 5배 넘게 시간이 걸렸다. 처음 한달은 다이얼로그 코치와 함께 하와이로 건너가 대사를 연습했다. 쉬는 시간에는 흑인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았다. 크랭크인 한달 전에 한국에 들어와 김병우 감독과 대사를 연습했다.

-<PMC: 더 벙커>를 포함해 오늘 촬영을 마친 <클로젯>은 제작자로서 참여한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자의 시작은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 2016)였다. 그간 함께 작업했던 감독, 제작자와 친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제작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그들과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개발하려고 한다. 배우로서 연기만 했던 과거와의 차이는 생산자로서 유통업자와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지금처럼 기획, 제작하려고 한다.

-얼마 전 에세이집 <걷는 사람, 하정우>가 출간됐는데.

=첫 책 <하정우, 느낌 있다>를 쓰면서 출판사 문학동네와 인연을 맺었다. 5년마다 한번씩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남자로서 할 얘기가 있다면 영화가 아니라도 대중과 소통하면 재미있고 의미 있겠다 싶어 책을 냈다. 이번 책은 휴식기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이다. 공들여 일을 하듯 휴식도 그렇게 해야 한다. 집에서 그냥 누워서 쉬는 건 방치고, 방치는 휴식이 아니다. 휴식을 어떻게 하면 잘 취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 내게 휴식은 걷는 거다.

-평소 한쪽 손목에 피트비트를 찬 채 누구보다 열심히 걷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에 얼마나 걷나.

=매일 2만, 3만보 걷는다. 촬영이 있는 날도, 집에 있을 때도 걷는다. 대사를 숙지할 때도 걷는다. 주로 한강공원에서 걷는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냐고?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돌돌 가리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 혹여 누군가가 알아보면 반갑게 인사하면 된다. 요즘은 미세먼지가 많아서 걷는 사람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웃픈’ 현실이다.

-차기작은 뭔가.

=김용화 감독이 제작하고 이해준, 김병서 감독이 공동 연출하는 재난영화 <백두산>에 이병헌, 마동석과 함께 출연한다. 내년 1월 말 촬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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