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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윤미아 감독 - 색을 잃은 세상에서 꽃을 심는다
김송희 사진 백종헌 2019-03-21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본 8개현을 강타한 날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2만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재해 직후 피난민 수는 47만명, 그중 8만명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땅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 재일교포 3세 윤미아 감독의 <봄은 온다>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6년이 지난 2017년부터 10개월간 재해 지역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의 고결함과 강인함에 대해 배웠다”고 말하는 윤미아 감독을 만났다.

-재일교포 3세인데 국적이 한국이라고 들었다. 한국은 얼마 만에 방문한 것인가.

=이누이 히로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예: 최초의 조선통신사>(2013)의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울산은 여러 번 오갔다. 당시 조선통신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울산 MBC와 협업했기에 서울보다 울산을 자주 갔다. (웃음) 한국은 내게 짝사랑하는 나라같다. 어머니는 항상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본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일본에서 재일교포는 한국인으로 인식되지만, 3세들은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일본 매스컴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한국 국적을 선택했고,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만 한국어가 서툴어 부끄럽다.

-<NHK>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일하다 직접 연출을 한 첫 영화가 <봄은 온다>다.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첫 연출작을 만들게 된 이유가 있나.

=<꽁치와 카타르-오나가와를 잇는 사람들>(2016)에서 제작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많은 주민들을 만났다. 미야기현은 재난 이후 복구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마을로 알려져 있다. 재난 후 3년이 지났을 때 마을로 들어가 작업하면서 ‘이 작품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재해 이후의 삶을 다시 살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 모습들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흘렀기에 그 시기에만 담을 수 있는 그곳 마을의 풍경들을 영상으로 담고 싶었다.

-쓰나미로 가족을 잃고, 집과 직장을 잃은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작업이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한 사람 중 대부분은 쓰나미로 가족을 잃었다. 엔도 부부는 아이 셋을 모두 잃었고, 아내와 며느리, 손주를 잃은 분도 있다. 영화 시작 전 출연자들이 조금이라도 꺼리는 촬영이나 편집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출연자들이 촬영에 응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마을에 갔을 때 많은 분들이 웃으며 맞아주고 인터뷰에 응했다. 지역 재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더 조심히 다가섰다.

-어떤 기준으로 출연자들을 정했나.

=가능한 한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업종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출연자를 섭외해 만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진 당시 과거의 일을 회상했는데 문득 ‘그렇다면 지금 이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다. 영화에서는 앞으로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무언가 하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주로 만났다.

-출연자가 우는 장면이 없더라. 그보다는 피해 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웃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의도로 제작된 영화라 웃는 모습만 편집한 것은 아니다. 막상 현장에 가니 다들 밝게 웃으며 환영해줬다. 물론 지진 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려 노력한 것이 이들만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가족, 집, 재산 등 모든 걸 잃은 분들의 마음이 어떨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이 재난을 겪은 피난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웃음 속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인물이 엔도 부부다. 쓰나미로 아이 셋을 잃은 부부가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노력한다. 이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보여준 이유가 있나.

=남편인 엔도 신이치씨와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다. 모두가 힘들지만 이 부부는 아이를 셋이나 잃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앞장서서 자신의 아픔을 다 드러내고 목소리를 낸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라면서 활동하는 모습에서 반대로 용기를 얻었다. 촬영 초기인 2016년 8월에 열린 촛불추모회에서 두분에게 현재 마음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에 “아이들을 못 본 지 벌써 2천일이 지났네요”라고 대답하셨다. 두분에게 따로따로 질문했는데 대답이 똑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기준이 둘에게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한 날들인 셈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남편 신이치씨가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영화로 남았네요”라고 말해줘서 큰 위안이 됐다. 어딘가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의식해서 이 영화에 아이들의 장면이 많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100명을 인터뷰했는데, 덜어내야 해서 아쉬웠던 이야기도 많았겠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 꽃집 사장님의 아버지 이야기를 담지 못해서 아쉽다. 꽃집을 하는 사토 노리아키씨는 재해 후 다시 꽃집을 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이분들도 집이 무너져서 피난처인 간요호텔에서 반년 정도 피난 생활을 했는데, 하던 일이 꽃집이다 보니 호텔 화단에 꽃을 심거나 정원 가꾸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다. 당시에는 쓰나미가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뒤라 세상에 ‘색’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꽃이 피니까 처음으로 세상에 색깔이 돌아온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흐름과 맞지 않아서 뺀 장면인데 미용사인 오노데라 교코씨와 주류점을 하는 사토 노리코씨가 새치 염색을 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사토씨는 가게 건물과 자택이 쓰나미에 휩쓸렸고, 가게에 있던 재고까지 다 빚으로 떠안았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친구인 오노데라씨가 “앞으로 10년은 더 일하겠네. 어휴, 이젠 더 못하겠어”라고 말하자 “괜찮아! 10년도 하루하루의 연속이나 다름없잖아!”라고 단호히 말하더라. 역경에 우아하고 씩씩하게 맞서는 모습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출연자들이 웃으며 “뒤가 아닌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감독으로서도 출연자들에게 감동받은 부분이다. 자연재해는 누구를 탓하기 어렵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부나 도쿄전력을 비판할 수도 있다.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것은 해소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출연자들은 그저 현재를 이겨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더라. 인간에 대한 고결함, 존경심이 느껴졌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 관객 역시 가슴 아프게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도 재해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들이 많았다. <봄은 온다>는 밝고 희망적인 영화다. 출연자들이 자기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본영화다’, ‘재해영화다’ 이렇게 접근하기 보다는 살면서 정말 힘들 때 보면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화로 봐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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