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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서울환경영화제 찾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 꿈의 공간에서 나와 현실 사회를 그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9-06-06

지난 5월 23일부터 5일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과 함께 16회 서울환경영화제 국제경쟁 심사위원으로 함께하는 행운을 가졌다. 경쟁작 상영 틈틈이, 마스터클래스 참석, 인터뷰 등 서울에서 오기가미 감독의 시간은 <카모메 식당>(2004)이나 <안경>(2007)의 ‘슬로 슬로’와 달리 연일 빡빡해 보였다. 하지만 휴식 중 가진 짧은 대화의 시간이면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방금 본 영화 이야기부터 일전의 제주도 가족 여행기,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까지를 눈을 반짝이며 건네고, 또 도쿄에서 쌍둥이 두딸과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하는 일상도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카모메 식당>에서처럼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안경>에서처럼 랍스터를 배터지게 먹어보지 못했고(비싸서!),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의 중요한 모티브인 뜨개질도 못한다는 ‘작은 폭로’도 아끼지 않은 오기가미 감독. “한국에 큰 경사(<기생충>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가 나서 기분 좋겠다”며 “지난해 <어느 가족>의 황금종려상 수상이 일본영화계에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한국 극장가에도 좋은 결과가 더해지길 바란다”는 축하 멘트도 잊지 않았다.

-서울환경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좋은 영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특히 젊은 영화인들의 영화를 접하면서, 나도 그 작품들을 통해 자극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충분히 젊은 영화인이 아닌가. (웃음)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최근 들어 심사위원 제안이 꽤 들어오고 있다.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고, 더이상 젊고 신선한 감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걸 피부로 느낀다. (웃음) 그렇다고 나이 먹는 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대가 더 늘어나고 있다. 미용실 가면 요즘은 항상 새치 염색을 권하는데 거절한다. 백발이 되는 게 재밌고, 또 이러다 핑크로 염색 한번 해봐야지, 그런 생각도 한다.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10편을 모두 봤다. 한 작품 끝나고 쉬는 시간에 매번 허리를 두드려야 할 정도로 꼼짝없이 극장에 갇혀 있는데…. (웃음) 이번 경쟁작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이렇게 많은 다큐멘터리영화를 하루에 3~4편씩 보긴 처음이다. (웃음)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보다 보니 어떤 영화가 나를 매료시키는지 냉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환경영화제라는 명분에 걸맞은 작품들을 다루지만 영화 자체로 파워가 느껴지는 힘 있는 영화들이 많았다.

-아직 심사 전이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작품을 살짝 말해준다면.

=그건 심사가 이루어지는 날 우리 다시 치열하게 말해보자. (웃음) 내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라든지, 낯선 풍경, 모르는 상황을 다룬 작품들은 특별히 더 다가오더라. 나도 한명의 인간으로서, 인간이 환경에 참 많은 죄를 짓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5월 29일 폐막식에서, 국제경쟁부문 대상에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신시아 웨이드, 사샤 프리들랜더 감독의 <진흙>이 선정됐다. 가스 채굴회사인 라핀도에 의해 진흙 쓰나미 환경 재해를 겪게 되고,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거대 기업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을 그렸다.-편집자)

-심사위원 외에 마스터클래스 섹션에도 초청됐다.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3)부터 대표작 <카모메 식당>, 힐링영화의 정수라 할 <안경>, 그리고 최근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까지,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기회다.

=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다고 하니 나도 내 작품이 어떤 부분에서 환경영화제와 맞닿아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더라. 내 작품 중에서는 <안경>이 영화제와 가장 가까운 방향성을 가진 작품이 아닐까. 자연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영화제 작품들을 보다보니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 세계에 대해 의식을 크게 하지 않고, 그저 단순히, 천천히, 느긋하게 지내는 데에만 그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쟁작 <섬과 지리학자>(감독 크리스틴 부테이예, 2018)에서 이와시마라는 작은 섬에 사는 한 주민이 한 말이 특히 공감이 갔다.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하고, 소비량이 커지다보니 유전자 변형을 하면서까지 돼지를 살찌우고, 그런 변형이 다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인간들이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고 살자는 말을 한다. 대량으로 가축을 키우지 않고, 정직하게 돼지를 키우는 그분의 모습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린코의 아픔을 그린 최근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서 감독님 영화에 변화가 컸다. 전작들의 주인공이 사회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대안’을 찾았다면, 이젠 사회의 소수자들이 가진 고충을 돌아본다는 지점에서 사회를 향한 애착의 정도도 달라져 보인다.

=아마도 가장 큰 변화의 이유는, 내 인생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다준 출산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힐링영화를 하지 않는 게 힐링, 이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할 정도로 힐링영화의 대표 감독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카모메 식당>을 만들고 나서 10년 넘게 작품을 해왔는데도, 항상 어딜 가나 “<카모메 식당> 감독님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평생 ‘<카모메 식당> 감독’으로만 남겠더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기 작품이 있다는 건 감독으로서 행운이지만,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것도 창작자의 욕심이다.

-헬싱키(<카모메 식당>, 가고시마의 섬(<안경>)같이 공간이 주는 감흥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서술한 전작과 달리 이 작품은 스토리가 먼저 다가온다.

=특별히 의식하고 만든 건 아닌데, 전작들은 다들 가보고 싶은 장소이자 그 장소에 대한 판타지적인 것들이 있었다. 사실 그런 꿈의 파라다이스, 판타지 같은 공간은 어딜 가도 없지 않나. 최근작은 판타지를 걷어내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신문기사도 전에 없이 더 유심히 보게 되고, 사회적인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이제는 장소보다는 인간관계를 진하게 그려내고 싶다.

-차기작도 그런 방향성 안에서 작업하고 있나.

=사회의 양극화, 빈곤에 대한 것을 소재로 기획 중인 작품이 있다. 아버지와 소원했던 주인공이 고독사한 아버지의 유골을 받게 되고, 납골당에 모시려 하는데 그 비용이 없다. 마냥 어둡지는 않고 간간이 유머도 있다. 이 작품 진행 중에 또 한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포털 검색창에 남편이 ‘아내’로 검색하면 ‘선물 뭘 주면 좋아하나’, ‘기뻐하는 선물’, 아내가 ‘남편’으로 검색하면 ‘죽어버려라’, ‘죽이고 싶다’의 결과가 많이 나온다는 데서 착안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의 주인공 린코를 통해 성소수자 문제를 대중영화에 접목한 점도 이슈가 되었다.

=일본 대중영화에서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영화는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접한 바로는,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영화가 나오고 나서 TV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 트랜스젠더가 나오기도 하고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내 영화가 그런 역할을 작게나마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낯선 소재로 인해 투자 단계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영화를 만들 때 저항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관객이 많이 들지 않더라. 영화제 때 관객도 많고 호응도 좋고 평론의 호평도 컸지만, 개봉 관객을 모객하는 건 다른 일이더라. 아직 이런 테마를 일본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걸 느꼈다.

-쟈니스의 이쿠타 도마가 트랜스젠더로 나오는데, 린코의 아픔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 미이케 다카시의 <두더지의 노래> 시리즈 속, 강렬한 병맛 캐릭터를 잊게 만드는 변화였다. 그런 변화에 열려 있었나.

=이쿠타 도마는 정말 훌륭하고, 또 캐스팅도 잘 진행된 경우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점점 더 캐스팅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투자하는 쪽에서 이 사람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의견 조율이 안 되면 나는 그냥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완고한 성격이라 화를 잘 내는 편이고, 나이 먹으면서 더 완고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전에 잘 안 돼 결국 프로젝트를 접은 작품이 있는데, 그것도 캐스팅에 대한 의견이 안 맞아서였다. 그런 고집이 스스로 내 목을 조르는 거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송강호 배우 같은 인물을 그렸는데, 그런 배우를 찾지 못했다. 송강호 배우가 있는 한국영화계가 부럽다. (웃음)

-캐스팅 제안을 해볼 수도 있지 않나. (웃음)

=지금 쓴 각본은 다 일어라서. (웃음)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최근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스톱애니메이션인 <리락쿠마와 가오루씨>의 시나리오를 썼다(연출은 고바야시 마사히토가 했다.-편집자).

=리락쿠마가 워낙 인기 있는 캐릭터라 절대 망치면 안 된다는 마음에 처음엔 걱정이 컸다. ‘우리 귀여운 리락쿠마를, 오기가미 세계에서 건들지 말라!’는 격한 반대도 있었다. 처음에는 블랙유머에 가깝게 썼다가 고친 것도, 캐릭터 회사 사람들이 ‘리락쿠마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그 정서를 훼손하면 안 된다’고 간곡하게 부탁해서였다. (웃음)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작업했는데, 굉장히 재밌는 작업이었고. 애니메이션으로 잘 만들어줘서 사랑스러운 작품이 된 것 같다.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작품의 작업에 대한 견해도 궁금하다.

=제일 좋은 점은 넷플릭스 작품은 예산이 확실히 확보된다는 것, 그리고 개런티가 보장된다는 거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확산은 결국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인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흐름을 타야 할 것 같고, 일정 부분 따라가고 있다. 어느 쪽을 고수한다거나, 한쪽은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꾸준히 작업하고 싶다.

-직장 생활을 하는 싱글여성 가오루의 일, 나이, 결혼 등의 고민이 매화 생생하게 피부로 와닿게 그려진다. 에피소드마다 꼭 먹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먹는 걸 좋아하는 가오루씨에게는 감독님 본인의 경험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 (웃음)

=프로듀서가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는 리락쿠마가 소리는 내지만 인간의 말은 안 하는 걸로, 또 하나는 원작에 없는 가오루라는 여성을 출연시킬 것. 그외에는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했다. 가오루씨 캐릭터에 여성으로서 내가 경험하거나 느낀 걸 많이 투영했다.

-<카모메 식당>을 비롯한 전작의 여성들 역시 그런 유추를 하게 된다.

=내가 여성이니 여성 캐릭터를 묘사할 때는 항상 나와 비교해서 쓰게 된다. 나라면 할까, 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스스로 묻게 되고, 그걸 표현한다. 예를 들어 남자감독들이 만든 영화에서 여자가 해변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내고 그러는 장면이 자주 있다. (웃음)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이상적인 모습이 캐릭터로 표현된 거다. 그런 행동을 하는 여성을 주위에서 본 적이 없고, 나 역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난 내가 본 여성, 내가 아는 여성, 내가 한 행동에 근거해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고,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지금의 흐름을 타고 남성들이 만든 이상형에 근거한 여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여성 캐릭터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여성 셰프의 고군분투를 그린 <부엌의 전사들>(감독 마야 갈루스, 2018)을 보고 “여성 셰프와 여성감독은 비슷한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성차별에서 오는 장벽이 감독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영향을 줬나.

=물론 일본에도 가와세 나오미 감독을 비롯해 여성감독이 꽤 된다. 그런데 내가 데뷔했을 때만 하더라도 여성감독은 흔치 않았다. 나는 <카모메 식당>이 인기를 얻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영화를 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에도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보수 정치가들은 아직도 여성은 결혼하면 바깥 활동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영화계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영화를 만들 땐 나도 한달 동안 집에 못 갈 때도 있고, 그럴 땐 조바심도 난다. 가만히 보면 나이가 있는 남성 투자자들에게는 돈을 받기 어렵고, 오히려 젊은 프로듀서들은 같이 작업하려고 하는데, 열린 사람들과의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며 여성의 역할을 늘려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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