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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응답> 엘렌 스퇴켄 달 작가 -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콘텐츠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다혜 사진 최성열 2019-07-01

엘렌 스퇴켄 달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활동하는 의학박사다. 90년대생인 그는 의대에서 만난 니나 브로크만과 함께 젊은이들과 성노동자, 난민을 대상으로 성 건강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고, 2015년부터 <운데르리베(성기)>라는 블로그를 열어 여성 성 건강을 둘러싼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글을 썼다. 니나 브로크만과 엘렌 스퇴켄 달은 <질의 응답>이라는 여성 성 건강에 대한 책을 썼다. <질의 응답>을 쓴 엘렌 스퇴켄 달 작가가 한국을 방문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해 노력한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와 대담 행사를 가졌다. 그를 만나 여성의 성과 건강을 둘러싼 진실과 오해에 대해 들었다.

-여성의 성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능’과 ‘건강’이 아닌 ‘아름다움’과 ‘가치’ 문제로 다루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질의 응답>에서 필요한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출간 이후 독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무엇이었나.

=가장 자주 받은 질문은 정상성에 대한 것이었다. 내 책의 독자와 내 환자들 모두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몸의 생김새가 ‘정상’이냐고 묻는다. 책이 36개국에서 출간된 뒤 가장 놀란 것은 지역과 무관하게 여성들이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여성들은 올바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며, 무척 슬픈 일이다. 한국에서는 호르몬 피임제에 대한 정보가 특히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르몬 피임제를 오래 복용하면 좋지 않다는 등의 오해가 있다.

=노르웨이의 젊은 여성들도 부작용에 대한 오해 때문에 호르몬 피임제 먹기를 두려워한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느냐고 되묻는데, 몸에 효과가 있는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가 없는 약이라는 뜻이다. 피임약에는 신기하게도 좋은 부작용도 있는데, 특정한 암 발생률을 낮춘다거나 생리통을 경감시킨다거나 생리기간 중 출혈량을 줄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호르몬 피임제를 복용하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 경우는 자궁내피임기구나 에스트로겐을 함유하지 않은 약을 비롯한 피임법을 사용할 수 있다. 피임약은 오래 복용할수록 좋은데, 부작용이 초기에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뒤로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피임약을 선택할 때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약을 복용할지는 의사와 상의해야 하는데, 여성들도 공부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래서 피임약의 부작용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질의 응답>에 많이 썼다.

-한국에서는 여성의 성을 말할 때 임신과 출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미혼여성의 성에 대한 이슈는 터부시된다. 10대 여성들은 생리통이 웬만해서는 산부인과를 찾지 않는다.

=나는 노르웨이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젊은 여성 환자들의 방문을 많이 받는다. 몸에 문제가 있거나 피임 관련한 질문이 있으면 의사를 찾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에서는 탐폰과 생리컵을 최근 들어 많이 쓰기 시작하는 추세다.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2017)에서 탐폰과 생리컵에 대해 다룬 뒤, 한 관객이 김보람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생리컵의 경우 피를 흡수하지 않고 받아낸다. 그 경우에 잠을 자는 동안 생리컵 안에 고인 피가 몸 안으로 역류하는 등의 문제는 없느냐’는 질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다. 자궁에서 나와 질로 배출된 피는 다시 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자궁 안에서 난소가 있는 쪽으로 극소량의 생리혈이 흘러들어갈 수는 있지만 일단 생리혈이 배출된 뒤 자궁으로 역류하지는 않는다.

-최근 여성의 몸, 생리에 대한 책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PMS(생리전증후군)에 대한 설명이 나뉜다. PMS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여성들에게 돈을 쓰게 하려고 관련 약 제조가 거대한 산업이 되고 있다는 주장과, PMS는 존재하는데 여성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불편을 남성 중심 사회가 무시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PMS는 존재하는 것이 맞고,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최신 의학 자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리 전 일주일이 PMS 기간이며, 생리가 시작되면 끝난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아두는 게 좋겠다. 증상은 150개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감정 진폭이 커지거나 구토감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고, 더 심각한 형태의 PMS는 ‘생리 전 불쾌 장애’라고 부르는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단계다. PMS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사람들이 여성의 의견을 무시하기 위해 “너 생리하냐?”라는 식의 말을 한다. 생리를 한다고 뇌가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당한 주장이다. 둘째, 당신이 여자이고 호르몬이 있다는 이유로 비하될 이유는 없지만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그것을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심각하면 병원에 가야 한다.

-여성의 수동성과 남성의 적극성은 성과 관련된 거의 모든 관습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심지어 수정되는 단계에서 난자는 적극적으로 헤엄쳐 오는 정자를 얌전하게 기다린다는 식의 말이 안 되는 소리까지 학교에서 가르치게 만들었다. 처녀혈과 처녀막에 대한 헛소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을 바꾸려면 여성만큼이나 남성들도 배워야 한다. 남성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는지와 <질의 응답>에 대한 남성 독자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완전히 동의한다. 수동성-적극성과 처녀혈 이야기는 성에 관련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여성을 컨트롤하고 여성의 성을 컨트롤하기 위해 만든 사실상의 거짓말이다. 여성 역시 생물학적으로 오르가슴이 있는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뿐더러 남성 없이도 즐거운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남성 중심 사회에 위협으로 작용하니까. 생물학적 진실에 기반한 교육이 열쇠다. <질의 응답>에 대해 가장 좋았던 남성들의 반응은 딸을 가진 아버지들이 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나쁜 반응도 있었다. 책을 출간한 이튿날 처음 올라온 리뷰가 “여성에 대한 모든 나쁜 것들”이라는 제목의, 50대 남성 리뷰어의 글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피임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여성의 성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으로 좋은 예시다. 여자의 몸에 관련된 일을 여자들이 남자들 모르게 혼자 조용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여성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문제지만 남자들이 싫어할 테니까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러난 일이라 할 것이다.

-몸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여성의 자기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탈코르셋’이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멋진 이야기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의 시선(male-gaze)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여러 시도를 했지만, 이후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가 시작되면서 마른 몸에 대한 싸움 등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겨드랑이 털이 보이고, 브래지어를 안 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된 게 중요하다. 안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으면 안 할 수 있다는 옵션이 있어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 아래 놓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힌국에서 그런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게 좋다. 한국의 단단한 ‘이상적인 여성의 기준’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게 좋다.

-현재 성교육은 다른 모든 교육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신체와 정신 모두 ‘나’에 집중할 시간을 갖기 전에 남들의 시선부터 의식한다. 다음 세대의 성과 몸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미디어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남성을 더 기쁘게 할까를 가르쳐왔다. 남성을 위해 여성을 만들고 대상화하는 것이다. 이 정보를 부수기가 너무 힘들어서 대안적인 미디어가 필요하다. <질의 응답>은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기존의 편견을 부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콘텐츠가 더 많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여성의 성기 역시 다른 장기들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손은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만 여성의 성기는 부끄러워하며 내가 직접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가. 그 부분에 대해 더 열린 정보, 더 질 높은 정보가 필요하고, 교육도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질의 응답>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 열린책들 펴냄

여성 생식기의 모양에서 시작해 생리, 생리용품, PMS, 섹스, 피임과 생식기 관련 질환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질의 응답>은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처럼, 여성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잘 말해지지 않는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의대생 시절에 만난 두 사람은 청소년, 성노동자, 난민을 대상으로 한 성 교육 활동을 하며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책 <질의 응답>을 쓰게 되었으며, 현재는 의사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대충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틀린 것들인지를 알려주며, 더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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