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카센타> 배우 박용우, "현대인의 양심과 염치를 생각하며 연기했다"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9-12-05

<카센타>는 한적한 국도변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재구(박용우)와 순영(조은지) 부부가 생계를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다. 도로변에 날카로운 금속 조각을 뿌리는 것으로 시작한 일은 도로에 못을 박는 계획적 범죄로 발전한다. 흙먼지만 날리던 카센터에 현금이 쌓이면서 부부의 욕망도 커지는데,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아슬아슬 양심의 줄타기를 하는 두 캐릭터의 심리에 집중한다. 하윤재 감독은 재구 역에 박용우 배우를 떠올린 건 “눈빛” 때문이라 했다. “재구의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눈을 가진 배우라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복합적인 느낌이 담겨 있다.” 역시나 <카센타>에서 박용우는 루저의 눈빛에서 욕망과 허세의 눈빛까지 너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최근작이 영화 <순정>(2015)과 드라마 <프리스트>였으니 스크린에서의 만남은 오랜만인데, 그 갈증을 해소시켜줄 만큼 <카센타>에서의 박용우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인다. “회피 동기보다 접근 동기가 강한 사람, 다시 말해 안정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 자신을 설명한 박용우. 그는 <카센타>라는 모험 또한 신나게 즐긴 듯했다.

-영화로는 오랜만의 만남이다. <순정> 개봉 이후 3년정도 영화 작업이 뜸했다.

=들어오는 작품을 다 거절하면서 자의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진 건 아니고, 자의 반 타의 반이었던 것 같다. 일이든 뭐든 뜻한 대로 사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계획대로 실천하며 사는 편인가.

=그랬던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는데. 최근엔 내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고, 작품이 흥행했으면 좋겠고, 각광받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 그런 것들은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건 결과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얘기다. 드럼을 친다든지, 영어 공부를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돌이켜보면 핑계를 많이 댄 것 같다. 이제 곧 영화 들어가는데 무슨 책을 읽냐, 작품 끝나고 영어 공부해야지, 이거 끝내고 드럼 하지 뭐. 돌아보니 그건 한낱 핑계에 불과했다. 요즘은 핑계를 대는 대신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살려고 한다.

-<카센타>는 신인감독의 개성이 잘 묻어난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기간에 비해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라 그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영화 보고 나서 하윤재 감독님한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조화’라는 말을 좋아한다. 적절히 조화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자기 색깔이 분명한 하윤재 감독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보였다.

-캐스팅 과정을 들어보니, 처음엔 감독에게 직접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던데.

=완전히 거절해야지, 100% 결정하고 나간 건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을 직접 뵙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읽고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이 내 말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튕겨내는 것 같았다. 첫만남에선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윤재 감독 말로는 거절하려고 나온 사람이 캐릭터 분석을 정확히 끝낸 상태로 1시간 동안 시나리오에 대해 얘기를 하니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고 하더라.

=그것도 내 스타일 같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바람, 굶주림이 늘 있나보다. 예전엔 소통을 힘들어했다. 표현도 거칠었던 것 같고,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했던 것 같다. 그런데 변했다. 무엇보다 연기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런 지 몇 년 안됐다.

-그렇게 변한 시기는 언제쯤인가.

=요즘, 쉬면서. (웃음)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뭔지 꾸준히 질문하는 일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한 적이 없었다.

-감독에게 작품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솔직하려고 한다. 프리 프로덕션단계에서 솔직하게 작품 얘기를 할 때, 그때만큼 자유로운 느낌이 들 때가 없다. 요즘은 현장에서도 좀 자유로워진 것 같고. 프리 단계에서의 대화는 예전부터 즐거워했다.

-소통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과의 작업이 잘 맞겠다 아니겠다의 판단이 작품 결정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나.

=사람은 모른다. 겪어도 모른다. 같이 몇달을 작업해도 그 사람의 단면만 알게 되는 거지 그 사람의 본체를 알 순 없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저 누군가에게서 한 가지 매력적인 면이 보이면 무모하게 믿고 가야 한다. 그가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기대보다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일일이 의심하고 따지면 인생이 재미없어진다. 요즘은 심플하게 살자는 주의다. 최대한 심플하게.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선 솔직하게 의견을 제시하지만 현장에선 감독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고 들었다.

=멋있잖아. 그런 게 멋있지 않나? (웃음) 사적으로도 그렇고 일적으로도 그렇고, 멋있는 게 좋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이것저것 건드려본다. 여러 상황을 가정하고 벌여보는 거다. 준비 단계에선 책임질 게 없으니까. 답을 찾기 위해 부딪혀보는 거다. 어떨 땐 날카롭게 연기했다가 어떨 땐 부드럽게 연기했다가. 그런데 촬영장에 가면 책임을 져야 한다. 촬영장에서의 결과물이 곧 영화가 되어 나오니까. 모험만 하면 안된다. 그때는 벌여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정제된 결과물을 생각해야 한다. 그때는 싸워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다. 그 과정을 즐기는 거고.

-<카센타>의 재구는 국도변의 낡은 카센터 주인이다. 재구 캐릭터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기준에서의 양심, 그 양심을 생각했다. ‘이 정도쯤이야’, ‘이 정도쯤은 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이 많은 것 같다. 또 요즘은 자기변명이 많은 시대인 것 같다. ‘이 정도쯤이야’라는 양심의 선에 대해 부연하면 이런 거다. 내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3년 전부터인가 누군가 먹다버린 우유팩을 계속해서 보게됐다.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 어딘가, 늘 비슷한 지점에 우유팩이 놓여 있다. 동일인의 소행인 것 같은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놓아둔 걸 볼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내가 먹었으니 누군가 알아서 치워’라는 마음인지 그걸 보고 사람들이 불쾌해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그걸 1년 가까이 버렸다. 나중엔 화가 나면서 ‘내 이놈 언젠가 잡고 만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유팩을 버린 사람은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하루의 기분을 망치는 일이다. 순수한 양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지만 양심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카센타>는 그렇게 ‘이 정도쯤이야’라는 마음으로 벌인 생계형 범죄를 블랙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영화다. 현대인의 양심과 염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영화의 첫 장면, 흙먼지 날리는 카센터 야외 평상에서 밥 먹는 장면에서부터 재구의 성격이 잘 드러난 것 같다. 육체노동하는 사람의 거친 느낌과 오랫동안 돈벌이가 안돼 예민하고 까칠해진 성격 같은 것들.

=현장에서 건져올려지는 게 많다. 현장 상황에 맞춰 그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준비한 건 ‘가’인데 현장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면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갑자기 인터뷰가 진행된 스튜디오에 안내방송이 나오자) 이런 게 바로 현장성이다. (웃음) 준비한 걸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때도 즐기려고 한다. 새로운 생각이 즉석에서 떠올랐을 때의 즐거움을 따라간다. 여기 평상이 있네, 상대 배우는 이렇게 연기하네, 거기에 맞춰 연기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 현장에서 내가 의미 있는 집중을 하고 있구나, 라고 느낄 때 정말 즐겁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재구가 보여줄 수 있는 희극적인 부분이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나.

=개인적으로 희극은 비극과 굉장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좀 건방진 소리를 하자면, 평상시엔 모르겠지만 연기로는 좀 웃길 자신이 있다. 웃음과 슬픔은 동류라 생각하고,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웃음이 될 수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박용우라는 사람은 재구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더라도 도로에 못 박아서 타이어에 펑크내는, 양심에 거슬리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내 기준에서 재구의 행동은 후지다. 재구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사는 인물이다. 그런 후진 방식으로 사는 것 말고, 자기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진정한 베짱이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기한테 쪽팔리지 않아야 된다. 제대로 놀려면 삶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삶을 놔버리면 살아가는 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잘 놀려면 삶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

-영화 후반부 순영과 뒤엉켜 몸싸움하는 장면을 찍을 땐 어땠나. ‘순영에게 욕하지 않는다’, ‘순영에게 직접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와 같은 제약 속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해야 했는데.

=그러한 디렉션은 리딩 단계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연기에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날도 현장의 공간을 살피고 그날의 조은지씨 컨디션을 파악하고, 감독님의 대략적인 지시를 종합해서 연기했다. 그렇게 어려워하며 찍은 장면은 아니다.

-조은지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에 현장을 더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조은지 배우는 오랫동안 같은 소속사에 몸담은 동료고, 작품으로는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오래 보아온 사이지만 자주 만남을 가지거나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조은지 배우에 대한 믿음은 항상 있었다. 감독님이 순영 역할로 조은지씨가 어떻겠냐고 했을 때도 본능적 확신이 들었다. 이미지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고. 결과적으로 함께 연기해서 좋았다.

-차기작은 <유체이탈자>다. 여기선 어떤 역할을 맡았나.

=윤계상 배우가 연기하는 이안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안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내년 1월 혹은 2월쯤 개봉할 것 같다.

-2019년도 이제 한달 남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일단 여행을 가고 싶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고 싶고, 최근에 배운 파라디들이라는 드럼 기술이 있는데 그걸 12월 안에 완벽히 익혔으면 좋겠고, 새로운 캐럴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웃음)

-드럼은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했나.

=8년쯤 됐다. 드럼이 진짜 어려운 악기다. 드럼은 리듬감이 중요하다. 드럼을 배우면서 음악과 연기가 연관성이 많고 서로 보완되는 게 많다는 걸 느낀다. 기회가 되면 영화제 무대나 적절한 자리에서 배우들끼리 합주를 선보여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로망 중 하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