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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유령해마> 소설가 문목하, "매번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쓴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20-03-18

문학상들이 새로운 재능을 알리는 시대에, 출판사 투고로 2018년 12월 출간된 문목하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은 읽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사랑받았다. <돌이킬 수 있는>은 초대형 싱크홀이 산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린 재난 이후 시간이 흘러, 가족 중 홀로 살아남아 성인이 된 윤서리가 경찰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다 부패경찰을 돕는 부서로 옮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후 암살작전에 투입되어 유령도시가 된 싱크홀의 도시에 잠입한 윤서리는 그곳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있는>은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고, 윤서리, 정여준을 비롯한 인물들을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잊기 어렵다. 2019년 11월 두 번째 장편소설 <유령해마>를 발표한 문목하 작가를 만났다.

-장편소설만 두권을 출간했다.

=단편이 어렵다. 좋은 단편들을 읽으니 보는 눈은 높아졌는데 쓰기는 어렵더라. 쓰다보면 장편이 되어서이기도 하고.

-SF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

=SF를 쓰려고 처음부터 생각한 건 <유령해마>였고 그전에는 쓸 때 SF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있는>을 쓸 때는 장르 생각을 하지 않다가 투고할 때 장르를 생각하게 된 쪽이다. 타임슬립이니까 SF 출판사로 가보자 했다. 그 시기에 김보영 작가 책을 만나서 죽기 전에 SF를 한번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유령해마>를 쓰게 되었다. 김보영 작가 책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작가를 하는구나 싶고 좌절하게 되더라.

-그렇게 강렬했던 다른 작가들은 누구인가.

=세라 워터스. 할레드 호세이니는 내가 나의 인생을 소재로는 이런 소설까지는 안되겠다는 행복한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김보영 작가와 앤 레키.

-<돌이킬 수 있는>과 <유령해마>를 나란히 다시 읽으니 주요 등장인물과 관련해 기억, 슬픔, 고립 같은 정서가 비슷하게 느껴지더라. <돌이킬 수 있는>은 SF면서 스릴러 성격이 짙고 마지막에는 멜로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원래 <돌이킬 수 있는>은 스릴러였다. 그런데 중간에 주인공을 취조실에서 빼냈으면 좋겠는데 내 머리로는 안되더라. 어떻게 주인공을 구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편법으로 쓴 방법이 SF 장르에 속해 있었다. 그렇게 장르가 섞이게 되었다. 멜로는, 나는 로맨스에 대해서는 많이 건조하다. 로맨스를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라, 어떤 인물이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고 싶을 때 로맨스를 끼워넣고, 그다음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웃음) <돌이킬 수 있는>에서 남자에게는 확신에 가깝게 로맨스적 성질을 부여하지만 여자에게는 헷갈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렇지 않게 보고 싶은 사람들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처음 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원고와 출간된 원고는 얼마나 다른가.

=내 기준에서는 좀 했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별로 안 달라졌을 거다. 내용은 거의 안 바뀌었다. 문장, 단어, 장면전환에서 가필하는 정도로만 손을 봤다.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뭐였나.

=어린아이들이 학종이가 있으면 학을 접듯이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처음 썼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청소년 문학상 상금이 괜찮아 보여서, 상금으로 1년 내내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고.

-상을 탄 적도 있나.

=최종심에 올라가서 평은 몇번 받았다. 그게 감사한 저주 같은 것이다. 착각을 하게 되니까. 아, 못 읽을 정도는 아니구나 하고. 다음에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게 되고…. 좋은 심사평을 해주는 분들이 잔인한 분들이다. (웃음)

-두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는데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책마다 다르긴 하지만, <유령해마>는 쓰는 데 두달 정도 걸렸고 구상하는 데 반년 정도 걸렸다. 웬만큼 정해지기 전에는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그냥 써본 적도 있는데 내가 진행을 못 시키더라. 대개는 가장 큰 사건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결말이 나온다. 그리고 중간을 채워넣는다. 나중의 것이 정해지면 첫 파트는 자연스럽게 나온다.

-<돌이킬 수 있는>에서 윤서리, 정여준, 이찬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강렬하고 생생하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헷갈리지 않는다. 각자의 목소리를 부여하는 방식도 궁금하다.

=사건을 정하고, 사건에 필요한 만큼 머릿수를 채운다. 이 사건이 일어나려면 최소한 이만큼의 인물은 있어야 한다고 계산하는 식이다. 너무 많아지면 읽는 사람들이 힘들 테고, 큰 사건에 한 인물만 나오지 않고 겹쳐 나오게 한다. 그렇게 사건은 최대, 인물은 최소가 되도록. 캐릭터의 외적인 이미지는 안 떠올린다. 필요하든가, 재미있든가. 필요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면 안 쓰는데, 그중 하나가 인물의 구체적인 외적 이미지다.

-<돌이킬 수 있는>의 인터넷 서점 상세페이지에 있는 김창규 작가가 쓴 해설에, “어떤 작품인지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둘 다 소설은 아닙니다), 이 두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두 레퍼런스가 <돌이킬 수 있는>이라는 소설의 플롯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 분석을 어떻게 생각하나.

=보면서 너무 궁금했다. 어떤 작품을 생각한 건지. 그 글을 읽은 뒤에 만날 기회가 없어서 물어보지는 않았다. 읽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생각을 할 테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김창규 작가의 생각이니까. 아, 출판사 편집장이 이 소설을 검토할 때 김창규 작가에게 검토를 부탁했다고 한다. 김창규 작가가 이 소설을 읽고 작가가 40, 50대의 남성일 것 같다고 했다더라. 그 감상을 듣고 좋았다. 100명이 읽으면 100명이 다 다른 생각을 하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다. 소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은 오해일 수 있고 그것은 독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경험이다.

-제일 큰 동기부여는 무엇인가.

=다시는 쓰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지막이니까 제대로 끝내자는 생각으로 쓴다.

-<유령해마>는 어떻게 시작한 이야기인가.

=처음에는 법정 이야기만 하게 될 줄 알았다. 미래에 기계 혹은 인공지능이 로비하는 이야기.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나오더라.

-<유령해마>에서 AI의 시점으로 글을 쓰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어떤 작품들에서는 AI가 너무 사람같이 구는데, <유령해마>는 AI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부분이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지 않은 중간 정도의 느낌이다.

=지금 말한 게 다 맞다. 너무 인간답게는 하지 말자, 기계라는 스테레오타입대로 하지도 말자.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데, 인간성에 대한 집착은 제거된 무언가를 상정하고 썼다. 인간이 아니라는 데도 집착하지 않고 쓰려고 했다.

-AI가 인간 같은 방식으로 애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움직이게 할까도 재미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주면 문제를 풀기 위해 움직인다는.

=감정, 애정에서 중립적이기를 원했다. 사람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 있다면 어떤 인물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지 않더라도 애정에 필적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정으로 읽는 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애정으로 읽지 않는 분들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 해석이 갈릴 수 있는 건 열어두고 싶다.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최소한 1시간은 연속적으로 몸 움직이기. 집 근처에 산이 있다. 헬스장에 가지 않고 상체 근육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