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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스탭협동조합 ‘단단’ 김조광수 이사장·박혜미 이사 - 영화제 스탭들의 행복을 찾아서
배동미 사진 오계옥 2020-04-09

박혜미 이사, 김조광수 이사장(왼쪽부터).

영화제 스탭의 권익을 보호하는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영화제 스탭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고 영화제도 내실을 다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합의 이름을 ‘단단’이라고 지었다. 지난 2018년 청년유니온이 영화제 스탭들의 노동 현실을 고발하면서 스탭들의 노동환경과 권익보호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스탭들의 근로환경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최근 영화제 스탭 모집 공고에 지원하는 청년들이 눈에 띄게 준 것도 이러한 노동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속 가능한 영화제가 되려면 스탭들도 응당 행복해야 할 것이다. 몇년간 논의돼오던 영화제 스탭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단단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지 김조광수 이사장과 박혜미 이사를 만나 물었다.

-지난 3월 26일 창립총회를 열었고 단단의 공식 출범을 준비 중이다.

=김조광수_ 나는 이사장을, 박혜미씨는 이사를 맡는다. 이사진은 회계사와 감사까지 해서 총 5명이다. 지난 2019년 영진위에서 공정환경센터를 열고 TF를 꾸렸다. 노무사도 참여한 TF팀은 영화제 스탭의 노동자성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 2019년 12월부터 영화제 스탭 협동조합의 설립 간담회가 열렸고 지금 이렇게 출범을 준비할 수 있었다.

-두분 다 영화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가까이서 본 영화제 스탭들이 처한 현실이 어떤가.

=김조광수_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 스탭들을 1년 내내 먹고살게 해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영화제의 1년을 꾸리자고 말할 수 없었다.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인건비를 겨우 조달해왔다. 스탭이 세명 있는데 그중 두명은 서울시에서 뉴딜일자리사업 지원을 받고 있고, 한명은 상근으로 고용했다. 뉴딜일자리를 통한 채용은 물론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서울시가 이듬해에는 같은 사람에게 뉴딜일자리를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탭이 자꾸 바뀌면 영화제가 전문성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박혜미_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일했다. 계약직으로 들어가서 2년 뒤 상근자로 고용됐다. 단기 스탭처럼 고용불안을 겪은 건 아니지만 단기 스탭들과 일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단순 업무를 빨리 하도록 지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영화제의 쪼개기 계약 꼼수로 1년 내내 같이 일해야 할 사람을 9개월 단위로 계약하고, 3개월 단위로 계약하면서 같이 일해야했다. 그런 구조에서 “우리 내년에 또 영화제 일을 하자” 고 중간 관리자로서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아 프로그램팀장으로 들어갔다가 프로그래머로 일했는데 단기 스탭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프로그래머까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프로그래머는 평론가나 외부 인사들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그래머를 바라고 일하는 스탭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제측에서 스탭 채용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없었다. 그러면 전에 일했던 스탭들을 찾으려고 전화를 돌렸다. 연락이 닿아도 같이 일한 지 2년이 넘은 경우에는 정규직이 아니면 더는 같이 일할 수 없었다. 영화제에서 일한 시간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같이 일한 스탭들을 착취하는 과정이었다.

-영화제 스탭들로 진입한 90년대생들은 소위 ‘워라밸’을 중시할 텐데.

=김조광수_ 그래서 요즘은 작은 영화제들도 연장근로나 휴일은 지켜준다. 스탭들이 먼저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화제 스탭들 가운데 “노동청에 고발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스스로의 노동자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이들이 많아졌다.

=박혜미_ 영화제 전문 인력은 정말 많이 안 남았다. 큰 영화제들도 스탭 모집공고가 상시채용으로 바뀌었다. 부산국제영화제조차 지원자가 줄었다. 영화제 스탭들이 단단을 필요로 하는 것과 비슷하게 영화제도 전문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영진위가 국제영화제 평가 기준에서 인건비 비율이 낮을수록 높은 점수를 줬다. 일이 많아 야근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수당을 챙겨주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김조광수_ 인건비 비율이 낮으면 영진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8년에 인건비 비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2019년에 경상비 적절성이란 평가지표에서 인건비를 삭제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경상비 적절성에서 인건비 항목을 없애고 대신 인건비 적절성이란 평가지표가 만들어졌다. 스탭 고용으로 발생하는 노동 문제가 적으면 높은 점수를 받는 방식이다.

=박혜미_ 인건비는 더 쓸 수 없는데 새로운 사업들을 만들어내야 영진위 평가가 좋았다. 영진위 평가 기준은 대체로 관객수는 얼마이고, 프리미어로 몇 작품을 틀었고, 초청 작품은 총 몇편인가 등 정량 평가였다. 영화제는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밖에 치중할 수 없는데 결국 일이 늘어나는 건 스탭들이었다.

-단단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김조광수_ 스탭으로 일하고 싶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이 주로 단단의 조합원이 될 것이다. 자막팀 회사라든가 법인 단위의 조합원도 함께할 예정이다. 진미디어와 21세기 자 막단,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모두를 위한 극장도 단단과 함께한다. 단단은 영진위와 지자체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보겠다고 출범했다. 영화제들도 인력 유출 없이 공동으로 인력을 고용하면 속이 편하지만 사실상 그건 안되니까 단단이 파견하는 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면 스탭도 1년 동안 상시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영화제만으로는 충분한 일감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서 다양한 일감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영화제 세개를 돈다는 건 체력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영화제 두곳에서 일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 고강도가 아닌 일을 하면 좋다. 일감을 만들어야 하는데 전국 단위로 네트워크를 꾸리고 사업들을 만들 생각이다. 작은 영화제를 한다거나 시민 프로그래머 같은 걸 기획해서 지자체에 제안하고 그걸 운영하는 식으로 일감을 만들 예정이다.

=박혜미_ 이사진인 김희철 다큐멘터리 감독과 강경환 영화제작소 눈대표는 그런 이유에서 단단과 함께한다. 두분은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는 분이라서 상상력을 더해서 일감을 주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올해는 적게나마 영화제 스탭 조합원들을 모으고 인력풀을 꾸려서 영화제에 파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김조광수_ 단단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양쪽으로 많다. 영화제는 영화제대로 스탭들은 스탭들대로 단단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궁금해한다. 창립총회를 이제 마쳤고 곧 협동조합 설립증을 받을 것이다. 4월에 협동조합 설립을 마치면 5월부터는 간담회나 설명회를 열어 단단을 외부에 알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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