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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 스스로 미장센이 되다
송경원 2020-08-27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며 만길(김성오)의 뒷조사를 하는 닥터 장(양동근)은 얼핏 사건을 전달하는 해설자처럼 보인다. 여느 영화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신정원 감독의 세계에선 어쩌면 닥터 장이야말로 숨겨진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외계인 만길은 언브레이커블이라는 명칭 그대로 보통의 수단으론 죽일 수 없는 존재다. 반면 닥터 장은 평범한 인간이 분명한데 웬일인지, 아니 웬만해선 죽지 않는 남자다. 우리는 신정원 감독의 전작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존재들을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시실리 2km>에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죽지 않는 석태(권오중)는 그저 죽지 않는 것만으로 예상치 못할 상황을 만들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죽을 만한데 끈덕지게 버티는 닥터 장은 신정원표 코미디의 계보를 당당하게 잇고 있다. “시나리오상에는 비중이 크지 않아 보였는데, 현장에서 계속 뭔가 커져가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에게 여쭤봤더니 그냥 중요한 역할이라고만 하시고. (웃음)” 외계인도 아니면서 죽지도 않는 닥터장은 논리나 상식, 이해와 설명 바깥에 서 있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닥터 장을 연기한 양동근 배우 역시 이 캐릭터를 굳이 이해하려고하지 않았다. 그저 신정원 감독이 바라는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말하자면 양동근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완벽히 감독의 만년필이 되길 자처했고, 성공했다.

폭탄 머리에 어눌한 몸짓, 허술한데 왠지 믿고 싶은 말투까지 닥터 장의 캐릭터엔 양동근 배우가 가진 본래의 이미지도 상당 부분 녹아 있다. 이건 완전히 가상의 캐릭터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주변 사물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아 녹여내는 신정원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배우, 아니 아티스트 같은 면이 있는 분이다. 사전 준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현장에서 수정도 많았고 그때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도 적극 반영하셨다. 이렇게 영감으로 움직이는 분의 영화를 할 땐 완전히 믿고 맡긴 채 따라가는 것이 맞겠다고 느꼈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의 비전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 그는 스스로를 ‘미장센 배우’라고 칭했다. “딱히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없다. 하고 싶은 걸 했던 적도 있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해서 한 작품들도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든지 해야 하면, 한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이해가 안되면 쳐내거나 그냥 관성으로 넘긴 것도 꽤 많았다. 반면 지금은 이해의 폭이,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쓸모를 발견한다.” 양동근 배우는 자신의 40대 이전 연기들이 준비운동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 색깔을 마구 뽐내기보다 영화 안으로, 감독이 원하는 호흡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저 구석에 있지만 빠질 수 없는 미장센 같은 존재.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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