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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김혜성 - 영화를 보는 눈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0-10-22

“아,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고!” 의대에 다니던 지혁은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후 마음의 문을 닫고 순간순간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간병인 은숙(유진)과 아픔을 공유한 뒤로 다시 세상 밖으로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한다. 배우 김혜성은 머리를 기르고 체중을 감량해 지혁의 수척하고 무기력한 외형을 구현하고, 일부러 넘어지고 부딪혀가며 다리가 불편한 지혁의 움직임을 익혔다. 본래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지혁에게 공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는 김혜성 배우는, “힘든 시기에 만난 <종이꽃>이 미리 겁먹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준 작품”이라고 애정을 표했다.

-<퇴마; 무녀굴> 이후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왔다. 어떤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인가.

=시나리오가 막힘없이 술술 읽혔고, 무엇보다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다. 첫 데뷔가 영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 또 이 작품 아니면 언제 안성기 선생님과 연기해볼 수 있겠나 싶은 생각에 기분 좋게 선택했다.

-함께 연기해보니 어땠나.

=안성기 선생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심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사실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다. 서로 데면데면한 부자 관계로 등장하는 터라 너무 가까워지면 연기가 잘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혁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바라본다. 연기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계속 누워 있다 보니 한없이 비참해지긴 했다. 실제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책하는 면이 좀 있어서 그런 경험을 연기에 적용했다. 연기 모드로 180도 전환하는 걸 잘 못하는 편이라 평소에도 지혁이처럼 지냈다. 말없이 구석에 혼자 있으니 주변에서 걱정하더라, 난 괜찮았는데. (웃음)

-누워서 하는 연기는 어떻던가.

=사람들이 참 편하게 일한다고 놀렸다. (웃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서 대신 표정 연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움직임도 한달 전부터 연습했다. 일부러 침대에서 떨어져도 보고. 그런 게 태가 났는지 현장에서 칭찬들 해주시더라.

-외적으로도 신경을 쓴 게 보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도 기르고, 의상도 실제 집에서 입던 옷을 가져온 게 아닌가 싶었다.

=움직임이 여의치 않다는 상황을 고려해서 머리와 수염을 길렀다. 같은 이유로 나중엔 손톱도 길렀다. 사실 그런 거 되게 못 참는데 디테일하게 준비했다고 감독님이 좋아하시더라. (웃음)

-휠체어에 혼자 올라가려고 애쓰는 신에선 숨을 죽이고 보게 되더라.

=그 장면만 7, 8번 촬영한 것 같은데 찍을 때마다 힘이 쭉쭉 빠졌다. 원래 여러 번 나눠서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원 테이크로 가자고 했다. 지혁이가 처음 밖으로 나가는 중요한 순간인데 끊어 촬영하면 감정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촬영을 끝내고 나니 해냈다 싶어 뿌듯하더라.

-지혁이 자살을 시도하는 신들에서 유진 배우와의 실랑이가 실감나더라.

=특히 목을 매는 신을 찍을 땐 사실감을 위해 타이트하게 끈을 묶었다. 우리는 굉장히 심각하게 촬영했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보니 관객이 그 장면에서 엄청 웃더라. “이게 웃긴 장면인가?” 하고 의아해했는데 감독님이 의도하신 게 맞다더라. 상황적으로 너무 무겁다보니 유진 배우가 내 머릴 때린다든지, 그런 웃음 포인트를 넣으신 것 같다. 아무튼 우린 정말 진지하게 임했다.

-<은밀하고 위대한 동물의 사생활>에서 팀원들과 함께 펭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던데.

=사실 촬영하는 걸 좋아한다. 카메라로 대상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게 좋다. 렌즈를 통해 오랫동안 대상을 지켜봐야만 잡아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그럴 때 느끼는 희열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촬영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사진 찍는 게 취미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사이코패스나 악역 연기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마음 아직도 유효한가.

=아, 진짜 한번 해봐야 하는데. 여전히 유효하고, 추가로 사투리를 쓰는 역할도 꼭 해보고 싶다. 주변에서 사투리를 쓰면 내 색깔이 분명히 드러난다고들 한다. 지금까지 비슷한 역할을 많이 맡아서 완전히 다른 타입의 인물들을 연기해보고 싶다.

-한 인터뷰에서 32살까지 연기를 해보고 본인의 기준을 넘지 못하면 다른 길을 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32살을 넘긴 현재의 마음은 어떤가.

=지금도 똑같다. 연기를 좋아하지만 연기가 내 미래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야 부담도 덜하고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 지금은 다른 일과 연기를 병행하는 선택지도 고려 중이다. 연기 안팎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고 싶은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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