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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규환' 최하나 감독 - 조금 모자란 가족이어도 괜찮다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0-11-12

<애비규환>에는 세명의 ‘애비’가 있다. 5개월차 임신부 토일(정수정)을 키워준 아빠 태효(최덕문), 낳아준 아빠 환규(이해영), 그리고 토일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이 그들이다. 같이 아이를 키우기로 해놓고 사라진 호훈을 찾아, 두 아빠와 토일, 토일의 엄마 선명(장혜진)은 함께 산을 오른다. 이들은 서로에게 내내 으르렁대다가도 토일이 점찍은 소원 돌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힘을 합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한 최하나 감독은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조력을 첫 장편에 담아내 지난 10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다. ‘유교의 폐해’를 외치던 토일이 사랑과 용기로 자신만의 가족을 꾸려가기까지, 최하나 감독은 토일의 곁에서 고민을 함께했다.

-지난 10월 25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를 가졌다. 관객에게 처음으로 <애비규환>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단편을 만들 때부터 내 영화를 누군가와 같이 보는 걸 두려워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불안이 덜했는데, 상영 후 관객의 질문에서도 영화와 인물을 향한 애정이 느껴져서 걱정했던 것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GV에 참여했다.

-<씨네21>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2017년 1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으로 영화계 내 성폭력 연속 대담에 참여했다. 당시 학교 내 성차별적 일화들을 증언했는데, <애비규환> 개봉 소식이 알려지자 해당 내용이 실린 기사가 SNS에서 회자되고 있더라.

=내가 대담 자리에서 이야기한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일이다. 누군가 다시 공격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은데, 5년 사이에 시대가 변했으니 나와 논쟁을 벌였던 남학우도 뭔가 많이 익히지 않았을까.

-감독의 전사를 알고 보니 <애비규환>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출발한 영화인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도 내 영화가 닮았으면 좋겠다 싶은 영화들이 있지 않나. <음식남녀> <결혼 피로연> 같은 리안 감독의 초기작이나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 같은 2000년대 중반 한국 코미디영화들이 그 예다. 거대한 주제를 파보려는 욕심 대신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한 콩가루 가족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토일이라는 캐릭터가 먼저 나타났고, 그다음에는 친아빠와 새아빠가 힘을 합쳐서 예비 사위를 잡으러 간다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럼 20대 초반의 임신부 토일은 누구의 이야기를 참고한 건가.

=특별한 모델이 있었다기보다 친구들, 친구들의 형제들이 가진 요소를 합쳐서 토일이를 만들었다. 친구의 친오빠가 실제로 여자친구와 아이를 가졌는데 5개월간 숨기다 가족에게 공표했다. 그럴 수 있다니 대단하고 신기했다. (웃음) 토일이라는 이름은 중학생 때 친구가 사귄 남자친구의 이름인데, 사람 이름을 이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감독이 그린 토일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면에서 정수정 배우와 어울린다고 봤는지 궁금하다.

=토일은 뒷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다. 그게 밉지 않게 비쳤으면 했지만 사람들이 규범적으로 원하는 젊은 여성상도 비껴가길 원했다. 지기 싫어하는 호전적 면모와 함께 자기 잘난 걸 알고 뽐낼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랐다. 첫 미팅에서 만난 수정씨의 웃는 얼굴과 웃지 않는 얼굴 사이의 간극이 되게 좋았다. 웃지 않는 여자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회에서,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는 것도 이 사람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좀더 작고 동글동글한 이미지의 토일을 상상했지만 수정씨가 표현하는 토일이는 좀더 뾰족한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어 함께하게 됐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토일과 호훈이 밤을 보내고, 바로 5개월 후가 된다. 예정에 없던 임신 초기에 겪을 법한 혼란을 생략해 10~20대 초반의 임신 스토리가 가진 전형성을 탈피했다.

=임신과 출산보다도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토일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걸 보여주는 것과 아이를 낳기로 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지금 이 시기에 왜 토일이 아이를 낳는지 보여주는 신은 필연적으로 낙태죄 찬성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건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그 5개월이 지나고 관객이 맞닥뜨리는 건 토일과 호훈의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다. 둘을 어떻게 대조하고 싶었나.

=토일이네는 전형적으로 한국적, 호훈이네는 이국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토일이가 가진 정상가족에 대한 선망을 그 대조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호훈의 부모가 굉장히 독특한 분들인데 토일은 그 특별함을 정상가족의 그것으로 오해한다. 토일이처럼 똑똑한 아이라면 시부모에 대한 걱정을 했을 테고, 여성 관객은 특히 시댁에 대한 우려를 할 텐데, 탈한국적인 면모로 근심을 가라앉히고 싶기도 했다.

-유교적 스타일에 충실한 조부모가 있는 대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토일의 배경을 설명하는 단서다. 수성못, 우방타워, 서문시장 등 대구 로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물론 대구 사투리의 미묘한 포인트도 살렸다.

=7살 때까지 대구에 살았다. 대구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친가, 외가 가족들이 모두 대구 사람들이다. 토일의 엄마 선명이 재혼을 한 뒤 도망치듯 서울로 왔다는 걸 상상할 수 있도록 다른 경상도 지역과는 구별되는, 대구 특유의 좀더 날카로운 말투와 보수적인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이혼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해서 이혼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선명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선명은 새로 결혼을 하고 토일 또한 호훈과의 사이가 망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간다.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 때문에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봤다. 토일이가 두려워할 때 선명이 가장 힘을 실어준다. 토일을 만났으니 첫 결혼이 완전히 망한 것만은 아니라고도 말해주고 말이다. 그런데 토일의 결혼식에서 보면 선명은 딸 문제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토일을 능가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은 엄마다. 그때 토일이 선명에게 얻은 깨달음과 용기를 엄마에게 돌려준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애비규환>은 가족을 향한 애증을 다루되 사랑쪽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영화다. 가부장제, 가족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관계가 가진 힘을 놓고 싶지 않은 감독 나름의 균형 감각이 전해진 걸까.

=그런 것 같다. 가족영화에서 그 균형을 찾는 게 항상 어려웠다. 갈등을 가족주의로 봉합해버리는 나이브함을 피하되 관계를 차갑게만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조금 모자란 가족이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토일이가 정상가족에 대한 선망을 버리고 결핍을 가족과 함께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 장편 개봉 소감과 더불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듣고 싶다.

=<애비규환>은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끼는 작품이다. 비판받을 지점도 충분히 있는 영화지만 그 비판도 유의미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앞으로도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해롭지 않게, 건강한 방식으로 환기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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