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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위트홈' 고민시 -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역할 맡고 싶다"
조현나 사진 최성열 2020-12-31

옥상에서 우아하게 발레를 하던 은유는 토슈즈에 껌이 늘어붙자 곧바로 욕설을 내뱉으며 담배를 꺼내 문다. 첫 등장부터 겁 없고 거침없던 은유는 <스위트홈>의 브레인 은혁(이도현)의 동생으로 행동파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인물이다. <마녀> <좋아하면 울리는>에서도 까랑까랑한 10대의 얼굴을 내비쳤던 배우 고민시는 <스위트홈>에서 삐딱하지만 발레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인 고등학생 은유를 연기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는 은유의 감정선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5년차답게 노련하면서도 은연중 앳된 발랄함을 내비치는 배우. 그 특징을 잡아낸 이응복 감독은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스위트홈>의 은유를, 뒤이어 자신의 차기작 <지리산>의 다원을 고민시 배우에게 제안했다.

-은유 역으로 <스위트홈>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은유 역할만 정해놓고 본 건 아니었다. 윤지수, 박유리, 이은유 캐릭터로 가능성을 열어놓고 각각의 대사를 읽어봤다. 다 들어보신 감독님이 웃으면서 “은유를 하자”라고 말씀하시더라. (웃음) 은유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매력적인 캐릭터다. 감정을 서툴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모습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 점들 때문에 은유에게 200~300% 애정을 갖고 몰입했다.

-원작 웹툰의 팬이었다고.

=이전에 황영찬 작가의 <멜로홀릭>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것을 계기로 <스위트홈> <후레자식> 등 김칸비·황원찬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챙겨봤다. 그래서 <스위트홈>이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걸 어떻게 드라마로 만들어요?” 라고 회사에 계속 물어봤다. (웃음) 괴물들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가장 궁금했다.

-평소 크리처물이나 좀비물을 즐겨 보는 편인가.

=굉장히 좋아한다. 오히려 그런 장르물을 더 즐겨본다. 특히 <버드박스>의 경우에는 <스위트홈>을 준비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됐다. 두려움의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인물들이 겁에 질리거나 도망치는 모습들을 주로 참고했다.

-실제 괴물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을 텐데, 그런 점이 어렵진 않았나.

=처음엔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안무가분들이 초록색 크로마키 의상을 입고 연기하시다 보니 재밌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김설진 안무가님을 비롯한 연기자분들이 워낙 괴물 연기를 사실적으로 해주셔서 곧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CG가 덜 된 상태에서 안무가분들을 촬영한 장면만 봤는데, 나중에 보니 괴물이 굉장히 리얼하게 구현됐더라.

-발레를 한다는 것 외에도 학교에 불을 질러 퇴학당했다든지, 원작에 없던 설정들이 추가됐다. 전반적으로 은유가 더 세고 거침없는 인물로 그려졌던데.

=그래서 은유를 과감한 행동파로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 은유는 초반엔 한없이 삐딱하게 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성장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변화가 확연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특징들을 잘 살리고자 했다. 발레는 촬영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 하고 있다. 기간으로 따지면 총 반년 정도.

-필라테스를 오래 했고, 학생 때 춤 동아리에 들 정도로 춤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런 점들이 발레를 할 때 도움이 되진 않았나.

=필라테스를 하며 길러진 유연성이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다. 촬영 때 감독님이 “서커스를 보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웃음) 몸 쓰는 걸 좋아하고 움직임에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발레는 워낙 어려워서 정말 열정적으로 준비해야만 했다. 감독님도 내가 열심히 준비한 걸 다 알아봐주셨다.

-유독 은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신이 많았다. 특히 은유가 말 한마디 없이 발레복을 칼로 찢는 신은 표정만으로도 그의 상실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극중 상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은유는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고, 여기에 괴물들까지 등장해 발레리나의 꿈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감독님이 “너의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것처럼 발레복을 찢어달라”고 하셨고, 그에 맞춰 은유의 절망감에 몰입하다 보니 대본상에 없던 눈물까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발레복 여벌이 많지 않아서 우는 와중에도 옷을 최대한 예쁘게 잘 찢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웃음)

-상욱과 ‘옆집 여자 괴물’이 싸우는 신에서도 피범벅이 된 은유의 얼굴이 여러 차례 클로즈업이 된다. 얼어붙은 은유의 표정에서 공포가 있는 그대로 전달되더라.

=당시 세트장이 사실적으로 구현됐고, 괴물을 연기하신 분이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잘 쓰셔서 정말 무서웠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에 떠는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얼굴에 피가 튄 것도 대본상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감독님이 “피가 더 튀어야겠다”하시면서 직접 분무기로 뿌려주셨다. 눈에 좀 들어가기도 했는데 NG를 낼 순 없으니까 계속 눈을 부릅뜨고 연기했다. 피가 언제 튈지 모른다는 묘한 긴장감도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 감독님이 핸드폰을 손에 든 각도와 방향까지 정말 디테일하게 디렉팅해주셨다.

-은유의 행동이 워낙 능청스러워서 ‘저건 애드리브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실제로 은유를 연기할 때 말, 몸 쓰는 것, 애드리브, 이 세 가지에 중점을 뒀다. 그린홈 주민들이 거미 괴물과의 결투를 대비하는 신에서 내가 박수를 치면서 “호우~!”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있다. 감독님이 엄청 웃으시면서 이대로 가자고 하시더라. 상욱(이진욱)이 대꾸 없이 지나가자 “븅신 같은 게” 하면서 손가락 욕을 하는 것도 애드리브다. (웃음)

-은유의 헤드폰이 굉장히 독특하던데 직접 고른 건가.

=처음에 감독님이 일반 이어폰과 헤드폰 중 하나를 골라보라고 하셨다. 나는 은유라는 캐릭터와 헤드폰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또 원판 안쪽에 은혁과 은유의 어릴 때 사진을 붙여야 해서, 그런 공간을 고려했을 때도 헤드폰이 더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 분들도 동의하셨고, 색도 빨간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걸로 골랐다.

-은혁을 연기한 이도현 배우와의 합은 어땠나.

=사실 초반부에는 붙는 신이 많이 없었다. 또 이도현 배우가 캐릭터에 몰두하려고 다른 배우들과 크게 접촉을 하지 않은 걸로 안다. 그런데 뒤에서 손난로를 건네주는 등, 정말 많이 챙겨줬다. 그런 게 하나씩 쌓여서 마지막 신을 찍을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그 마지막 신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던데.

=그렇다. 스포라서 많은 부분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차갑게 굴던 은유가 오빠 은혁과의 관계로 인해 감정이 휘몰아치게 되는 신이다. 그 10여 분을 위해 몇 주간 공을 들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마녀> <좋아하면 울리는> <스위트홈> 등에서 여러 차례 고등학생 역을 맡았고, 매번 10대 특유의 날것 느낌을 잘 살렸다. 10대들의 행동, 말투 등은 주로 어디서 참고하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줄임말 같은 것을 많이 배웠다. <마녀>의 경우 김수미 선배님의 영상을 보면서 어떤 욕설을 어떤 템포로 내뱉는지도 참고했다. <좋아하면 울리는>까지는 주변 인물들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는데 은유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접한 적 없는 재난 상황이 배경이다 보니 대본을 토대로 나만의 이은유를 만들어야겠더라. 그래서 할리퀸이나 <킬링 이브>의 빌라넬 등, 소위 센 여성 캐릭터들을 유심히 보면서 연구했다.

-배우 고민시의 10대는 어땠나.

=현실적인 학생이었다. 얼른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였다. 배우의 꿈은 초등학생 때부터 꿨지만, 그저 꿈으로 간직했었다. 그렇게 졸업하고 웨딩플래너 일을 몇년 했는데 어느 날 정말 문득, 이렇게 살다간 후회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경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배우 외에도 연출가로서의 경험이 있다. 단편 <평행소설>로 ‘제4회 SNS 3분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감독의 꿈도 여전히 갖고 있나.

=당연하다. 사실 <평행소설>도 감독을 꿈꾸는 나와 배우를 꿈꾸는 내가 같은 세계에서 조우한다는 것이 중심 서사다. 언젠가 여러 세계관이 얽히고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기존 작품에 빗대 설명하자면 넷플릭스 시리즈 <OA> 같은. 하지만 현재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잘 다지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스위트홈>에 이어 차기작 <지리산>에서도 이응복 감독과 합을 맞춘다.

=<스위트홈> 촬영 중에 감독님이 “평소의 너랑 좀 비슷한 거 같은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감사하게도 먼저 제안을 주셨다. 내가 연기한 다원이는 팀에 들어온 지 한달도 채 안된, 새내기 국립공원 레인저(특수부대원)다. 서이강(전지현)을 비롯한 선배들을 열심히 보조하는 귀여운 막내다. 그간 센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지리산>에서는 발랄한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말한 대로 그동안엔 주로 센 캐릭터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 밖에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가 있나.

=다원이처럼 밝은 역할도 좋긴 한데, 아주 딥한 멜로를 해보고 싶다. 로맨스 코미디가 아니라 칼로 찌르고 그런 장르물이 섞인 멜로물. 피 튀기는 걸 워낙 좋아한다. (웃음) 최근 <>을 인상 깊게 봤다. 전종서 배우가 연기한 연쇄살인마 영숙과 같은 캐릭터는 사실 지금까지 남성 배우의 전유물처럼 그려져 온 인물이지 않나. 그런데 영숙을 보면서 이제는 여자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도 다양해졌음을 실감했다. 영숙처럼 배우의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밖에도 사극과 같은 시대극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윤가은 감독의 엄청난 팬이라고 들었다.

=(애틋한 표정을 지으며) 맞다. <우리집> <우리들> 전부 챙겨봤다. 윤가은 감독님의 작품들은 정말 내 눈물버튼이다. 어릴 때 나도 저런 모습이 있었는데 나만 그랬던 게 아니구나, 하는 지점들을 감독님이 잘 잡아주시는 것 같다. 그 감정선들이 너무 좋다. 아이들의 친언니나 이모와 같은, 아이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단역으로라도 윤가은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웃음)

-드라마 <스위트홈> 영화 <세트플레이> 그리고 <지리산> 촬영까지, 정말 바쁜 2020년을 보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계획인가.

=우선 <스위트홈>이 18일에 공개되니까 적어도 일주일은 <스위트홈>에 관한 반응들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스위트홈>도 계속 돌려볼 것 같고.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쉴 것 같다. <지리산> 외에도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 출연이 예정돼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은혁을 연기한 이도현 배우와 연인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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