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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전야' 홍지영 감독, 인물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찾는 일이 재미있다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1-02-23

<새해전야>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설 연휴 극장가를 찾았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통과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6년을 만난 연인과 결별하고 서울에서 가장 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 진아(이연희)와 그곳의 와인 배달원 재헌(유연석), 전남편의 위협에 시달리는 재활 트레이너 효영(유인나)과 신변보호차 효영 곁을 맴도는 형사 지호(김강우), 장애가 있는 스노보드 선수 래환(유태오)과 든든한 연인인 원예사 오월(최수영), 결혼식을 준비 중인 여행사 대표 용찬(이동휘)과 중국인 신부 야오린(천두링), 마음씨 좋은 용찬의 누나 용미(염혜란)까지, 9명의 각기 다른 초상들이 저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린다.

<결혼전야>(2013)에 이어 ‘전야’ 시리즈를 확장하며 자신만의 계보를 탐색 중인 홍지영 감독은, 네 번째 영화 <새해전야>를 준비하며 <키친>(2009) 이후 데뷔 10주년의 소감도 되새겼다. 지난 2월 15일 강원영상위원회 2대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지역 영상 산업 활성화를 위한 중책까지 도맡은 홍지영 감독을 만났다.

-전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 이후 4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데뷔 10주년을 맞았고, 한국 영화시장이 급변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영화 제작에 대한 투지와 혼란 모두 함께했을 것 같다.

=<키친> 이후 데뷔 10주년을 맞아 2019년에 작은 파티를 열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까지 딱 세 작품을 끝낸 시점이었고, 당시로서는 앞으로도 내가 ‘3년에 한 작품씩 찍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혼전야>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촬영과 편집, 개봉까지 한해 안에 다 마무리한 작품들인 데 반해 <새해전야>는 어쩌다보니 햇수로 3년에 걸친 영화가 됐다. 2019년 6월부터 준비해서 8월 말에 아르헨티나 촬영을 시작했고, 조금 쉬면서 한국 촬영 분량을 준비한 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촬영을 마쳤다. 긴 후반작업을 마치고 연말에 개봉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올해 구정에 극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나 자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질문했다. 내 대답은 영화는 결국 배우와 감독, 카메라만 있으면 가능한 작업이라는 거였다. 배우가 있음으로써 구현되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감독이 직접 고르고 솎아내는 작업이 영화다. 영화를 10년간 만들면서 좋은 배우들과 만나서 없던 것을 있게 하는 이 작업의 매력을 절감했다. 좋은 배우와 작업하고 그를 더 좋은 배우로 만드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새해전야>의 캐스팅 과정에서 ‘좋은 배우’는 어떤 의미였나.

=유태오 배우는 영화를 준비할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계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검증된 것이 거의 없었다. <레토>는 러시아영화였고. 최수영 배우도 데뷔한 지는 꽤 됐지만 배우로서는 인지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작업하고 둘 다 무척 좋은 배우라는 걸 알게 됐다. 김강우, 이연희 배우는 <결혼전야>에 이어 두 번째여도 여전히 새로웠다. 두 사람 모두 그간 각자의 성장이 있었기에, 이번 현장에선 놀이터처럼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기도 했다. 유연석 배우는 평소에 내가 그를 ‘나른한 오후 같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특유의 여유로움과 배려가 있는 친구다. 단정한 이미지 말고 수수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염혜란, 이동휘 배우는 정극 연기, 그리고 로맨스 장르에 꼭 초대하고 싶었다. 중국 배우 천두링은 중국 배우들이 감독과 대화하는 방식이나 근성이 한국과는 또 다르다는 점을 알려준, 아주 인상적인 배우였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때 타이 해외 로케를 경험한 것에 이어 이번엔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아르헨티나 촬영 분량만 현지 제작사와 공동제작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캐스팅이나 로케이션 준비 과정에서 완벽하게 흡족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정확히 픽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배우 오디션을 볼 경우에, 배우가 원하는 연기가 아니라 지정대본을 제시할 경우 보수를 지불해야 했고, 현지에 가서도 특유의 느긋하고 낙천적인 문화 덕분에 고생 좀 했다. 콘티뉴이티 연결에 중요한 소품인 오토바이 헬멧이 사라졌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않냐’하는 식이다.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우리 스탭이 결국 구글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헬멧숍을 다 뒤져 최대한 비슷한 걸로 사왔다. 그때 한국인의 열정을 실감했다. (웃음)

-트레이너, 원예사, 여행사 사장, 스노보드 선수, 형사 등 한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직업군과 생활 양식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런 경우 캐릭터간의 밸런스 등을 고려해 밑그림을 그리고 브레인스토밍하는 편인가.

=중심이 되는 직업군을 먼저 생각해두는 편이다. <결혼전야>의 중심은 웨딩플래너라고 할 수 있겠지. 이번 <새해전야>에선 아무래도 여행사가 중심이다. 이렇게 틀을 잡은 뒤에는 커플별로 살핀다. 장애가 있는 스노보드 선수를 정하고 나면 ‘이 친구처럼 똑같이 몸을 쓰면서 건강함을 가진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거다. 하얀 눈, 스피드가 강조되는 캐릭터 옆에는 흙과 안정적인 초록이 있기를 바라면서 원예사를 떠올렸다. 극중 결혼을 앞둔 용찬, 야오린 커플의 경우 <결혼전야>의 색을 모두 씻어내고 싶지 않다는 바람도 있었다.

-인물의 수만큼 공간도 다양하게 소개된다.

=영화에서 미술 영역을 중시하고, 개인적으로도 큰 흥미를 느낀다. 오월의 정원은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비닐하우스 모습에서 벗어나 남양주의 특별한 공간을 찾아낸 결과물이고, 용찬-용미 남매의 집은 연남동의 오래된 주택을 직접 세팅해서 <키친>의 연장선처럼 꾸몄다. 아르헨티나의 재헌에겐 특유의 험블한 매력을 살려주는 오렌지색 빈티지 트럭을 공들여 매치했다. 효영의 공방은 사실 내 둘째 딸의 학급 친구의 엄마가 쓰는 공간이다. 엄마들이 책 읽어주는 독서 모임에서 내가 말을 걸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로케이션 섭외를 했다. (웃음)

=맞다. 그렇게 평소에 해두지 않으면 9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공간을 매번 새롭게 어떻게 찾아내겠나! 로케이션과 인테리어, 영화미술의 요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있다. 쌓여 있는 것들이 아직 많다. 인물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찾고 세팅해주는 역할에 늘 흥미와 자신감이 있다.

-<결혼전야> 이후 7년 사이 인물 구성에 있어 현실의 면면이 더 반영된 느낌이 들더라. 이를테면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신변보호 요청하는 효영이 ‘국민청원’을 언급하거나 국제 결혼, 청년 실업, 번아웃 등의 코드가 읽힌다.

=전야 시리즈가 확장되면서 현실과의 접점을 좀더 고민했다. <새해전야>에서는 인물의 범위와 시선을 1촌 정도는 좀더 확장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었다. 수필름에서 앞으로 <졸업전야>도 계획 중인데,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세대가 넓은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다.

-독립영화로 출발해 조금씩 외적 규모를 키우고 상업영화로 진출하려는 젊은 여성감독에게 참조가 되는 선배 세대 감독이다. 앞으로의 제작 환경과 비전을 어떻게 내다보나.

=그동안 로맨스영화만 고집했던 건 아니다. 멜로드라마를 가장 좋아하지만 다른 시도에 목말라 있기도 하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내가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거다. 작고 소소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의 가치를 앞으로도 꾸준히 관객에게 제안하고 싶다. 물론 사극, 여성 누아르 등 그동안 준비해왔고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다른 장르와 색깔의 영화들도 많다. 점점 더 하고 싶은게 쌓이고 있어서 요즘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웃음) 이번에 감독 데뷔 이래 처음으로 나의 두딸, 민규동 감독과 함께 네 가족이 모여 개봉하는 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2학년인 두딸이 재밌게 봐주는 모습에 딸들에게 기쁘게 “엄마 70대까지 영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2대 강원영상위원장을 맡았다. 지역 영상위의 활성화에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강원영상위원회는 수도권과 인접해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다. 또 춘천, 원주, 강릉을 기반으로 독립영화를 하는 감독들이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보리> <춘천, 춘천> <초행> 등. 이들이 터를 잡고 독립영화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앞으로 더 탄탄하게 제공할 것이고, 작은 영화관에 대한 지원도 내실을 다질 참이다. 공적 단체로서 다른 영상위원회와 차별화를 두고 싶은 지점은 영화인 교육의 강화다. 현장 출신 위원장으로서 직접 가르치고 교육할 프로그램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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