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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스타워즈에서 마블 엔드게임까지
우석훈(경제학자) 2022-05-19

어린이날 초등학교 4학년 큰애한테 배트맨 레고를 선물했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2학년 둘째도 책 대신 레고를 사달라고 난리가 났다. 결국 둘째한테는 스타워즈 레고를 사줬다. 어린이날이 지난 일요일, 점심 먹고 오후에 집에서 애들하고 영화 보는 시간을 가질까 했다. 이순신 얘기가 나오는 <명량>을 틀어줄까 했는데, 둘째가 무섭다고 한다. 전에 조금 보여준 적이 있기는 했는데, 아직 10살 안된 어린이가 즐길 상황은 아니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을 틀었다. 둘째한테 사준 레고가 ‘스타워즈 타투인편’이었다.

내심 나는 내가 이 아이들 나이 때 너무 재밌게 봤던 <오즈의 마법사>나 최근에 몇번을 다시 본 <메리 포핀스>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애들은 이런 것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마블 시리즈가 나올 때에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주인공 캐릭터를 전부 꿰고 있었다. 학교에서 마블 대유행이 한번 있었다. <해리 포터>는 보기는 하는데 그렇게까지 재밌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매트릭스>는 아직 아무 흥미를 못 느낀다. 큰애는 지난해부터 <스파이더맨>을 거쳐 <배트맨>까지, 한턴 돌았다. 울버린은 좋아하지만, 아직 X맨 시리즈를 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에는 ‘뽀통령’이라고 부르는 <뽀롱뽀롱 뽀로로>를 비롯해 국산 변신로봇 애니를 봤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그런 건 시시해”, 여느 아이들과 같이 마블의 세계로 달려갔다.

2021년 출생아는 26만명인데, 이 비율대로 계산을 해보니까 20년 후에는 출생아 10만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게 현 추세다. 70년대생이 태어날 때 100만명이 넘었는데, 그들이 70살이 될 때에 한국은 9만명 혹은 8만명, 이런 숫자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10분의 1 혹은 그 이하로 줄어들게 되는데, 그 시장 규모로는 어린이용 혹은 청소년용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그때에도 마블 히어로들은 여전히 새로 등장할 것이고, 디즈니가 건재하는 한 디즈니 애니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말로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면서 즐길 만한 뭔가를 만들기는 점점 더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구가 확보되었던 40대가 50대가 되면, 청소년 영화의 위기가 곧 전체 영화와 문화산업의 위기가 될 것이다. 지금은 어린이들에게 왜 마블 아니면 보여줄 게 없나, 그렇게 약간은 한가한 고민을 하지만 10년쯤 지나면 영화는 물론이고 국내 문화산업 상당수가 인구 구조 변화에 의한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올드 매체에서 신매체로 변화하는 취향의 트렌드와 어린이와 청년 인구의 급감이라는 또 다른 변화를 동시에 겪으면서 많은 문화 매체들이 원인도 모르는 위기 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 지금은 잡지와 같은 올드 매체의 위기지만, 10년 안에 로컬 마켓의 많은 문화 매체들이 그 위기를 만나게 된다. 어린이날을 맞아, 잠시 10년 후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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