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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만
2002-06-07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불쾌했던 일은, 내게는, 차량 2부제다. 미리 밝혀두는 게 좋겠다.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광팬은 아니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작년 9월 티켓 2차 예매 때, 거금 85만원을 들여 16강전과 8강전 티켓을 두장씩 샀다. 네덜란드나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는 게 내 바램이었고(두 팀을 정말 좋아한다), 그건 이런저런 이유로 실패했지만 또 카드빚 메꾸느라 헉헉거렸지만 별로 후회되진 않는다. 또 나는 차를 거의 몰지 않는다. 내 면허는 흔히 말하는 장농 면허다.

그렇지만, 거리 곳곳에 붙은 ‘차량 2부제 위반시 벌금 5만원’이라는 안내판은 아주 불쾌했다. 그 목적을 모르는 바 아니니, 이게 2부제 강력 권장 캠페인이었다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벌금’이라니. 여기엔 나쁜 국가주의의 냄새가 난다. 월드컵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주 화창한 날에 차를 몰고 바람을 쐬러 가는 일을 강제로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뭐 그런 사소한 일로 이런 지면에서까지 떠드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사실이다. 이건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의 사소한 취향과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사회가(보호까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진짜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중대사에 비하면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일은 너무 하찮은 일이다. 그러나 이 하찮은 취향을 누가 그 혜택을 누릴지 불분명한 ‘국가적 중대사’ 때문에 금지당하고 싶지 않다. 영화의 어떤 장면을 국가 기관이 개입해 잘라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일본의 나쁜 정책 때문에 일본 영화 완전개방이 지연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듯이, 나는 차량 2부제의 강제시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부끄럽지만 사실은 차량 2부제 강제실시에 눈이 멎고 나서야, 월드컵 때문에 판자촌이 철거되고 노점상이 퇴출됐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생존권도 이렇게 침해하는 데, 사소한 취향이야 오죽 우습게 보일까.) “얼마 전 사회 수업 시간에 개인과 사회조직에 관해 배운 적이 있다. 사회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피해는 감수해도 된다는 자세는 옳지 않은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는 소수의 희생이 무시되고 있다. 그리고는 ‘코리아 팀 파이팅!’ ‘정정당당 코리아!’와 같은 듣기 좋은 구호들만 내세운다. 소수의 희생은 무시한 채, 이런 구호를 외친다고 과연 정정당당한 코리아가 될 수 있는가?”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 중의 일부다. 그리고 글쓴이는 중학교 3학년이다. 어린 조숙은 당사자에게 꼭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있어도 종종 늙은 미숙아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그런데, 이건 조숙이 아니라, 중학생 수준의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