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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미국 축구
2002-06-22

한국의 16강행이 확정된 6월14일 밤, 두통의 전화가 왔다. 한통은 냉소적인 성격의 감독(축구감독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부터 왔다. 축구 보고 바람 쐬러 나왔더니 거리가 난리더라, 젊은 친구들이 나쁜 일로 몰려나온 것만 보다가 좋은 일로 몰려나온 걸 보니, 기분 좋더라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 감독이 그런 얘길 할 정도니, 그날은 정말 한국의 축제일임에 분명하다.

또 한통은 아는 후배로부터 왔다. 축구를 아주 잘하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포르투갈이 떨어진 게 속상해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몰매 맞을 소리인지 모르나, 나는 후배의 심정에 조금 가까웠다. 경기를 보는 내내 제발 무승부로 끝나기를 빌었다. 피구를 따라붙는 송종국의 수비력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 그날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최상급이었다. 결국 미국 대신 포르투갈이 떨어지고 말았고, 나는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떨군 피구의 눈물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스포츠 재벌이니 그를 내가 동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포르투갈이 서유럽에선 가난한 편에 속한다지만, 그래도 경제위기가 수시로 습격하는 아르헨티나에 비한다면 부국에 가까우니 포르투갈에 대한 연민도 웃기는 짓이다. 또한 박지성의 골이 뜻하지 않게 구원한 미국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 때문도 아니다. 오노의 치졸한 액션 때문에 미국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나는 찬성할 수 없었다.

축구는 하나의 스포츠 양식이다. 축구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스포츠라면, 그 양식의 아름다움이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16강 혹은 8강에 들지 못해온 종목이 한둘이 아닌데도, 유독 한국 축구의 성공이 위대한 기쁨이라면, 그 바탕에는 축구라는 양식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진심의 매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례로 탈락한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그리고 지역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네덜란드야말로 그 양식을 앞장서 아름답게 가꿔온 나라들이었다.

나는 미국의 선전과 행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약간 불길하기까지 하다. 미국인들은 축구의 아름다움에 큰 관심이 없으며, 당연히 미국 축구팀의 승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도 않는다. 미국의 프로스포츠가 전제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많지 않는 종목 가운데 하나가 축구이고, 역으로 그 점이 축구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의 아름다움을 키워갈 수 있는 조건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운영되는 리그의 힘이 막강하다 해도 농구나 야구에서의 미국의 흡수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나의 양식이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키워가는 데 특정 지역의 단일 지배력은 저해 요소에 가깝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할리우드(고전기 할리우드영화는 아름다웠다)의 지배력이 세계영화계에 끼쳐온 영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영화만큼 축구를 널리 좋아하는 한, 여기에서만은 미국이 변방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